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방의 일기
마을 한가운데, 사람들의 발길이 가장 자주 머무는 자리에 할머니의 점방이 있었다. 서른여섯의 장성한 큰아들을 먼저 가슴에 묻은 할머니는 그 작은 구멍가게를 삶의 전초기지 삼아 남겨진 생을 꾸려갔다. 하얗게 센 머리는 늘 단정히 쪽을 지어 비녀로 고정돼 있었는데, 빛이 바랜 그 비녀는 할머니가 지나온 시간의 무게를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할머니는 어머니보다 더 깊은 품을 내어준 존재였다. 바다 일과 방앗간을 오가느라 늘 자리를 비웠던 어머니 대신, 할머니는 아이의 끼니와 한 번씩 잠자리를 챙겼다. 점방 한켠에서 아이는 자고 먹고 자랐다. 그곳은 집이자 놀이터였고, 때로는 세상과 처음 맞닿는 문턱이었다.
할머니는 마을에서 소문난 여장부였다. 상인들이 커다란 대야에도 다 담기지 않을 만큼 큰 가오리를 잡아 오면 가장 먼저 점방을 찾았다. 등판이 노르스름한 가오리가 들어오는 날이면 점방은 작은 잔칫집이 되었다. 할머니는 된장과 양념을 아끼지 않고 넣고 방아 향을 듬뿍 올려 가오리 찜을 쪄냈다. 김이 오르는 찜통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술잔은 자연스레 돌았다. 아이에게 그 냄새는 가난한 유년 속에서 가장 풍요롭게 남은 기억이었다.
예순을 넘긴 그녀는 이제야 안다. 할머니의 점방은 세상의 다정함과 잔혹함을 동시에 가르친 삶의 전초기지였다는 것을. 비릿한 가오리 찜 냄새 뒤에 숨은 사랑의 무게만큼 , 스스로를 지켜야 했던 시간들, 그리고 역병 앞에서 홀로 버텨야 했던 그곳에서 아이는 사랑을 기대하기보다 경계하는 법을, 의지하기보다 스스로 서는 법을 배웠다.
점방은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기억들은 존재한다. 세상이 언제나 친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찍 알게 된 아이는, 이제 타인의 상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한때 점방 구석에서 깨어 있어야 했던 아이의 긴장은, 이제 보이지 않는 마음을 먼저 읽는 눈이 되었다.
비릿했던 점방은 사라졌으나, 그곳은 여전히 그녀의 삶에서 가장 먼저 통과한 세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