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

by 한배곧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만 원, 그다음 날도 만 원

돈이 없는 날은 비참했었다.

누군가 지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내 손가락은 나를 가리켰을 것이다.

반복된 공포 앞에서 이성은 사치품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엄마 핸드백 속 지갑을 열었다.

손은 지폐 몇 장을 꺼내 잽싸게 주머니에 넣었다.

죄책감도 사치품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오전 기도를 마치는 찰나

핸드폰에서 갑자기 진동이 울린다.

브~~~응 브~~~응

제대 위 핸드폰을 잡으려는 순간

이번엔 전화벨이다.

기분이 싸했다.

오전 일과 중에 카톡과 전화가 동시에 오는 일은

아직까지 없었기 때문에.

전화를 받으니, 반가운 고등학교 친구 녀석이다.

뭐라 반길 틈도 없이 믿기 힘든 말이 녀석 입에서 쏟아진다.

야! 들었어? 아무개 오늘 죽었데!
아 씨발, 고등학교 이후로 그 새끼 죽기만 바랬는데
막상 죽었다니까 기분 졸라 째진다
어떻게 죽은 거야? 무슨 일로?
말도 마 완전 개죽음, 오토바이 존나 쎄게 몰고
추월하려다 트럭에 박았데. 박자마자 그 자리에서 즉사.
뉴스에 나왔어.
뉴스?
응, 서해안고속국도에서 광란의 질주라나 어쨌다나?
장례식장 갈래?
이제 세상 사람도 아닌데 무서울 것도 없잖아.
가서 마지막으로 돈이나 또 뺏기고 오는 거지
이번엔 적어도 육개장 한 그릇 받으면서, 하하하
어떻게 갈래?
생각해 볼게


'나한테 검은색 양복이 있었나? 참... 나 신을 모시는 중이지'



10월의 을씨년스럽던 날씨가

그날은 무슨 변덕인지 화창하기만 했다.

친구 녀석에게는 미안하지만,

자 오고 싶었다.


장례식장은 한산했었다.

호상소에 사람이 없을 정도로.

조객록을 쓸까 하다 상주를 바라보았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누나라기엔 젊어 보였다.

핏기 없는 얼굴이지만

슬픔이 가득해 보이진 않았다.


눈을 돌려 신위를 바라보니 영정사진이 보였다.

"아 무 개"

오늘 날씨만큼이나 밝게 웃고 있는

사진 속 그가 낯설었다.

'저렇게 웃을 수 있었구나.'


신발을 벗자, 상주의 눈길이 느껴졌다.

아마도 내 복장 때문이겠지.

상주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영정 앞에서 묵주를 꺼냈다.

묵주를 손에 쥐고 손을 모은 뒤

기도를 시작했다.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기도를 마치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자리를 옮겨 상주에게 가서

묵례를 하며 조의를 표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은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떤 뚜렷한 목표가 있던 건 아니었다.

나는 붕붕 떠다녔다.

의식 속에서도 의식 밖에서도 언제나 붕 떠있었다.

반 강제적으로 부모님에게 끌려 병원에도 들어갔었다.

약을 먹을 때는 좋았다.

붕 떠있던 나를 잡아주는 약의 중력이 좋았다.

하지만, 약은 중력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삶의 주인자리를 뺏고 싶은 힘도 있었다.


병원에서 뛰쳐나와 이대로 죽을까라는 고민을 했었다.

입에도 맞지 않는 소주를 병채 들이켜자

속 온갖 것을 뱉어내며 살려는 모습을 보고 느꼈다.

'죽음 역시 사치품이구나. 적어도 나에겐...'


무작정 걷던 길은 신으로 향했다.

신의 뜻이 있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저 우연히 길의 끝에 그가 있었을 뿐.



상주가 묻는다.

혹시 신부님이세요?
신부님이 아무개는 어떻게 아세요?
고등학교 때 같은 학교였어요.
아..... 그러시구나.
고등학교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친구가 있는 줄도 몰랐네요.

상주의 친구란 단어가 웃겼다

'우리가 친구사이였던가.'


상주분은 아무개 씨 누나/(신가요?)


상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아니에요, 누나. 애인이었어요.


애인이'었'다는 그녀의 말에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그렇군요, 아무쪼록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말하고는 묵주를 잡고 묵례를 다시 한번 드렸다.


상주는 답례를 하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처음이에요. 신부님이.
네?
장례식 열고 온 조문객, 신부님이 처음이라고요.
아, 그렇군요. 상주분은 괜찮으세요?
상주 말고, 윤성혜예요. 제 이름
저는 고주원입니다. 마음이 아프시겠네요.
꼭 그렇지도 않네요. 홀가분하기도 하고, 그러다 갑자기 슬퍼지는... 뭐 그래요.
그러시군요.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마음의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도 슬프세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알게 되겠죠. 이제 가봐야겠네요. 장례 잘 치르시길 바랍니다.
네, 와주셔서 감사해요.


신발을 다시 신고, 들어올 때 봤던 부조금함에

준비했던 봉투를 넣었다.

그러고는 한 손에 쥐고 있던 목주를 돌돌 말아 함에 같이 넣었다.




바람이 창문 사이로 스며든다.

제단의 촛불이 흔들리다 이내 제 모양을 잃는다.

마치 그 같다.

모양을 잃고서야 비로소 빛을 낸다.


자색 제의를 입은 그가 묵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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