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법보다 잃지 않는 법을 배우다

-우주리 487번지 사람들

by 비채꿈

우주리 487번지.

종이 한 장의 제적등본 위에 건조하게 적힌 이 주소는, 그 시절 아이에게 세상의 전부였다. 바닷바람이 마당까지 밀려오던 그 집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모와 삼촌, 줄줄이 엮인 오빠 넷과 초전 댁까지 열 명이 넘는 식구가 몸을 맞대고 살았다. 방은 고작 네 칸뿐이었다. 비좁은 공간에서 대가족이 함께 살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체온을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본능처럼 그 질서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한 방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고, 아이는 그들의 품에서 밤을 보냈다. 막내 삼촌이 장가를 들어 잠시 함께 살 때는 숨소리마저 겹쳐졌지만, 아이는 그 북적임 속에서 밀려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다. 어머니는 그 북적임 속에서도 늘 가장자리에서 소리 없이 움직였다.


고모는 아이에게 두려움이자 안식이었다. 머리가 가려워 긁적거리면 고모는 아이를 무릎에 눕혔다.

“어디서 이가 이렇게 옮아왔니?”

타박 섞인 말과 함께 손가락이 머리칼 사이를 헤집었다. 참빗을 내릴 때마다 하얀 달력 위로 배가 불룩한 이들이 툭툭 떨어졌다. 손톱으로 이를 짓누를 때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흔적이 번졌다. 따가움에 몸을 비틀면 고모의 손날이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이는 울음을 삼킨 채 무릎 위에 머리를 고정했다. 그 아픔을 견뎌야만 고모의 손길이 자신에게 머문다는 것을, 그 손길이 관심의 다른 얼굴임을 아이는 몸으로 익혔다.


우주리 487번지에서 아이의 위상은 텔레비전 덕분에 달라졌다. 미국으로 이민 간 삼촌이 남기고 간 텔레비전은 밤이면 마을의 놀이터였다. 저녁이면 안방보다 큰 방에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드라마 ‘여로’가 시작되면 방 안은 숨소리마저 낮아졌다. 아이는 그 상자 앞에서 주인이 된 듯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오면 일부러 크게 울음을 터뜨렸고, 텔레비전 소리가 가려지자 어른들은 그를 내보냈다. 아이는 울음을 멈췄다. 그것은 늘 눈치를 보며 자라던 아이가 세상에 부려본 드문 권력이었다.


할아버지는 아이의 가장 든든한 편이었다. 긴 수염을 늘어뜨린 할아버지는 아이가 수염을 만지작거리면 “이 수염 팔아서 엿 사주마” 하며 웃으셨다. 할아버지의 밥상에 겸상할 수 있는 존재도 아이뿐이었다. 좋은 반찬은 늘 아이 쪽으로 옮겨졌다. 사촌 동생이 무릎에 앉으려 하면 아이는 “우리 할아버지야!” 하고 소리쳤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아이를 당겨 안으셨다. 아이는 그 무릎 위에서 자리를 잃지 않는 법을 배웠다.


겨울이면 소죽을 끓이고 남은 왕겨 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던 냄새가 집 안에 퍼졌다. 할머니가 덕석에 펼쳐 둔 고두밥을 몰래 집어 먹던 달콤한 기억도 있다. 그러나 그 평온함 아래에는 늘 긴장이 깔려 있었다. 집 뒤뜰에는 밀주를 담은 독이 묻혀 있었고, 조사가 나온다는 소문이 돌면 어른들은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이는 입을 다물었다. 비밀을 지키는 것이 이 집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조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주리 487번지

참빗 사이로 떨어지던 붉은 얼룩

아픔보다 먼저 남던 관심의 자국

할아버지 수염 끝에 매달린 엿가락

텔레비전 앞에서 지켜낸 작은 자리

아이의 세계는 그만큼만 허락되었다

사람들이 떠난 뒤에도

주소 하나는 남아

사랑을 잃지 않으려 까치발 들던 시간을

지금도 조용히 부르고 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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