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된 지 한 달이 다돼 갑니다. 백수가 과로사로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요? 제가 지금 딱 그렇습니다. 욕심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바쁜 것이 버릇인 건지,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세워 놓은 계획과 일정들을 처리하느라 아내와 대화하는 시간,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이 더 줄어들어 버렸습니다.
한참을 바쁘게 계획표에 일들을 하나하나 쭉쭉 그어가며 처리해 가고 있는데 일상적인 핸드폰 알람이 울립니다. 브런치 알람인 소문자 "b"입니다. 최근 범접할 수 없는 글쓰기 선배님들의 브런치를 돌아보고 있기 때문에 내가 단 댓글에 작가님께서 감사하게도 대댓글을 달아주셨나 보네, 구독 중인 어느 작가님이 글을 발행하셨나 보네, 나중에 읽어봐야지 하고 넘어갑니다.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기다리던 알람이었는데 시큰둥한 거죠.
브런치를 막 시작하고 저 'b'알람이 언제 울릴까 오매불망했었습니다. 그저 글쓰기 연습이라고 생각했던 플랫폼이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내글을 보고 공감하고, 응원해주고, 또 그 표식으로 라이킷을 날려주고, 댓글을 달아주고... 첫 라이킷 10 돌파에 오던 그 짜릿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요.
첫 라이킷 10돌파
내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자는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포장하려니 글 쓰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또 선배 작가님들의 브런치를 돌아다니며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비교되는부족한글쓰기 실력으로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펜은 들었는데 글이 써지지가 않았습니다. 초심을 잃었 던 것같습니다.
회사를 다니며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지속적으로 있었고,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여기저기 알아 봤습니다. 그중에 출판사에 근무하는 아내의 친구가 있었고,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책을 한번 쓰고 싶다면서 글짓기는 어떻게 하는지, 책은 어떻게 내는지, 인세는 어떻게 되는지, 에세이와 소설을 좀 쓰고 싶은 데 어떻게 하는지, 인쇄를 한다면 몇 부를 발행해야 하는지...오랜만에 아내 포함 친구들과 수다 떨 거라고 우리 집을 찾아온 아내의 그 친구를 좀 당혹스럽게 만들었지요.
하지만 심성 고운 그 친구는 옹알이하며 걸음마도 못하고 배밀이하는 저에게 친절히 이것저것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선 '브런치'에 글을 올려보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라고요.
' 브런치??'... 속으로 반문하였습니다. 그냥 포털 사이트의 한 코너일 뿐인 그곳은 아무나 글 쓰고 알고리즘 돌려서 노출되는 곳 아닌가? 그래 뭐 진입장벽이 낮으니 우선 올려보지뭐...
조언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처음에는몇부 발행이니 인세계약할 때 주의사항들을 뭐니 하며일어서려는 아내의 그 친구를 붙잡고더 꼼꼼히 물어봤습니다.
(지금 이시점에서 그때아내 친구의 시선으로 나를 돌아봅니다. 제가 얼마나 귀엽게 보였을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 한 아이처럼 보였을까요? -같잖아 보인다는 단어를 쓰고 싶었지만 아내의 친구가 그런 단어를 쓰지 않는 스타일이기에 이렇게 표현해봅니다.)
- 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 격언
퇴직을 한 달 남은 시점쯤부터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쉽게만 생각했던 브런치에신청서를 대충 작성해서 작가 신청을 했습니다.
어 그런데 "시무룩 금지"!!?? 아하, 그냥 계획서만 제출하면 안 되는구나, 글을 몇 개 적고 보여줘야 하는구나. 두 개의 글을 적어 저장시키고 다시 작가 신청을 했습니다. 한번 떨어진 터라 정성을 들여 신청서를 좀 다듬고, 글도 진실되게 썼습니다. 당연히 작가 승인이 될 것이라 믿고 회신을 기다렸습니다.
평일 기준으로 일주일 안에 회신이 올 것이라는 답변이 있었지만, 승인 여부를 빨리 확인하기 위해자꾸 들락 거렸습니다. 그런데... 또!! 시무룩 금지!!!??? 아 이거 장난이 아닌 거구나. 쉬운 게 아니구나... 브런치 작가 되기 노하우를 자세히 읽어 보고 브런치를 꼼꼼히 둘러보았습니다.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저는 아직 걸음마도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을요...
다시 여러 개의 글을 짓고, 제 온 힘을 다해 적은 글인지, 틀린 글자는 없는지, 문맥이 어색하지 않은 지, 읽을 때 불편하지 않은지 그리고 진실 되게 적었는지 탈고에 탈고를 거듭해서잘 적었다고 생각되는 글 세 개와 함께 다시 작가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신청서에 추신도 하나 적었지요 '두 번이나 떨어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자신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다린 회신...
"축하드립니다!"
답변은 2021년 해가 막 떨어져 가고 있을 때 왔습니다. 우습게 봤던 브런치에게 쌔게 한대 맞고, 아니 두 번 맞고, 정신 차리고 작가 승인받았습니다. 미천한 저를 받아 준 브런치가 감사했습니다.
브런치를 우습게 봐?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합류할 수 있었던 브런치의 알람에 또 시큰둥 하는 겁니다. 할 것들 다하고 나중에 봐야지 했던, 그 알람을 뒤적 거리다가 또 뒤통수를 한대 쌔게 맞습니다.
"구독자가 10명을 돌파했습니다"!!!!... 편의에 의해 여유시간 대에나 글짓기하며 일관성 없게 발행되는 내 글에 구독하는 사람이 10명이나 됐다고??... 의무감이 들었습니다. 바쁘다,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 이런 주제는 독자들이 흥미 없을 것이다 핑계 대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