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케어러(Young Carer) 은영의 이야기

실질적인 영 케어러(Young Carer) 지원을 위한 근본적인 질문들

영 케어러(Young Carer)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다양한 지원사업이 생겼고 지자체의 조례도 많아졌다. 무엇보다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며 지원체계가 전국화될 예정이다. 이럴 때일수록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양적으로 서비스가 늘어날 때, 정말 영 케어러(Young Carer)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그를 위해 영 케어러(Young Carer)를 이야기를 들어보자.


영 케어러(Young Carer) 은영의 이야기


은영은 30대 초반으로, 조현병과 알츠하이머가 이는 어머니의 주돌봄자가 된 지 10년을 넘기고 있었다. 은영의 삶을 되돌아보면 많은 것이 한꺼번에 겹친 순간들뿐이었다. 그가 대학생이던 때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할머니도 장애가 있었다.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대부분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사라진 자리를 메꿀 수 있는 사람은 은영뿐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우울감에 시달렸고 낙상 사고까지 벌어졌다. 할머니의 인지는 빠르게 저하됐다. 모든 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대학교에 온전히 다닐 수 없었다. 집에는 돌봄이 필요한 할머니와 어머니가 아무런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학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한 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동기는 은영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동기는 은영에게 수강 신청을 취소할 거냐고 물었다. 자신이 수강 신청을 하지 못한 수업이 있는데, 은영이 취소하면 대신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동기의 말 한마디에, 은영은 대학이 자신의 존재가 허용되지 않는 공간이라고 느꼈다. 결국 자퇴했다.


집에는 당장에 쓸 돈이 없었다. 병원비와 생계비로 잔고는 바닥이 난 상태였다. 은영은 8시간 근무할 수 있는 일을 구했지만, 당시 월급은 120만 원에 불과했다. 월급은 들어오는 족족 병원비와 생계비로 자취를 감췄다. 식사는 밥을 물에 말아서 김치로 때우는 게 전부였다. 할아버지가 죽고 유산으로 남은 집 한 채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유산은 여러 자식들의 공동 명의여서, 함부로 처분할 수도 없었다. 할머니의 인지 저하는 점점 더 심해졌다. ·


결국 이모에게 할머니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이모는 할머니를 돌보는 대신 집 보증금을 달라고 했다. 더 이상 선택지가 없었다. 보증금을 빼주기 위해서 어머니와 살 곳을 찾아야 했다. 당시 사귀던 사람이 군인이었다. 결혼을 하면 군인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남편과 어머니, 은영 셋의 생활이 시작됐다. 여전히 은영의 나이 20대 초반이었다.


남편은 어머니와 함께 잘 지냈다. 은영의 돌봄 부담을 많이 나눠서 졌다. 주변 사람들은 아내의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며 남편을 치켜세웠다. 은영도 남편이 고맙고 없어선 안 된다는 걸 잘 알지만, 주변 사람들의 말속에서 은영은 또다시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느꼈다. 자신의 돌봄 역할이 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날은 없을 거 같았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은영이 어머니를 돌보는 건 딸이니까 당연한 것이었고, 그러므로 돌봄으로 아무리 고생해도 인정을 받을 길이 없었다.


결혼을 하니 가구소득이 올라간다. 남편과 은영이 번 돈이 합해지면 수급자 선정기준을 훌쩍 넘어버린다. 좀 더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 선택했던 결혼이 모든 복지 신청의 기회를 막아버렸다. 어머니가 아플 때마다 큰 병원비는 남편에게 손을 벌리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도 자신의 부모를 부양해야 했는데, 은영의 어머니를 돌보는 것도 모자라 부양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니 언제 문제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은영은 남편에게 금전적으로 기대지 않을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요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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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케어러(Young Carer) 하라의 이야기


하라는 아빠의 ‘자립’을 걱정한다. 부모가 자식의 자립을 걱정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자식이 부모의 자립을 걱정하는 모습은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하라에게 아빠의 자립은 큰 과제이자 도전으로 다가온다.


자립을 위한 첫걸음은 아빠를 이끌고 지적장애 진단을 받으러 병원에 다니는 것이었다. 그래야 사회서비스나 복지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립을 위한 긴 여정에서 지치지 않을 마음도 중요했다. 하라의 다짐도 단단해야 했고, 아빠의 의지도 꺼지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랫동안 자신이 ‘잘 해내지 못하는 일’들을 겪으며 자신감이 바닥이 나있었다. 주변에 의존‘만’하는 게 익숙했다. 사회에 첫 발을 떼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한글을 익혀야 했다. 지적장애인 언어치료를 지원하는 한 장애인복지관에 신청했을 때, 대기 순번이 400번대였다. 2년이 지나 다시 연락하니 200번대로, 1년에 100번씩 줄어드는 듯했다. 이제 곧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최근 복지관에 언어치료사가 퇴사해서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말이 돌아왔다. 결국 하라가 돈을 벌어서 아빠의 언어치료를 지원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남긴 집 한 채로 아무런 경제적 지원도 받지 못했기에, 긴 시간 일해서 두 사람 몫을 버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긴 시간 일을 하게 되니 아빠 곁에 있을 시간이 부족했다. 아빠가 지적장애 진단을 받은 후, 곧바로 장애인활동지원을 신청할 작정이었다. 늘 하라가 곁에 붙어 있을 수 없었다. 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해석해 주고 안전을 보장하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바랐지만, 장애인활동지원은 주로 신체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 받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교통비 지원 말고는 아빠에게 사회적 지원은 없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아빠의 취약함을 세상이 애써 무시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일하고 아빠의 일상을 챙기고 다시 일하는 것만으로 하루를, 일주일을, 일 년을 다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어느 날이었다. 출구 없는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한 압박감에 당장 하루를 살 힘조차 없었다. 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서 심리상담을 받으며 조금 회복했건만, 몸에 이상 신호가 찾아들었다. 난소 근처에 물혹이 터지며 간까지 피가 퍼져버렸다. 결국 혈복강 수술을 받았고, 평생 자궁내막증 치료제를 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최근에는 호르몬 불균형으로 혈소판 수치가 떨어져 골수 검사도 받아야 했다. 돌봄자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조기발견과 통합돌봄


은영과 하라의 사례를 보며 우리는 저 복잡한 돌봄의 부담 속을 벗어나기 위해 어떤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지 고민하게 된다. 이들이 조기에 발견되었으면 어땠을까? 이렇게 장기화되고 피폐해지기 전에 사회적 지원이 가능했다면 어땠을까? 영 케어러(Young Carer) 지원의 핵심은 조기 발견여야 한다. 돌봄의 부담이 장기화돼서 돌봄제공자도, 돌봄 당사자도 모두 피폐해졌을 때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예상 가능한 피해나 부정적인 영향을 낮추는 것을 목적으로 조기 발견해야 한다. 그를 위해 복지나 돌봄의 정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이들의 왜 영 케어러(Young Carer) 될 수밖에 없었을까? 영 케어러(Young Carer)가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주변에 어른이 없기 때문이다. 돌봄을 나눠지는 어른도, 돌봄 문제를 상의할 어른도 마땅치 않다. 조기 발견과 더불어 이 부재한 어른의 자리도 공적으로 회복해야 한다. 영 케어러(Young Carer)가 돌봄 상황 속에 있더라도 5년 후, 10년 후에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일종의 ‘매니저’가 필요한 셈이다. 누군가는 돌봄을 더 잘하고 싶을 수 있고, 누군가는 돌봄을 하고 싶지 않을 수 있으며, 누군가는 돌봄을 해서는 안 되는 상태일 수도 있다. 개인별로 섬세하게 고려하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


영 케어러(Young Carer) 지원을 시범적으로 진행하는 현장들을 보면 서비스가 있음에도 지원하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대게 영 케어러(Young Carer)는 서비스를 원하지만, 아픈 당사자인 부모나 조부모가 서비스를 거부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 반복해서 찾아가며 신뢰를 쌓고 설득하고 인식의 변화를 만들어줄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현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가정도 있다. 이런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사례관리사에게 과도한 인원이 배정되어선 안 된다.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시범사업 중인 청년미래센터는 광역의 센터당 돌봄코디네이터 6명을 배치하고, 1명당 100명의 영 케어러(Young Carer)를 사례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한 사례관리사당 적정한 인원을 명시해야 한다. 몇 명이 적정 인원인지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돌봄제공자와 돌봄당사자를 함께 지원하려면 다양한 돌봄서비스가 필수적이다. 현행 서비스는 대부분 가사 지원이나 방문 요양 정도다. 이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돌봄 욕구들이 있지만, 지역사회에는 마땅한 자원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 영 케어러(Young Carer)를 지원하는 실무자는 영 케어러(Young Carer)의 자립을 위해 아픈 이를 시설이나 요양병원에 입소시킬 것을 권유하게 된다. 그 길 말고는 자립을 위한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영 케어러(Young Carer)의 자립과 돌봄당사자의 돌봄 필요는 대립적인 것일까? 이를 대립적인 것으로 두지 않으려면 더 많은 지역사회의 돌봄 자원이 있어야 한다.

내년 시행 준비 중인 ‘돌봄통합지원법’의 내용을 잘 마련하는 것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가사 지원이나 방문 요양뿐 아니라 방문진료나 간호, 재활 지원, 수시 안전 확인 방문, 단기보호, 주거 수리, 심사지원, 병원이나 공공기관 동행 및 이동지원 등 다양한 욕구들을 충족할 수 있는 서비스가 보편화돼야 한다. 더불어 정신장애, 희귀질환, 중증질환은 돌봄서비스가 전무하다. 보편적인 돌봄서비스의 확충 없이 영 케어러(Young Carer)만 지원하겠다는 건 반쪽짜리 지원에 불과하다. 아픈 당사자도 잘 살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 때, 영 케어러(Young Carer)도 그만큼의 부담을 덜 수 있다.


영 케어러(Young Carer) 정의와 번역어 문제

영 케어러(Young Carer)의 정의와 번역에도 문제적인 지점들이 있다. 영 케어러(Young Carer) 지원을 가장 활발하게 하는 서울시의 조례에는 영 케어러(Young Carer)의 가족 범위가 협소하다. ‘서울특별시 가족돌봄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는 돌보는 가족의 범위를 민법 제779조, 그러니까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등으로 제한한다. 하지만 이미 시민사회나 학계에서도 민법 제779조가 가족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기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다행히 ‘경기도 가족돌봄청소년 및 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에서는 ‘부모를 포함한 가족 구성원’으로 폭넓게 규정했다.

실제로 조부모와 함께 살다가 조부모 모두 돌아가시며 조부모가 돌보았던 장애가 있는 삼촌을 돌보는 영 케어러(Young Carer)도 있고, 비혈연 가정위탁가정에서 자라 자신을 길러준 노부부를 돌보는 영 케어러(Young Carer)도 있다. 이 외에도 오늘날 가족의 형태는 더욱 다양해지고, 돌봄을 맡게 되는 경로도 복잡해진다. 2022년 정부의 실태조사에서도 영 케어러(Young Carer) 중 ‘기타 친인척’을 돌보는 경우는 18세 이하의 경우 11.56%, 19~34세의 경우 22.93%를 차지한다. 민법 제779조에 해당하지 않은 영 케어러(Young Carer)가 적지 않은 셈이다. 호주는 영 케어러(Young Carer)를 부모님, 배우자, 형제자매, 자녀, 친척, 친구를 돌보는 25세 이하로 보고 있다. 민법 제799조로 가족을 제한하기보다, 구체적인 돌봄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돌봄 과정의 어려움 정도나 스트레스를 파악하는 척도로 영 케어러(Young Carer)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영 케어러(Young Carer)의 번역의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이미 영 케어러(Young Carer)는 ‘가족돌봄청년’으로 번역해서 쓰고 있다. 그에 따라 아동은 ‘가족돌봄아동’, 청소년은 ‘가족돌봄청소년’ 등으로 부른다. ‘가족돌봄청년’이라는 용어는 영 케어러(Young Carer) 처음 대책을 마련할 당시에 국립국어원이 ‘가족돌봄휴가’, ‘가족돌봄휴직’를 차용해 가족돌봄청년’을 제안하며 등장했고, 이후 대책 안에 담기며 공식화됐다.

하지만 현장에서 청소년들을 만날 때 이 용어를 애써 쓰지 않는 모습들을 자주 목격한다. 실무자들은 아이들에게 가족돌봄을 앞으로도 계속해나가야 한다는 ‘책임’을 부과하고 ‘낙인’을 찍는 것 같아서 이 말을 피한다고 했다. 돌봄 상황에서 아동, 청소년, 청년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사회적 호명이 생긴 것인데, 외려 돌봄 안에 가두는 호명이 되는 것이다.

조금 더 당사자 친화적인 용어로 변화가 필요하다. 영 케어러(Young Carer)라는 원어에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다. 지원법을 마련할 때 이 용어까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 돌봄아동, 돌봄청소년, 돌봄청년 혹은 아동돌봄자, 청소년돌봄자, 청년돌봄자 등으로 바꿔 부르면 어떨까? ‘가족을 돌본다’에 방점을 찍는 게 아니라, ‘이행기에 돌봄을 한다’에 방점을 찍자. 앞으로 오래도록 쓰일 용어라면 당사자가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용어로 변화가 필요하다.


시혜적 지원이 아닌 권리 기반의 접근


영 케어러(Young Carer)를 지원할 때 단지 눈에 보이는 어려움만 해소하는 것은 넘어 권리 기반 접근이 필요하다. 권리 기반의 접근은 영 케어러(Young Carer)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방향으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는 핵심이다. 아픈 부모나 조부모, 어린 형제자매를 돌보는 일이 기특해서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혹은 불쌍하기 때문에 시혜적으로 지원해서도 안 된다. 청(소)년기 아픈 가족의 곁을 지킬 때, 어떤 권리가 침해당하고, 어떤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영 케어러(Young Carer)는 생애 이행기에 다양한 과업들을 수행하지 못한다. 학업이나 또래 친구 사귀기, 놀이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정서를 발달시키는 과정도 박탈당하기 일쑤다. 이를 우리는 ‘성장권’이 침해당한다고 말해야 한다. 영 케어러(Young Carer) 뿐 아니라, 우리 모두 나이가 든다고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지 않는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원이 필요하고, 정서적 지지도 필요하며, 참조할 수 있는 어른 모델들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될 수 있다. 돌봄 상황으로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권리의 언어로 영 케어러(Young Carer)의 위기를 바라보아야 한다.


또 다른 권리는 ‘돌봄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다. 영 케어러(Young Carer)들에게 돌봄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자식이기 때문에, 가족 내 다른 어른이 없기에, 강제로 떠맡는 것이 가깝다. 돌봄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려면 돌봄을 하고 싶다고 할 때 잘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지원을 해야 한다. 돌봄을 혼자서 과도하게 짊어지지 않도록, 하고 싶은 만큼 잘 해내도록 하는 지원을 구상해야 한다. 돌봄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는 돌봄 교육이 그 방법일 수 있다. 아픈 가족의 질병을 이해하고 더 잘 대처할 수 있다면 돌봄에 대한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혹은 돌봄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영 케어러(Young Carer)와 돌봄수혜자 간의 가족상담을 지원할 수도 있다.


반대로 돌봄을 하고 싶지 않다면 어떨까? 분리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돌봄수혜자에게는 개별 맞춤으로 혼자서 생활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영 케어러(Young Carer)에게는 주거 독립과 자립을 지원할 수 있다. 이렇듯 영 케어러(Young Carer)의 뜻을 존중하고 반영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중심에는 이들에게 돌봄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방향이 있어야 한다.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방향성은 돌봄의 가치 인정 문제다. 영 케어러(Young Carer)는 돌봄은 허송세월을 보낸 것일까? 그저 불행했던 것이고, 무가치한 일에 시간을 쏟은 것일까? 우리 사회는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해야 한다. 돌봄은 우리 삶을 유지하는 가치 있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돌봄을 받아왔고, 돌봄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받을 것이다. 돌봄 없이 우리 삶은 없다. 돌봄은 우리 삶의 필수적 조건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무가치하게 취급받는다. ‘무급노동’으로 값싼 취급을 받고, ‘그림자노동’으로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돌봄이 계속해서 무가치한 취급을 받는다면, 영 케어러(Young Carer)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 또한 위태롭다. 돌봄의 가치 인정은 영 케어러(Young Carer)가 겪는 손해를 경감시켜 주는 동시에, 우리 모두의 삶의 조건을 탄탄하게 하는 방향이다.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우선 ‘돌봄수당’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광주광역시 서구에서는 국내 최초로 ‘가족돌봄청년수당’을 도입했다. 매월 25만원 씩, 돌봄이 끝날 때까지, 혹은 ‘가족돌봄청년’의 나이가 지날 때까지(광주광역시 서구 가족돌봄 청소년·청년 지원 조례 기준 39세) 지급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으며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광주광역시 서구 가족돌봄 청소년·청년 지원 조례 제1조 목적) 하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 ‘돌봄연금’에 대한 논의도 나온다. 돌봄을 했던 시간 동안, 경제적 활동을 하지 못하니, 당장의 생계뿐 아니라 노후의 안정도 불안정하다. 돌봄을 하더라도 노후의 안정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이는 돌봄 불평등을 해소하는 효과를 가진다. 돌봄 불평등이란 돌봄을 하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빈곤해지고 사회적 관계도 위축되기에 나중에 돌봄을 필요할 때 돌봄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누구나 돌봄이 필요해지는 시기는 바로 노년이다. 돌봄자가 노년을 맞을 때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돌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돌봄연금 같은 강력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영 케어러(Young Carer) 중 청년기에 접어든 이들에게 가장 큰 호응이 있는 정책은 취업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다. 서울시 성동구에서 시행하는 ‘돌봄경력인증서’가 그 답이 될 수 있다. 돌봄경력인증서는 돌봄을 하나의 경력으로 인정하고 자격증으로 발급한다. 돌봄, 육아, 출산, 간병 등으로 우리는 돌봄 할 때 ‘경력단절’을 겪는다. 영 케어러(Young Carer)는 경력단절을 넘어 ‘경력형성불가’ 상태다. 하지만 성동구는 경력단절이 아니라 ‘경력보유’라고 강조한다. 돌봄도 충분히 경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기획하고 실행하는 노동이다.


자격증 취급 과정은 이렇다. 두 달간 돌봄 경험을 바탕으로 직무를 개발하고, 자격증을 발급받는다. 그런 이후 성동구청과 협약한 12개 기업에 우선 채용될 수 있다. 돌봄으로 사회에 진입하기조차 힘든 영 케어러(Young Carer)들에게는 큰 지지가 될 수 있는 정책이다. 돌봄의 가치 인정이 필요한 이유다.


모든 케어러가 안전한 세상


돌봄자 중 영 케어러(Young Carer)만 지원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돌봄 부담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질병이나 장애, 자립적인 생활이 어려운 가족을 돌보는 부담이 꼭 아동, 청소년, 청년만의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사적인 영역에서 아픈 이를 돌보는 역할의 대부분은 중장년과 노년이 수행한다. 이들 또한 육체적 피로, 정신적 고통, 경제적 빈곤을 호소하지만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실태조사나 사회적 지원도 없다.

또한 영 케어러(Young Carer)의 돌봄이 장기화된다면 영 케어러(Young Carer)는 중년 케어러가 된다. 청년에서 중년이 된다고 돌봄 부담이 사라질 리 만무하다. 초고령사회 속에서 돌봄자 지원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영 케어러(Young Carer) 지원에서 다양한 세대의 돌봄자의 지원으로 확대해 나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두가 돌봄을 하더라도 아프지 않고 고립되지 않으며 손해 보지 않는 세상을 꿈꾸자.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수요일엔마프'


조기현 N인분 대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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