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에 대한 오해와 진짜 '자존감'
요즘은 자신을 사랑한다 말하려면 자기가 가진 모든 부분을 긍정해야 하는 것 같다. 회사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상대와 매번 비슷한 이유로 다투거나 헤어져도, 해야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여러 번 무시를 받아도 말이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분이 풀리지 않아 혼잣말로 욕을 하거나, 샤워를 하면서도 아까 있었던 일을 상상하며 이를 갈아도 결과는 늘 비슷하다.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쩌겠어" "이게 나인걸,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시간이 흘러 힘들었던 기억들도 서서히 풍화되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분노했는지 가물가물해지면, 신기하게도 또다시 비슷한 원인들로 문제가 터지고 전과 다름없이 힘들어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게 진정한 사랑일까.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다. 또한 무례한 이들을 전보다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도 그 시기와 대략 겹쳐진 듯하다. 카페 화장실 변기 맞은편에 큼지막하게 '수압이 약하니 물티슈를 변기에 넣지 말아 주세요'라고 적혀있어도 여전히 변기에 물티슈를 버리는 악랄한 '현대판 잭 더 리퍼'는 실제로 존재한다.
추월차선인 고속도로 1차선에서 느긋하게 드라이브를 즐기는 이들의 차량 선팅이 유독 진한 것, 카페나 음식점에서 악을 쓰며 우는 아이들의 부모가 때로는 가장 느긋해 보인다던가 하는 것들과 자존감을 다루는 책들이 몇 년째 베스트셀러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건 정말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걸까.
분명히 말하지만 자존감은 정말로 중요하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잘 드는 칼이라도 그것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요리 대가의 손에 들리면 식재료들을 멋지게 손질할 수 있는 식칼이 되는 반면, 미친 살인마에겐 사람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목숨을 끊게 만드는 흉기로 전락하는 것이다. 자존감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누군가는 자신을 성찰하고 전보다 나아지는 반면, 어떤 이들은 무례한 언행을 정당화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은 채 남 탓만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 이어질 다섯 장에서는 잘못된 자존감 해석 사례들에 대해 말해볼 것이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모습, 자신을 높이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는 행동, 매번 실수를 반복하면서 전혀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 자신의 신념만을 옳다고 주장하거나 상처받았음을 이유로 타인의 탓만을 하는 행위. 가장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고 스스로도 살면서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행동들 말이다.
자존감과 관련된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가끔은 자신을 실망시켜도 괜찮다는 말이다.” 이 문장을 보고 '자존감을 지킨다'는 행위는 흡사 외줄타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스스로 실망해도 괜찮다는 마음과, 여러 차례 반복된 실망에서 새로움을 깨닫는 행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당신은 어떤가.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한가, 지나치게 관대한가,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유지하며 살아가는 중인가. 곰곰이 생각해 본 후 이제부터 본격적인 자존감 새로고침을 시작해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