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하루를 살아왔을까.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땐 이런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모든 순간들 사이에 크고 작은 행복들이 존재했고, 그것들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때보다 훌쩍 커버린 지금, 과거에 비해 덜 행복하다고 느끼는 건 행복한 일들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여유가 부족해서일까.
'행복'의 국어사전 속 정의를 찾아보면 두 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복된 좋은 운수'. 또 다른 하나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한 그러한 상태'. 일상적으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행복하다"의 의미는, 첫 번째 정의보다 두 번째 정의에 더 가깝다. 두 번째 정의를 보면 '생활에서'라는 표현이 나온다. 생활이라는 건 일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걸 뜻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일정한 환경을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벗어나야지만 행복하다고 여긴다.
'따뜻한 물에 샤워하기', '주말 아침 즐기는 빵과 커피', '음악 들으면서 산책하기' 등 앞에서 내가 좋아하는 열 가지의 행동을 할 때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설거지나 노래 부르는 건 예외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행동들을 모든 사람들이 행복이라 칭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들은 "좋은 건 맞지만 행복하다고 말하긴 좀 그렇지"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실제로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본 적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행복이란, 많은 시간과 돈, 에너지를 들여야 얻을 수 있는 결과물에 가까웠다. 넓은 집, 비싼 차, 해외여행, 값비싼 호텔에서의 하룻밤.
물론 나도 그런 것들을 할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 스위스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도, 서울에서 묵었던 5성급 호텔도 정말 좋았다. 하지만 늦은 밤에 즐기는 드라이브나 여행 영상을 볼 때도 나는 '그것과 비슷한 행복'을 느낀다. 일상이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가장 큰 차이가, 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에 등급을 두지 않는 것" 말이다. 어떤 경험을 하고 그것이 마음에 들었을 때 '나는 행복하다'라고 얼마나 빠르고 분명하게 스스로 인지하는지에 따라 그날의 평가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행복해지기 위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행복하지 못해 좌절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진심으로 가슴이 아프다. 넘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든 채 하늘만 바라보고 걷는 셈이다.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들이 주변에 가득한데 그것들 전부를 '당연하다'라고 치부한 채 보지도, 느끼지도 않으려 한다. 하루를 조금만 다르게 보아도 행복해질 수 있는데 엉뚱한 곳에 지나치게 힘을 쏟는다. 좋아하는 걸 느끼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조차 다 소진해 버린다. 그것이 가장 슬프다.
좋은 건 좋은 것이다. 그것이 아주 사소하든, 자주 할 수 있든지 간에 말이다. 좋은 것을 좋다고 느낄지 말지는 온전히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 행복에 자꾸 이유를 붙이지 마라. 성취에 필요한 습관들을 행복에 적용하려 들면, 행복은 당신에게서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지친 상태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할 때의 행복에 이유가 어디 있는가. 행복엔 등급이 없다. 오늘도 당신은 그냥 행복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