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단순암기 평가방식과 나의 '공부'에 대한 회의감
대학에서 듣는 한 수업은 평가가 퀴즈 몇 번을 포함하는데, 그 퀴즈가 거의 강의노트로 주어지는 내용을 단순암기해서 써야 하는지라 족보나 소스 같은 것이 돈다고 유명하다. 그런데 과제의 부담도 적고, 무엇보다 한 번쯤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전공 분야이기에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수강신청이 빡센 과목 중 하나임에도 해냈는데 그 결과가 결국 오늘 나타난 것 같다...
필자는 대학의 장거리통학생이다. 대략... 음, 편도로 2시간 30분을 잡으면 편하다. 차가 막히면 집 귀가는 거의 3시간을 잡아야 한다. 물론 그거에 대해서 다른 말은 할 생각 없다. 부모님이 워낙 기숙사 생활을 싫어하시기도 하고 내가 그걸 설득하지 않고 그냥 다니는 거니까.
그런데 그렇게 시간을 빼앗기다 보니 통학 중에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과제나 수업에 따라가기 위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사회적인 상황이나 미래에 대한 압박은 나를 학점이라는 것에 더욱 집착하게 만들었다. 잘 알고 있다 - 취업이든 무엇이 되었든 간에 학점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그리고 한 과목 삐끗한다고, 재수강이라는 선택지도 있고 앞으로 더 잘 보면 되지 않냐 같은 이야기.
하지만 워낙 내가 굳이 표현하자면 '멘탈이 약하다'랄까. 사실 2학년 1학기 말고 2학기까지 채우고 군에 입대하려다가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가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군입대 시기 신청을 그렇게 한 것도 물론 있지만 해당 시기에 거의 수직낙하 급으로 학점의 하락이 있었다. 자신이 있었던 과목들도 학점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었다.
'중고등학생도 아니고 무슨 그렇게 점수에 매진하냐', '그 정도로 깎인다고 나중에 취업할 때 많이 신경 안 쓴다', '나중 가면 다른 것이 훨씬 중요하다' 같은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사실 학점이 떨어졌다는 것보다는... 내 노력을 배신당했다는 느낌 때문이리라.
최근 무역영어에 대한 시험 후기를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데, 내가 워낙 단순암기를 정말 심각하게 못한다. 단순암기 과목이 항상 최저점을 기록했던 것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2학년 1학기. 그때도 나에게 좌절감을 주었던 그 과목들은 거의 단순암기 과목이었다. 한 나라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과목 같은 부류. 공부할 때 정말 남들보다 열심히 했다고까지 자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을 쪼개가면서 외우고 복습까지 하는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결과는 내가 생각한 이하였다.
오늘 본 퀴즈 1차 시험도 그렇다. 분명 내가 본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고, '이게 나올까'싶은 수준의 지엽적이고 세부적인 문제가 나왔을 때는 정말 이걸 누가 적을 수 있을까, 적은 사람이 있을까 싶은 수준으로 절망감을 느꼈다. 펜이 움직이는 것이 느렸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종이를 먼저 제출하고 강의실을 벗어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처음에는 '저렇게 빨리 나가려면 다 안 채운게 아닌가' 싶었지만 점점 그 생각은 '내가 너무 늦나'하는 생각으로 변모했고, 결국 꾸역꾸역 있는 대로 아는 걸 끄집어내서 적은 답안지를 제출했을 때 강의실에는 나만이 남아 있었다. 교수님과 TA 분, 그리고 나. 그렇게 종이를 제출했을 때 수고했다고 말씀해 주시는 교수님의 말씀이 오히려 나에게는 무겁게 다가왔다. 열심히는 적었지만 답안을 확신할 수도 자신 있게 제출하지도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해 알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너 자신이 너무 높은 허들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냐 같은 소리도 들어봤고, 네가 잘못 암기를 하고 있는 거 아니냐, 네가 부족하게 외운 거 아니냐 하는 소리도 다 들어봤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더 시간을 쪼개서 외웠어야 하는지는 몰라도 - 내가 부족하게 공부했을지도 모른다. 내 암기 방법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라고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들인 시간을 부정당하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그냥 이런 단순암기를 해야만 하는 강의 평가방식이 짜증이 났다. 내가 이걸 이렇게 달달 외워서 무엇을 얻을 수 있지? 이런 평가방식이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소스를 구하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다. 그렇지 않고도 A를 맞는 사람들도 있다는 강의평을 많이 봤다. 아니, 그게 정말 진실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걸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럼 결국 내 암기방법과 암기방식, 공부법의 문제가 아닌가. 결과적으로 책임은 나에게 되돌아온다. 책임이라는 부메랑은 어딘가에 던져버려도 결국 나에게 되돌아온다. 아득히 멀어진 듯해도 어느 순간 나에게 돌아와 발목을 붙잡는다.
이걸 어떻게 다 외우는 걸까. 어떻게 해내는 걸까. 내가 학점이라는 허상과도 같은 욕심에 너무 매몰되어 있는 걸까. 떨어질 때도 있고 올라갈 때도 있다는 말에는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내 개인적인 욕심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그래, 학점이라는 숫자와 등급에 너무 매몰되지 말자 - 나 자신을 너무 낮추지 말자. 그렇게 생각해 본 것도 여러 번. 비단 이번만 그런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이 세상은 그런 곳이다. 학교를 잘 다닌 결과는 성적으로, 수능을 잘 본 결과는 등급으로, 대학을 잘 다닌 결과는 학점으로. 점수와 등급이라는 나에 대한 평가가 남들에게 나를 대표하고 나라는 사람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단순암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도, 소스와 족보를 돌려보며 시험을 보는 사람들이 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시간을 투자해서 그들과 비슷하게, 오히려 그들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 양심에 비롯한 것이냐 물으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성적이라는 것에 이렇게 집착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내가, 소스를 살 수 있다면 사서 성적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보려 하지 않을까?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았다. 부정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여부를 따지고 싶지도 않다. 따지고 보면 중고등학교의 학원에서 기출문제를 풀어보는 것과 뭐가 다른가. 자료가 있으면 그게 더 자신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소스가 존재해도 그대로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그걸 별도로 더 외운다는 건 나에게 또 다른 부담 같았으니까. 그래서 이런 글을 쓰면서 하소연이라도 해볼 뿐이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이럴 시간에 다음 퀴즈를 위해서 미리미리 어떤 방식으로 문제가 나오는지는 이해했으니 더 잘해보자며 자신을 위로하고 공부를 이어갈 수밖에 없으니까.
비단 나만 이런 게 아닐 것이고, 이 시간에도 다른 누군가들은 나와 비슷한 부류임에도 노력해서 더 나은 결과를 내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