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지옥

어제 꾼 꿈이 강렬해서 남긴 기록

by 한배곧
심판의 지옥


천천히 문을 밀자, '치킥' 쇠의 마찰음이 어둠을 흔들었다.
안은 싸늘했고, 공기는 돌처럼 무거웠다.

중앙에는 깊이 파내려 간 원통 모양의 구덩이가 있었다.
그 안에는 액체가 고여 있었는데, 처음엔 물처럼 보였지만, 곧 그것이 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구덩이 뒤에는 어떤 존재가 서 있었다.

한쪽 얼굴은 여자였고, 다른 쪽은 남자였다.
온몸에 돋은 털은 멧돼지의 것처럼 굵고 뻣뻣했다.
피부는 살색이었으나, 죽음을 먹은 살이었다.
그는 알몸이었고, 인간 같았으나 인간이 아니었다.


그 존재가 말했다.
“어서 오게. 여긴 심판의 지옥이다. 심판의 준비는 되었는가.”

그의 목소리는 두 방향에서 동시에 울렸다. 남자와 여자의 음이 섞여, 공간 전체를 흔들었다.




지옥은 생각보다 체계적인 질서 속에 있었다.
망자의 영혼이 문을 통과하면, 제7지옥의 수문장이 직접 맞이한다.
수문장은 영혼을 구덩이 위에 올려놓고,

죄액이라 불리는 액체 속으로 천천히 밀어 넣는다.

죄가 무거울수록, 영혼은 더 깊이 가라앉는다.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 수문장은 왼손으로 영혼을 꺼낸다.

그의 털들이 살아 움직이며 영혼의 몸을 붙잡고, 입은 넓게 벌어진다.

그 안에서 숨겨져 있던 날카로운 이빨들이 드러나고,

빠르게, 정확하게 영혼을 베어문다.
딱, 액체에 잠겼던 만큼만.


대부분의 영혼은 다리를 잃는다.
머리만 남는 경우도 있다.
수문장은 그런 머리를 집어 멀리 던진다.
머리는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판장 아래로 떨어진다.

이윽고 지옥의 어둠 속에서 굶주린 지옥견들이 달려와, 머리를 물어뜯는다.
여전히 살아있는 영혼의 울음인지 포효인지 모를 소리가, 잠시 그곳의 공기를 흔든다.




지옥행이 결정된 영혼은 문을 통과하기 전에 마지막 선택의 기회를 받는다.
지옥문의 관리자는 두 개의 작은 병이 건넨.
왼쪽의 병에는 모든 기억을 지우는 물이 담겨 있고,
오른쪽의 병에는 가장 끔찍했던 기억 여섯 개와 그리고 가장 행복했던 기억 네 개가 들어있다.


이 선택에 대한 재밌는 통계수치가 있다.

오른쪽 병을 고른 영혼이 제7지옥을 통과할 확률은 왼쪽 병을 고른 영혼보다 37퍼센트 낮다.

망자들은 지옥의 비밀을 모른다.

기억에도 죄의 무게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가장 행복했다’고 믿었던 순간이,

대부분 타인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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