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날과 집안의 서늘한 공기
1964년 5월, 작은 농어촌 마을은 잎새 달의 생동감보다는 비릿한 바닷바람이 더 먼저 피부를 파고드는 곳이었다. 선창가 가장 끝에 매달린 집. 동이 트기도 전의 새벽은 어둡고 눅눅했다. 그 어수선한 정적을 찢고 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출렁이는 바다와 수평선 위로 붉게 고개를 내미는 해의 기운을 온몸으로 안고 태어난 생명이었다. 하지만 그 힘찬 울음소리는 축복의 박수 소리를 깨우지 못했다. 오히려 그 소리는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무겁고 축축한 침묵 속으로 잦아들었다. 아이의 탄생을 맞이한 것은 기쁨의 환호가 아니라, '초전 댁'이라 불리던 여인의 깊은 한숨이었다.
초전 댁은 아이를 낳고도 몸을 누이지 못했다. 갓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볼 여유조차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이마가 유독 툭 튀어나오고 짱구 머리를 닮은 아이에게 세상이 처음 내민 이름은 ‘유복자’였다.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지어둔 이름도, 누군가 축복을 담아 지어준 이름도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가 없는 아이라는 사실이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아이의 잘못도, 초전 댁의 잘못도 아니었으나 그 집을 드나드는 이들은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아버지를 잡아먹고 태어난 딸이라며?”, “재수 없는 아이가 들어왔네.” 갓 태어난 아이의 귓가에는 닿지 않았을 그 가시 돋친 말들은 초전 댁의 가슴에 먼저 박혀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종갓집이라는 이름표는 초전 댁에게 훈장이 아니라 무거운 멍에였다. 번듯한 면사무소 서기로 일하던 남편은 집안의 자랑이었으나, 막내딸이 세상 빛을 보기도 불과 쉰 날 전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버렸다. 남편을 잃은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그녀는 죄인이 되었다. 산후조리는 사치였다. 찬 바람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방 안에서 그녀는 시댁 어른들의 서슬 퍼런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숙였다. 여자가 운다고, 재수 없는 소리를 낸다고 타박받을까 봐 그녀는 젖을 물리면서도 소리 죽여 울었다. 60년 전, 그 시절의 공기는 산모의 부어오른 몸보다 마음을 더 먼저 차갑게 식혀버렸다.
詩
뿌리, 그 깊은 침묵
심겨진 곳을 탓할 힘조차 없어 바닷물 밀려오는 발끝만 보았다
비린 바람 끝에 매달린 울음은 축복보다는 탄식에 가까웠다
어머니, 당신의 굽은 등이 막아선 것은 파도가 아니라
세상으로 나아 갈 틔운 그 싹, 어느덧 자라 바다를 굽어본다
의지 없이 심어진 땅이라 해도 눈물로 적신 흙은 단단해지는 법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녀 이미 튼튼한 닻을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