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바라보는 새로운 내러티브

마을활동가, 그들은 누구인가?

뜨거웠던 여름, 나는 경기도 마을에서 있었던 변화들을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연천으로, 포천으로, 용인으로 떠났다. 마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 변화를 만들기 위해 무슨 과정을 지나왔는지, 그 변화는 개인과 공동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을의 변화를 만든 주체들인 각 마을의 활동가들과의 만남이 필수적이었다. 질적연구를 하는 조직에서 일하다 보니 현장에서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식으로 만드는 일은 굉장한 특권인 동시에 평범한 일터에서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마을 활동가들과의 인터뷰는 무언가 달랐다.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마을에서,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공동체와 함께 지난한 시간을 뚫고 변화를 만들어 왔던 그들의 이야기가 갖고 있는 진정성의 해상도가 너무도 선명해 일터에서의 나가 아닌 개인으로서의 나와 삶을 비추었다. 마을에 내가 생각했던 미래가 있었고, 공동체가 있었고, 대안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이야기가 마을 안에 고여 있고, 밖으로 흘러나오는 구조 속에 있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마을 활동가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 단어는 이들이 하고 있는 일을 표현할 뿐, 그 활동 속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다 담지 못한다. 그렇다면 마을활동가, 그들을 누구인가? 그들이 마을에서 하고 있는 일은 실제로 어떤 것들을 바꾸고 있는가? 그 변화는 마을을 넘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가? 마을 활동가들이 하고 있는 일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함께 나누어보고자 한다.

1)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의 아티클 ‘Effective Change Requires Proximate Leaders(효과적인 변화에는 근접 리더가 필요하다)’에서는 근접 리더(Proximate Leader)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근접 리더는 물리적, 정서적으로 가까운(Proximate) 위치에서 커뮤니티를 위한 리더십을 발휘해 변화를 만드는 사람을 지칭한다. 마을 활동가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자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마을에서 활동하며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근접 리더라고 볼 수 있다. 마을 활동가들은 마을 커뮤니티와 근접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더 효과적으로 변화를 만들고 있다.

(1)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 마을 활동가는 마을 공동체에 대해 외부의 전문가보다 깊은 이해를 갖고 있다. 마을 활동가들은 리더이기 전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마을이 직면한 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 마을에서의 일상을 함께 보내기에 외부자들이 단순한 관찰자로서 놓칠 수도 있는 디테일한 역학 관계까지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어 복잡한 상황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마을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적인 배경을 이해하고 있기에 공동체의 행동 패턴과 원인을 알고 있기에 마을에 필요한 현실적이고 실행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2) 진정성 있는 관계 형성: 마을 활동가는 내부인이기에 다른 마을 구성원들과 보다 진정성 있는 신뢰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마을의 변화는 마을 활동가 개인이 혼자서 이룰 수 없다. 마을 활동가는 마을 공동체 구성원들과 같은 커뮤니티에서 생활하고,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비슷한 도전을 직면하게 되며 운명 공동체로서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게 된다. 마을 활동가 또한 구성원들의 필요를 당사자로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으며, 이런 기반을 통해 구성원들은 마을 활동가들의 의도를 신뢰할 수 있으며 마을 변화를 만드는 주체로서 활동에 동참하게 된다.


(3) 내부 자원 활용 능력: 마을 활동가는 마을 내부 자원을 활용하며 마을 공동체의 역량을 강화한다. 마을 활동가는 마을이 갖고 있는 문화적 특성과 규범을 이해하고 있다. 또, 마을 안에 존재하는 인적, 물적 자원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 내부 자원이 마을 내에서 활용될 때, 구성원들의 역량이 강화되고 이는 마을 전체의 역량 강화로도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을 통해 구성원들은 마을에 대한 자부심과 구성원으로서의 주체성을 갖게 된다. 이런 변화는 마을 활동을 위한 단단한 기반이 되며, 외부 의존도를 감소시키며 마을 공동체가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며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만든다.

image.png <사진-포천 장독대마을 입구>

포천 교동에 있는 장독대마을의 이수인 대표는 여기서 말하는 전형적인 근접 리더(Proximate Leader)이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인 포천의 교동으로 돌아왔을 때, 무엇보다 먼저 변화해야 할 것은 마을의 시스템이 아니라 마을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공동체 의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교동은 탄광지대로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광부 일을 고되게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았기에 내일에 대한 기대, 변화에 대한 열망을 사치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구성원의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가 먼저 시작한 변화는 마을 주거 환경 개선이었다. 오래된 마을 주택을 함께 새로 짓고, 오폐수, 상하수도 처리시설을 만들고, 주민들과는 마을 골목 어귀마다 꽃을 심었다. 그때부터 마을 구성원들도 ‘우리도 뭔가 할 수 있어’를 느끼기 시작했다.


농사짓기에 좋지 않은 땅을 가진 장독대마을에서 함께 잘 살려면 마을 구성원들이 공동체로 하나가 되어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마을 구성원들이 공동체의 필요를 인정하고 소속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 한탄강 댐 건설로 인해 마을이 수몰 위험 지역으로 선정되어 마을 전체가 이주하게 되었을 때, 마을의 분위기는 뒤숭숭해졌다. 보상금이라는 제도가 있긴 했지만 새로운 집터를 찾고, 집을 짓고, 삶의 터전이 홀딱 뒤집어지는 상황을 극복하기에 결코 넉넉하진 않았다. 우리끼리 공동체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극대화되었고, 새로 이주한 마을에서 집을 지을 때 모든 집들이 담을 쌓지 않기로 뜻을 모았다. 마을이라는 공간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그로 인한 운명도 공동체로서 함께 공유하게 된다는 것이 마을 전체에 퍼지게 된 순간이었다.

image.png <사진-포천 장독대마을 이수인 대표>

이수인 대표는 영농조합 법인을 설립하고 마을 주민들이 조합원이 되어 함께 마을 안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개발했다. 모내기 체험 프로그램을 할 땐, 마을의 어르신을 초대하고, 경북 상주에서 온 감을 재가공하는 사업을 할 땐, 마을의 어머니들을 불러 함께 일했다. 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 지원 제도를 마련했고, 마을 주민들은 이를 통해 바리스타, 심리 지도, 쌀 클레이, 슬로 푸드 자격증을 따게 되며 영농 조합 내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마을의 주민을 단순히 마을에 사는 사람으로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협력적 관계로 새로운 시도를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 구성원이자 인적 자원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변화이다.


장독대마을의 다음 목표는 마을 안에서 서로를 돌보는 복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마을 전체가 고령화가 되어 가는 피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 바로 옆집 할머니가 요양 병원에 들어가는 것을 사형 선고처럼 느끼는 것을 보고 사회복지사,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마을 주민들이 마을 안에서 노인들을 케어해 주는 시스템을 그는 상상했다. 지금 당장 마을이 직면한 문제는 무엇인지, 현실적으로 어떻게 마을 공동체가 해결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고 그릴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마을 공동체에 근접한 리더이기 때문이다.


시골 사람들은 이렇게 넓은 자연환경에서 크잖아요. 갑자기 단절된 곳에 가게 되면 심리적인 압박감이 오게 돼 있죠. 어차피 고령화 사회인 농촌에서 우리 스스로가 서로를 케어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가 만들 수 있는 행복이 아닐까. 그게 제가 만드는 농촌 마을 공동체로서 갖고 있는 꿈이에요. 너와 내가 서로 케어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 복지 시스템.
- 장독대마을 이수인 대표

마을이라는 공간적 범위가 갖는 한계의 특성상 근접성은 곧 전문성이 된다. 마을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그 마을의 필요와 내부 자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전문가가 아닌 마을에 있을 수 있다. 기술적인 전문성만을 전문가로 볼 때가 아니라, 마을의 고유함과 특징을 이해하는 것을 전문성이라고 본다면 마을 활동가야말로 마을의 전문가일 것이다.


인류학자 샹바오의 책 <주변의 상실>에서는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이나 거대한 사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는 극단을 오고 가지만, 정작 이 둘의 중간 지점인 자신의 주변을 잃어간다고 한다. 이러한 주변의 상실은 의미의 빈곤을 만들며, 현대인이 자신의 세계인 현실에 발을 단단히 붙이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감이 없이 붕 뜬 초월감만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샹바오는 이러한 주변의 상실을 극복하는 태도로서 ‘방법으로서의 자기’를 제시하는데, 이때의 ‘자기’란 자기 삶의 구체적 경험이자 자기 삶을 구성하는 ‘주변’과 ‘생활’, 그리고 자신이 속한 ‘마을’ 혹은 ‘지역사회’를 의미한다. 거대한 담론, 중심, 국가라는 큰 세계에서 시작된 엉성한 이야기로 자신을 채우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작은 세계에서 직접 경험하며 관계를 맺고, 이 경험들을 통해 더 큰 세상을 명징하게 이해하며 개인의 의미와 존엄을 되찾게 된다고 말한다.


마을활동가들을 인터뷰하며 느꼈던 뜻 모를 기쁨과 안도감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놓치고 있던, 잊고 있던, 옅어지고 있던 마을이라는 주변이 여전히 이 세계 속에서 존재하고 기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됨에서 오는 어떠한 안도감이었다. 또, 마을이라는 작은 세계 속에서 구체적인 자기 삶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주변을 변화시키며, 개인으로서의 의미와 존엄함을 지켜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었다.


마을 활동가라는 타이틀은 이들이 하고 있는 역할의 의미를 다 담지 못한다. 지금까지 실제로 만든 변화들과, 이들이 갖고 있는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다 설명하지 못한다. 이제는 그 타이틀 너머에 있는 이들의 존재 가치에 대한 내러티브가 우리 안에 새롭게 피어올라야 할 때다.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수요일엔마프'

안지혜 진저프로젝트 디렉터

작가의 이전글마을 공동체에서 동네 모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