별 걱정 없이 살다가도, 불현듯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매일 잘하고 있던 일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이 사람만큼은 나와 잘 맞는다고 믿고 있었는데 크게 다툰 후 멀어지기도 한다. 누구보다 가족을 위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바로 그 가족과 문제가 생겨서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경우도 있다.
이런 순간이 찾아오면 많은 생각이 들곤 한다. 그동안 내가 믿어온 신념이 틀린 건 아닐까. 과연 내가 이렇게 행동해도 되는 걸까. 지금이라도 다시 수습하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떠한 문제 때문에 그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게 되면 절대 그 전과 똑같이 돌아갈 수는 없다. 자신은 그대로더라도, 상대방이 그 사건을 심각하거나 중요하게 받아들이면 상황은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놓였을 때, 우리는 참고만 살아야 하는 걸까? 사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불만을 참고 살아간다. 타고난 성향에 따라 인내할 수 있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현 상황을 유지하고픈 마음이 강할수록 성향보다 더 많이 참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고 그것을 표출한다는 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현재의 상황이 더 힘들고 괴롭다는 걸 의미한다. 즉,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을 만큼 현재가 불만족스럽고 그것을 바꾸고자 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드러난다는 것과 같다.
화를 낸 뒤에 '잘했어'라고 스스로를 칭찬하든, '내가 왜 그랬을까'라고 후회를 하든 그것은 본인의 재량이다. 그러나 그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일관성"이다. 어떠한 이유로든 자신의 분노와 화를 드러냈다면, 그에 대한 결과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화를 내고 난 후, 자주 후회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이 사람의 입장에선 후회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은 어떨까? 하루가 멀다 하고 화를 낸 뒤에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내가 미안해"라고 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까? 반대로 화를 전혀 내지 않다가 한번 크게 화를 낸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 사람은 아마 그동안 상대와의 관계에서 많은 것들을 참아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화를 낸 후에 자신의 행동에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부여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화를 내고 나서 자신이 먼저 사과를 한다면? 상대는 자신에 대해 돌아볼 생각을 크게 하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전과 비슷한 관계가 반복될 확률이 높다.
'어디까지' 참을 것인가. 참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는 건 좋은 현상이다. 당신이 그만큼 누군가와의 관계, 현재 살고 있는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나와 누군가의 감정 모두를 상하지 않게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아무리 배려심이 뛰어나다고 해도, 결국 마지막엔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후회할 걸 알면서도 화를 내거나, 한 번 더 화를 참아내는 것이다.
의견이 다를지라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게 중요할 때가 있다. 반면 어떤 경우엔 자신의 신념을 조금 내려놓는 게 더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 자신이 내린 선택이 정답인지 아닌지 고민해 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선택을 정답인지 오답인지 결정하는 건, 선택 이후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어떤 길로 가기 전 우리가 갖춰야 하는 건,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