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내와 새로운 카페를 가보기로 했습니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가보지 못했던 곳이었는데, 도착하니 마침 자리가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주문을 하러 카운터에 가서 메뉴들을 찬찬히 훑어보던 중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산책길'. 직원분에게 물어보니 콜드브루 커피와 티(tea)를 섞은 메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다른 카페에서는 볼 수 없는 메뉴라는 것에 호기심이 동해, 주문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메뉴까지 고르고 창가 쪽에 비어 있는 2인용 테이블에 앉고 나니, 이제야 주변 풍경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곳은 한쪽 벽이 아예 통창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런 인테리어의 장점 중 하나는 안에서 밖의 모습을 투명하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카페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까지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건 꽤 즐거운 일입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등 어떤 활동에 집중을 하다 고개만 들면, 새로운 풍경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며 긴장했던 몸과 정신을 환기할 수 있으니까요. 반려묘들이 종종 바깥구경을 하는 걸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그것과 비슷한 기분이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시선을 카페 너머에 둔 채 밖을 바라보니 작업복을 입은 인부 여럿이 좁은 골목에서 쉬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누군가는 앉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좀 더 뒤쪽에 위치한 한 중년 남성은 일이 고되었는지 양팔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켭니다. 그들이 쉬고 있는 맞은편에 부서진 건물의 잔해 같은 것들 일부가 보이는 걸로 보아, 아마 그곳이 오늘 그들의 일터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종종 몸 쓰는 일에 대해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분야의 일을 한 번이라도 해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 거라 장담합니다. 누군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건, 그것에 대해 제대로 모르기 때문일 테니까요. 우리가 집을 짓는 방법을 모르지만 집에서 살 수 있는 건 '집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 덕분일 겁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노력을 돈으로 사는 것뿐이지요.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도 하고 아내와 대화를 하다 보니, 주문한 음료를 테이블까지 가져다주셨습니다. 주문한 '산책길'은 앙증맞은 잔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3분의 2는 커피처럼 보이는 음료가, 3분의 1은 크림처럼 보이는 하얀색 폼이었고 폼 가운데엔 주황빛이 도는 무언가가 갈려진 채 장식된 모습이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궁금증은 주황빛의 물체가 오렌지 제스트라는 걸 알려준 직원분의 설명으로 곧바로 해결되었습니다.
곧바로 한 모금을 마셔봅니다. 커피와 티를 섞었다는 말 그대로 상당히 절묘하게 그 두 가지가 잘 어울리는 맛이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도전했을 때 기대한 만큼 결과가 좋긴 어려운데, 오늘은 꽤나 성공적입니다. 어디에도 없는 메뉴가 맛까지 있다니. 왜 사람들이 이곳에 많이 오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걸 보면 '좋은 창작'이라는 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도 갖춰야만 하니까요.
'산책길'을 마시며 나의 창작물에 대해 곱씹어봅니다. 얼마나 새로움이 있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있는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답답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마 이 카페의 사장님도 이 음료를 만들기 전까지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겪었을 테니까요. 좋은 창작 뒤엔 항상 수많은 실패가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창작을 즐길 수 있는 건, 그것을 만든 사람이 끝내 그 모든 걸 견대냈다는 증명이 되기도 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는 것. 그러다 보면 당신도, 저도 각자 몸담은 분야에서 좋은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서로가 그렇게 되었을 때 당신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가 아닌, 각자가 견뎌낸 시간들에 대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