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사람들에게 '라곰(Lagom)'만큼이나 신성한 단어가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피카(Fika)'를 꼽겠다. 피카는 '커피 브레이크'처럼 일과 중에 잠시 커피를 마시며 쉬는 시간을 뜻한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피카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반드시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과도 같다.
그들이 피카를 얼마나 진지하게 여기는지 궁금해, 예전에 스웨덴 동료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월급이 동결되거나 삭감되는 건 참을 수 있어. 하지만 피카를 없앤다면? 당장 피켓 들고 파업할 거야. 아마 스웨덴의 모든 직장인이 똑같이 행동할걸?"
이곳에서는 하루 중 적어도 한 번, 많으면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커피를 마신다. 그 시간에 카페테리아에 가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도 보이고, 혼자만의 쉼을 온전히 즐기는 이들도 눈에 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스웨덴 사람들의 삶에 왜 여유가 넘치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반드시 '쉼표'를 찍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피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은 멈춰 서서 스스로를 돌본다.
하지만 한국식 생활 패턴에 익숙했던 나에게 처음 접한 피카는 이해할 수 없는 문화였다. 여유는 사치였고, 경제적 풍요가 삶의 전부라 믿었던 나로서는 그 시간에 차라리 업무를 더 처리해 퇴근을 앞당기고 싶을 뿐이었다. 일을 집으로 가져가거나 주말에 출근해 잔업을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어느 날, 주말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스웨덴에 살면서도 여전히 한국처럼 살고 있었다.
뻑뻑하고 빽빽한 삶에 지쳐갈 무렵, 나는 친한 동료에게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건넸다. "피카 할래?" 그는 어느 때보다 밝게 웃으며 "좋아!"라고 대답했다. 마치 내가 알을 깨고 나와 먼저 물어오기를 기다렸던 사람처럼.
커피 한 잔을 들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꽉 막혀 있던 삶의 체증이 서서히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고작 잠시 휴식을 취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렇게 동료들은 피카를 통해 나에게 쉼의 중요성을, 그리고 스웨덴에서 '스웨덴처럼' 사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제는 나에게도 피카가 꽤 자연스러워졌다. 오후 2시쯤 되면 시계를 쳐다보고는, 컵을 들고 커피 머신으로 향하는 나를 보며 가끔 웃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