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시간은 행복의 또 다른 말
아이는 축제날 아침이면 제일 먼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독 학교에 큰 행사가 있는 날이면 동네의 하늘은 비를 품고 있었다. 마을 어른들은 학교 터를 지킬 영험한 뱀을 죽여서 그렇다며 흉흉한 떠 도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아이에게 비는 때론 다행스러운 가림막이었다. 비가 내려 운동회가 취소된다면, 남들처럼 온전하게 기뻐하지 못하는 자신의 자리를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운동회 날은 마을 전체의 잔치였다. 그러나 선창가 끝 집의 초전 댁은 늘 보이지 않았다. 가을 농사와 바다 일에 매여 있던 어머니 대신, 머리를 단정히 빗은 할머니가 아이의 곁에 섰다. 청군과 백군의 함성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지만, 아이의 마음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서늘함이 스며 있었다.
가장 힘겨운 시간은 ‘미션 달리기’였다. 뛰다 떨어진 종이를 주워 적힌 대로 수행해야 하는 순서에서, 아이의 손에 쥐어진 종이에는 ‘아버지와 달리기’ 혹은 ‘엄마가 업고 달리기’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종이를 들고 멈춰 선 아이를 본 선생님이 다가왔고, 그 틈을 타 이름 모를 동네 아저씨가 손을 잡아끌었다. 그것은 달리기라기보다 끌려가는 시간에 가까웠다. 고무신이 벗겨지고 무릎이 깨져도, 아이는 아픔보다 그 장면을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날 아이는 아버지를 원망했고, 때로는 언젠가 아버지가 큰 부자가 되어 나타날 것이라는 상상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아이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지 않았다. 아픔을 품은 만큼, 아이는 더 독하게 달렸다.
키가 컸던 아이는 종종 청군과 백군의 대표 선수로 나섰다. 이어달리기에서 바통을 쥐는 순간, 아이의 눈빛은 달라졌다. 넘어져 무릎에 피가 흘러도 곧장 일어났고, 바통을 넘기다 뒤처지면 숨이 끊어질 듯 달려 앞선 아이를 따라잡았다. 응원석에서 터지는 “이겨라!”라는 소리는 아이에게 ‘살아남아라’는 말처럼 들렸다. 운동회가 끝난 뒤 받은 공책과 연필 한 꾸러미는, 아이가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증명해낸 흔적이었다. 아이는 그 선물을 달리기를 못했던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며, 잠시나마 베푸는 쪽에 서 보았다.
소풍날 역시 기쁨과 서러움이 엇갈렸다. 벚꽃이 흩날리던 공원까지 가는 길은 멀고 험했지만, 아이는 미리 사둔 새 옷을 꺼내 입어보며 그날을 기다렸다. 소풍날만큼은 어머니가 일바지를 벗고 도시락을 들고 나타났다. 찰밥 도시락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은 짧은 시간, 아이는 일 년 중 가장 오래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늘 “바쁘다”는 말을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떴다. 아름다운 벚꽃 아래에서 아이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보물찾기에서 크레용을 찾은 아이들의 환호성 뒤에서, 아이는 자신이 찾고 싶은 보물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깨달았다.
예순을 넘긴 그녀는 이제 잡초만 무성한 폐교 운동장에 선다. 동창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는 더 이상 미션 종이를 쥐고 멈춰 서 있던 아이가 아니다. 가벼운 농담 속에는 각자의 결핍을 견디고 살아온 시간들이 묵직하게 얹혀 있다. 그녀는 이제 안다. 무릎에 피를 흘리며 끝까지 달렸던 그 시간과, 축제 속에서 홀로 설레고 또 서러워했던 감정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