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꿀벌의 지혜

by 한배곧

2021년 겨울, 첫 돌이 지난 아이와 한국을 방문했다.

공항에 반가움과 따뜻함은 사라지고,

체온계와 소독약 냄새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금산까지 우리는 ‘방역택시’라는 것을 타야 했다.

창문을 열 수도, 화장실을 마음대로 갈 수도 없었다.

8000킬로의 여정을 건너왔지만, 고향은 차갑기만 했다.


부모님의 집은 텅 비어있었지만,

집은 추울까봐 부모님이 미리 켜두신 보일러 덕분에 따뜻했다.

마스크 너머로 첫 손자와 눈을 마주치던 부모님은 끝내 길고 긴 눈 그림자를 남기며,

손자를 안아보지 못한 채 차마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돌리셨다.

조부모와 손자의 생애 첫 만남 사이에 있던 1 미터 남짓의 거리.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사회적 격리의 얼굴이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잠언 6장 6절



개미는 오래전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다.

둥지에 병이 스며들면 통로를 길게 만들고, 돌아가는 길을 늘리며, 방을 단순하게 바꾼다.

서로를 덜 만나는 대신, 함께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다.

빠름이 주는 효율은 줄지만, 느림이 주는 생존은 길어진다.

개미는 빠름을 버리고 느림을 얻는다. 그 느림 속에 지혜가 깃든다.


꿀벌도 다르지 않다. 병든 일벌은 스스로 벌집 밖으로 나가고,

남은 벌들은 여왕이 있는 방의 문을 좁힌다.

마치 사랑하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 문을 닫는 딸들처럼.


우리는 오늘도 속도를 신앙처럼 믿고 살아간다.

빠른 길, 빠른 결과, 빠른 성공. 그러나 빠름은 언제나 안전을 까먹게 했다.

과속의 도로에서, 무너진 공사장에서,

탈선한 철로 위에서 우리는 빠름의 그림자를 보았다.


판데믹은 끝났다고 말하지만,

그날의 거리두기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애잔함보단 다행으로 살아 숨쉰다.

개미와 꿀벌이 알려준다. 느림은 단지 뒤처짐이 아니라,

때론 함께 살아남기 위한 약속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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