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감독님의 열혈 팬입니다. 제가 최고로 애정하는 영화 다섯 편 중 감독님의 영화가 두 편씩이나 들어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셈이지요. 첫 번째 최고의 애정영화 '범죄의 재구성'은 러닝타임 후반에 반전을 드러내며 앞선 구성들이 톱니바퀴처럼 맞춰짐으로써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백미를 저에게 안겨줬습니다. 두 번째 애정영화 '타짜'는 등장하는 주요 배우들, 심지어 비중이 매우 적은 조연의 연기까지도 잘 빚어진 찰떡처럼 끈끈히 이어지며, 정말 한 장면도 버릴 것 없이 예쁘게 빚어져서 씹으면 쫀득쫀득 입안 가득 꿀이 터지는 송편 같은 작품이었지요. 두 편다 스무 번 이상씩은 돌려 봤습니다.
"씁씁 후후", "결혼할 거냐? 결혼해라, 저 여자가 널 살렸다", "사기는 테크닉이 아니다, 심리전이다", "마포대굔 무너졌냐 이 쇄끼야", "정마담... 그 여자 예쁜 칼이야 조심해서 만지라", "천하의 곽철용이도 사기도박한다고 사발 한번 풀어줄까?", "쉽팔, 뭔 통성명은", "천하의 아귀가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 후달리냐?"... 그 두 영화를 생각만 해도 자연스레 입가에 머무는 대사들입니다.
이 편지를 쓰기 전에 쓸까 말까 고민을 좀 했습니다. 누군가, 혹시나, 감독님의 최신작 "외계+인 1부"를 관람하기로 결정했다가 제가 쓴 이 편지를 읽고 나서 마음을 바꿀까 봐 걱정이 된 것이죠. 하지만 브런치에서 제 글은 조회수가 얼마 나오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이가 감독님의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가 관람 전에 제가 쓴 글을 읽을 확률은 0.01%도 되지 않을 극단적인 수치입니다. 그래서 그냥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이 편지가 감독님께 전달될 확률은 그 먼지 같은 수치보다 더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 편지의 의미 자체도 사실 흐릿해 집니다만... 그래도 빈병에 편지를 넣고 넓은 바다에 띄우는 심정으로 한 통 써봅니다.
걱정은 마세요. 악플을 달고자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영화 전문가도 아니고 평론을 할 지식도, 글 실력도 되지 못합니다. 한 명의 팬으로서, 일개 관객으로서 굉장한 사심을 가지고 끄적이고 있을 뿐이니 그냥 글자 그대로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타짜 이후에 제작하신 '도둑들', 좋았습니다. 상업영화의 표본으로서 캐스팅도 화려했고, 그 화려한 배우들도 잘 리드하고 조율하셔서 오락성을 극대화시키셨더라고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그리고 '암살'... 해방 후 재판에서 이정재의 그 변론에 의해 저의 꽉 쥐어진 주먹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스크린에 몰입했었습니다. 역시 감독님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후 오랫동안 감독님의 작품을 기다렸고, 어제 드디어 감독님의 최신작 '외계+인 1부'를 보고 왔습니다. 아무것도 검색하지 않고 딱 세 글자 "최, 동, 훈"만 읽고 그대로 예매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코끝을 싸하게 했습니다. 아직 개봉한 지 열흘 정도밖에 안됐는데 벌써 예매 순위 5위권 밖에 있더라고요. 예매 화면에 영화 포스터도 제가 좀 고개를 갸우뚱하고 봤던 감독님의 작품 '전우치'와도 비슷했고요. 정보를 캐고 싶은 욕망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검색하지 않고 그대로 영화관으로 달려갔습니다.
감독님께 사인받는 기분으로 한 장 찍었습니다.(조조라 관객이 거의 없었으나 영화관 내에서 사진 찍은 점은 용서 부탁드립니다)
한 장면 한 장면 놓치지 않고 봤습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수많은 스태프, 관계자들, 협력업체들 목록들을 쭈욱 봤습니다. 저 많은 사람들, 이해관계자들, 수많은 업체들과 협의하고, 실행하고, 통제하고, 격려하고, 결과물을 도출하고, 수정하고, 결국 최종 승인되고...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해봤습니다. '아 뭔가 이번에는 잘 맞지 않았구나'... 실망보다는 무엇인가 그 이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기발한 상상의 스토리, 좋았습니다. 화려한 액션, 좋았습니다. 웅장한 스케일, 좋았습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배경, 좋았습니다. 배우들의 세대교체를 위해 감독님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배우들을 주연으로 케스팅 하지 않고 젊은 배우들을 주연으로 배정한 것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잘 빚어지지 않는... 서로 맞춰지지 않는 퍼즐 같은... 그 무엇인가... 말로 표현하고 싶지만 표현 안 되는 그 뭐랄까? 그... 그... 하여튼 관객으로서 단순히 그런 찝찝한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배우들이 중간중간 던지는 위트에 입꼬리를 차마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제발 제발, 내가 영화를 볼 줄 모르는 것이라 위안 삼으며 조심스레 핸드폰을 열어 다른 사람들의 평점을 검색해 봤습니다. 거의 테러 수준 평점에, 살얼음판에 서있던 저의 아슬아슬함은 쨍그랑 깨져 버렸습니다. 믿기지 않던 가상은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뉴스 기사도 검색해봤습니다. 흥행참패! 비난일색!입니다. 물론 감독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요...
하지만 감독님, 전 이 말을 꼭 해야겠습니다.
"감독님, 좌절하지 마시고, 실망하지 마시고, 비난을 비판으로 받아들이시고 힘내십시오. 그리고 감독하고 제작하시느라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이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당히 영화 말미에 예고하셨던 2023년 개봉할 '외계+인 2부'도 꼭 보러 갈 예정입니다. 1부에서 아직 감독님이 숨겨놓은 어떤 장치가 폭발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습니다. 설령 이것이 오판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옆에서 귀띔을 해줄지언정, 귀 닫고 그냥 그렇게 믿고 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