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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 Jul 06. 2024

다음 상황에 맞는 말은?

에둘러 말하는 방법은 내 스타일이 아닌데

  말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 입으로 하는 그 말이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어려워서 평생을 공부해도 완성되지 못할 것만 같으면서도 이미 통달해 버린 사람이 있는 것만 같아 아이러니한 느낌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내 말투와 화법에 익숙해져 있지만, 그렇지 못해 떠나간 사람도 많다. 그 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몇몇의 친구들이 말하길, 내 말은 유리파편 같다고 한다. 유리는 그래도 투명하게 앞뒤를 볼 수 있지만, 파편으로 깨져 있으면 날카로운 부분에 다치기 쉽다. 특히 조금만 잘못 건드리면 겉 부분이 모두 날카롭게 되어 있어 상처가 날 가능성이 더욱 크다. 그게 내 말의 특성이란다. 거짓말 없는 투명한 속마음이 드러나는 시원시원한 말, 하지만 그만큼 가감 없이 속마음을 말해버리니 상처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참 MBTI가 유행할 때는 완전히 T가 나고 내가 T라고 그런 말도 들어왔다.

  이 말투는 어머니의 영향도 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의 나와 누나에게 에둘러 완곡하게 말해주시지 않았다. 직설적인 화법으로 확실하게 말하는 스타일이셨기 때문에 물론 그 당시 어린 마음에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아직 상처받는 부분도 있지만) 이제는 그런 화법이 익숙하다. 에둘러 말하는 화법이 오히려 답답할 수준이다.

  이 화법은 굉장히 간단한데, 돌려서 말하지 않고 바로 속내를 내뱉는 것이다. 가령, 이런 경우가 있었다.



  하루는, 중학교 때부터 일본어 자율 동아리에서 함께 친해져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의 톡방에서 한 친구가 톡을 보내왔다. 하지만 그곳에서 현역의 비중도 높았거니와 모두 기본적으로 대학생 신분에 있었기에 우리는 서로 연락이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 현실에 조금 안타까움이 느껴졌었던 것일까, 그 친구는 세 마디를 보내왔다.


"다들 바쁘긴 한가 보다"

"4일간 카톡이 없네"

"역시 열심히 산다 다들"


  그때 내가 여기에 보낸 말이,


"열심히 산다가 문제가 아니고 네가 군대를 와보시고 다들 바쁠 시기니까 본인부터 신경 쓰시길"


  사실 많이 날 선 문장일 수 있다. 내 의도는 이러했다. 기본적으로 이 친구가 군 입대에 대한 태도가 굉장히 애매했고 또래보다 현저히 늦게 가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걱정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결국 본인이 입대 시기를 정해서 복무를 마치지 않으면 누군가 대신해 줄 수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 톡을 보낸 시기가 1월 중순, 새해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기임에다가 군에서는 혹한기 훈련 시기로 바쁠 시기이다. 무엇보다 그런 내용의 이야기를 단톡에도 남겼는데, 그때는 이모티콘이나 간단한 답을 남기던 친구가 결국 한다는 반응이 '열심히 산다'는 말인 게 내 딴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많이 바쁜가 보네'하는 말 정도면 될 텐데 굳이 그런 바쁜 시기에 보내놓고 답이 없으니 한다는 말이 저런 말이니, 내 입장에서는 본인도 바쁠 텐데 굳이 톡을 해서 저런 태평한 말이나 하니 그게 많이 답답하게 느껴진 것이다. 무엇보다 저 친구는 나랑 완전히 다른 애써 완곡하고 에둘러 말하는 스타일인데 굳이 저런 말을 꺼내는 것이 내가 듣기로는 '바쁘긴 해도 답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하는 말로 느껴졌다. 넘겨짚었다고 보긴 어려운 게, 그 부근에서 계속 반복하던 말이 연락이 뜸해서 답이 잘 오지 않는 게 아쉽다는 눈치의 말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내 보직 특성상 개인정비 시간에도 뭔가를 수리하거나 하느라 이 시간을 빼앗겨 연락이나 답장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도 얘기를 했는데 저런 반응인 것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돌려서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령, 이런 정도면 저 친구도 상처받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그래도 시기상 다들 바쁠 때니까, 답장이 어려운 걸 감안하고 지금은 서로의 일에 집중하는 게 어떨까?"


  이 정도만 말했어도 완곡한 말로 전할 내용은 다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난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 아니, 그렇게 보내지 않았다. 많이 서툰 생각이었다.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 당시의 나는 심적으로도 많이 지치고 힘든 상태였다. 누군가의 말에 일일이 일희일비하며 공감하며 답해줄 기분도 아니었고. 그렇지만 이 역시 사실상 변명에 가까운 생각일 뿐 결과적으로 내 이기적인 생각에서 비롯한 잘못된 대응에 불과했다.



  현재 있는 부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전산이나 행정 관련 작업을 할 필요가 있을 때, 그런 파트는 타자가 빠르고 문서 작업 속도가 수월히 진행되는 내가 먼저 나서서 하겠다고 하는 편이다. 그렇게 내가 전산 및 행정 작업을 하면 다른 파트의 일이나 빨리 처리할 겹치는 작업이 있으면 선임분 혹은 내 동기가 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유독 바쁜 일이 많았고, 그래서 심적으로도 편치 않았다. 기본적으로 행정/전산 작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이대로 내가 다 맡기도 어려울 것이고, 그래서 누군가 도움을 주길 원했지만 선임분들은 나름대로 또 다른 작업을 받으셨고 동기도 뭔가 임무를 배정받아 각자가 서로 바빠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웠다. 그렇기에 서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사이에 동기가 소대로 복귀했고, 잠시 쉬는 것 같아서 많이 힘들었나 싶어 내 일을 마저 했다. 일과가 마무리되어 가는 그 시간쯤, 동기는 그 이전에 잠시 나갔다 오더니 PX에서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사 와서는, 내 옆에서 그걸 먹고 있었다. 나로서는 그 광경이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일이 마무리되면 같은 처부의 인원이 일을 하고 있든 말든 쉬어버린다는 마인드도 아니고 행동거지가 저게 맞나 싶었다.

  이렇게 보니 주로 날 서있는 상태에서 불만을 토로해서 그런 것 같긴 한데, 그 당시에도 내가 딱 한 마디 내뱉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지금 쉬는 게 맞아? 난 아직 일 하고 있는데 옆에서 왜 쉬고 있어? 좀 같이 해 주면 안 되냐?"


  물론 이 당시에도 완곡하게 말할 수 있긴 했지만 나 스스로는 매우 억울했다. 같은 동기인데 능률의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내 동기보다는 나에게 일이 더 많이 돌아왔고, 그걸 이해하라는 식으로 말하는 간부님들과 내 선임분들. 그리고 그걸 자신의 능력 부족임을 안다고 말하며 자신이 덜 일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동기의 마인드까지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완곡한 말 때문에 잘못된 일도 많았다. 직설적인 말 한 마디면 될 것을 에둘러 말해서 서로의 의견 차이와 이해의 차이가 발생해서 생긴 문제도 많았지만, 생각해 보면 내 직설적인 말투는 트러블을 일으킬 날이 많긴 했다. 내 주변인들이 그걸 '이해해 주는 것'일 뿐, 내가 그렇게 말해도 된다는 '허가'를 해준 것은 아님을 난 몰랐던 것이다. 아니, 그냥 이해해 준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실을 알면서도 덮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다가 문득 떠오른 인물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돌아온 몇 마디.


"너도 알고는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래도 솔직한 화법은 맘에 들어서 조금만 부드럽게 말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했어"

"그땐 나도 사실상 잘못은 했지만 말투가 좀 날 서있던 것 같아서 괜히 나도 썩 듣기 좋지 않았다 보니 서로 감정이 격해졌던 것 같긴 해"

"글쎄, 난 네 말투가 오히려 좋은데. 완곡하게 에둘러 말하는 건 답답하잖아. 나도 그래서 직설적으로 말하잖아?"


  내가 말하고 있는 상대가 이들 중 누구일지는 모른다. 내 말투를 오히려 시원시원하고 속내가 바로 드러나는 좋은 말투라고 생각할지, 너무 직설적이고 푹 푹 꽂히는 날 선 말투라고 생각할지. 난 전혀 직감할 수 없다. 사람은 다양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개개인의 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건 허울 좋은 핑계에 불과하다. 부드럽게 말할 수 있으면 상대를 배려해서 말해야 한다는 화법은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도 배워오던 것들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조금만 더 배려하면, 아주 조금이라도 더 완곡하게 말했더라면 달라질 상황도 많았을 것이다. 뒤늦게 후회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내가 먼저 조금 더 완곡히 말하면 됐던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내가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가 아닐 때야 내 말투가 투명한 유리처럼 솔직한 화법으로 들릴 뿐,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 유리 파편이 되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본다.



오늘의 오답노트


- 아무리 답답하고 감정이 격해진 상황이더라도, 인간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같은 말도 조금이나마 더 완곡하고 부드러운 말을 건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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