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돈과 인간성이라는 건 정반대의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의 놀부처럼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성질이 고약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비치곤 했다. 반면 놀부의 동생인 흥부는 비록 가난하지만 부러진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는 등 선한 사람으로 등장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현실을 살아갈수록 그러한 이미지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부양할 형편이 되지 않는데도 여러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흥부를 과연 좋은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놀부라면 형인 입장에서 배고픈 조카들을 앞세워 매번 쌀을 꾸러 오는 동생을 본다면 어떨까. 몇 번 정도야 친절하게 대해줄 수 있어도 그런 일들이 몇 달, 몇 년이나 지속되면 놀부처럼 동생을 대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놀부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다. 분명 놀부의 행동 또한 옳다고 볼 수는 없다. 일제강점기 시절, 기존의 부자들 중 자신들의 부를 지키기 위해 친일파가 된 이들도 많았지만 독립을 위해 기꺼이 재산을 내놓은 의로운 이들도 많았다. 돈과 인간성이라는 건 정반대의 개념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항상 대립하는 건 아니다.
이렇듯 돈과 인간성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개념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역사 속에서 수많은 지식인들과 사회 고위계층들이 큰일이 생겼을 때 앞장서서 희생한 사건은 숱하게 많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 부상병들을 간호했으며, 우리나라에도 이순신 장군이라는 호국 영웅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교활하고 이기적이며, 돈이 없어도 지금 행복하면 괜찮지 않냐고 말한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돈은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그 사람의 본성을 끄집어낼 뿐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 못된 게 아니라, 못된 사람이 돈을 많이 가진 것이다. 놀부가 못된 건 부자라서가 아니라 놀부라는 사람 자체가 욕심 많고 베풀기 싫어하는 것에 가깝다.
결국 돈과 인간성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얼마든지 함께 갈 수 있는 가치다. 돈이 있다고 반드시 차가운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반드시 따뜻한 마음을 지닌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돈을 어떤 방식으로 벌고, 어떤 마음으로 쓰느냐다. 인간적인 따뜻함은 돈을 통해 더욱 멀리 퍼질 수 있다. 한 사람의 선한 마음이, 한 번의 나눔이, 누군가의 삶을 바꾸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런 경험은 돈 그 자체보다 더 깊고 오래 남는다.
나는 여전히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다움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 둘을 함께 지키기란 쉽지 않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우리는 매일 그 균형을 연습할 수 있다. 돈을 아끼면서도 마음을 잃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타인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우리는 ‘돈 많은 흥부’도, ‘따뜻한 놀부’도 될 수 있다. 조금은 낯설지만, 이제는 그런 인물이 더 많이 필요한 시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