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를 좋아하시나요?
소고기를 좋아하시나요? 비건을 실천하시는 분이 아니라면 소고기를 싫어하는 사람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1980년대까지만 해도 소고기라고 쓰면 잘못된 표현이었습니다. 소고기를 소고기라고 하지 그러면 뭐라고 하냐고 어이없어하실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연령이 젊을수록 더욱 그렇겠죠. 쇠고기라고 해야 합니다. 지금은 소고기와 쇠고기 모두를 인정하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짜장면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자장면만 인정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생활 언어의 중요성을 떠올리기 위해서 시작된 글이 음식 칼럼이 되었습니다. 주제로 돌아가서 '마을'이란 단어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맞춤법은 소의 고기란 뜻의 쇠고기가 맞지만 편하게 소고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고기도 표준어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참고로 한국만큼 국가 주도의 표준 맞춤법을 강력하게 시행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이론과 원칙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많이 사용하면 표준이 되고 사용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게 언어입니다.
그러면 마을은 어떨까요? '마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고 집들 사이로 몇백 년은 되었을 법한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조그마한 시내가 흐르고 뒤로는 나지막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쌓고 있습니다. 이건 꾸며낸 이미지가 아닙니다. 오랜 경험으로 뇌리에 그려지는 모습입니다. 마을의 사전적 의미가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란 뜻도 우리의 경험과 생각이 맞다고 알려줍니다.
현대 사회의 대도시와 마을은 어울리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도시에서 마을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마을이 나온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성과 공동체성을 잃어가는 시대에 회복을 위한 구호의 의미가 있습니다. 마을이란 두 글자에 자본주의 대안, 지역복지, 주민자치, 참여, 협력, 환경, 지속가능성까지 다양한 함의가 담겨 있는 이유입니다. 이 취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호의 역할을 했다면 이제 다른 역할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생활에 없는 단어를 구호로 외치면서 시대를 만들어 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민주화가 대표적입니다. 군사 독재 시절에 민주주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민주화를 목이 터지라 외쳤고 민주화를 생활 속으로 가져왔습니다. 마을도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물질 중심, 자본 중심, 개인 중심의 극단으로 치닫는 열차를 공동체와 인간중심으로 되돌리려는 외침에 마을이 있습니다.
지금도 물질과 자본과 개인 중심의 열차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속력을 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마을이 표방하는 가치가 중요하고 마을이란 단어가 유효한 이유입니다. 앞으로도 마을을 구호로 추구한 목적과 방향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방법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목적과 수단을 구분하지 않으면 수단이 목적이 되어 버립니다. 마을 사람들이 친해지기 위한 목적으로 축제를 준비했는데 축제라는 수단에 집중하면 어느새 행사가 목적이 됩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수단이었던 행사가 목적이 되면 사람이 수단이 되는 최악의 실천이 됩니다. 그래서 더욱 목적과 수단을 구분하고 목적에는 집중하되 수단은 시대와 환경, 사람에 맞춰서 유연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리얼 예능의 시대입니다. 반복되는 코미디로 웃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반복되거나 너무 인위적인 각본이 눈에 보이면 채널이 바로 돌아갑니다. 리얼 예능으로 대표되는 생활화가 중요합니다. 정치와 종교가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웅변 학원에서 생활 언어와 다른 말투와 억양을 배웠습니다. 지금 그렇게 말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습니다. 구어체와 문어체가 가까워집니다. 노래도 말하듯이 노래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마을도 생활에 더 가까워져야 합니다.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합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약속 장소를 잡을 때 우리 마을로 오라고 하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만나자고 해야 자연스럽습니다. 오랜만에 너와 나의 관계를 증진하여 지속적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자고 말하면 친구 끊깁니다. 생각이 언어로 나오지만 동시에 언어가 생각을 지배합니다. 생활에 가까운 단어를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을 공동체보다는 동네 모임이 자연스럽습니다. 공동체 구축보다는 이웃 관계를 넓힌다는 게 편하게 와닿습니다.
생활에 가까운 언어를 써야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됩니다. 마을 공동체에 참여하는 건 부담스럽지만 동네 모임이라면 한결 가볍습니다. 더욱이 참여 신청을 하고 출석을 체크하지 않는 유연한 모임이라면 한 번쯤 나가볼 만합니다. 그러다 재미있고 마음에 맞는 이웃을 만나면 나오라고 전화하지 않아도 발이 절로 움직입니다. 학교에서 친구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해서 친구가 생긴 게 아닙니다. 같은 반이고 하굣길이 같고 이야기하다가 우연히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친한 친구 2명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래야만 한다고 지시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물론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을 때는 약간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불을 피워야 하는데 나무가 젖어 있다면 그냥은 되지 않습니다. 어느 시점까지는 토치로 불을 붙여줘야 합니다. 그러나 뭐든지 과하면 탈이 생깁니다. 토치를 남발하면 나무가 젖지 않았고 날이 건조해서 천천히 기다리면 될 때도 토치부터 들이댑니다. 그게 빠르고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경험을 해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마을'이란 화두로 지난 시간 동안 힘을 다했습니다. 외국 사례에서나 보았던 마을총회와 축제를 우리 손으로 이뤄냈고 무수한 마을 모임을 경험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서 힘쓴 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을을 알리며 한국 사회의 젖은 나무에 어렵게 불을 붙였다면 이제 시간이 걸려도 나무를 믿고 기다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보수 정권의 집권으로 어렵게 불 붙인 불씨마저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마을을 경험한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불씨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맛보면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설사 그 맛을 일상에서 자주 먹지 못할지
라도 맛의 기준이 됩니다.
그동안 뿌린 씨앗의 힘과 우연한 연대의 힘을 믿고 조급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마을의 가치는 몇 년 만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보조금 사업처럼 연간 단위로 이뤄지지도 않습니다. 접촉이 사라진 시대에 만나는 기회를 열어 놓는 것까지가 우리의 몫인지도 모릅니다. 다음은 우리가 아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우연한 만남과 소소한 작당모의에 있습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표정에서 웃음이 꽃피고 생기가 돈다면 그것만 한 자산도 없습니다. 보조금 지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형의 자산입니다. 원래 소중한 것일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자본주의 최정점 한국의 제도를 바꾸기는 당장에 불가능하지만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표정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게 먹고살기도 힘든 무한경쟁의 한국 사회에서 동네 이웃과 만나는 사람이 마을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짓게 되는 살맛 나는 표정이 공동체입니다.
노수현 마음대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