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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흠 Oct 28. 2024

낙타, 사자, 어린아이

주짓수벨트별 구분

니체는 인간의 정신적 성장단계를 낙타, 사자, 어린아이로 구분하였다. 나는 이 분류가 모든 성장단계에 적용이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지 처음 배우는 단계에서는 알려주는 대로 끌려다니며 배운다. 주짓수에서는 흰띠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체육관에 처음 입문하면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다. 체육관 매트의 색상과 푹신함의 정도, 벽의 색상, 흘러나오는 음악, 사람들의 얼굴 등 모든 것이 새롭고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다. 도복을 갈아입고 나오면 관장님이 벨트 매는 법을 알려준다. 어떻게 맸는지도 모르게 어리바리하며 어설프게 벨트는 맨다. 이후 수업이 시작되면 관장님의 지시에 따라 몸풀기를 하고 주짓수 동작들을 배워나간다. 이땐 지도자가 가르쳐주는 방식, 기술의 정확도 따위는 구분할 능력이 없다. 그저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걸어가는 낙타처럼 매트 위의 한 마리 낙타가 된다. 수업이 끝나고 머릿속엔 주짓수 기술에 관한 건 전혀 남아있지 않다. 그저 '재밌었다', '힘들었다', '어렵다' 등의 단순한 감정만 남아 있을 뿐이다. 주짓수 흰띠 단계는 낙타단계이다. 대신 낙타도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 나를 아껴주고 낙타라는 동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주인을 만나면 그래도 행복한 여생을 즐길 것이고, 그렇지 않고 학대하고 무지한 주인을 만나면 고생만 하다가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짓수도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정말 중요하다. 주짓수를 안전하고 즐겁게 배우거나, 아프고 다치고 고생만 하다가 주짓수를 그만두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흰띠는 다 낙타단계로 시작한다. 진짜 낙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낙타는 주인을 선택할 수 없지만 주짓수 수련자는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 장에서 알려준 대로 주짓수 지도에 이해도가 높고 커리큘럼이 잘 갖추어져 있는 체육관과 지도자를 잘 고르기 바란다.

그다음은 사자 단계이다. 야생에서의 사자는 자기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간다. 먹고 싶을 때 사냥해서 먹고, 자고 싶을 땐 잔다. 그리고 누군가의 명령을 따르지도 않는다. 맞다 틀리다. 본인만의 호불호가 명확하다. 주짓수에서는 블루벨트, 퍼플벨트 단계이다. 이 시기에 가장 열정이 넘치고, 주짓수에 대한 의욕이 상당하다. 또한 지도자가 알려주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닌 본인만의 스타일이 명확해지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본인의 주특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블루벨트는 주특기를 찾아가는 시기이고 퍼플벨트는 찾은 주특기를 갈고닦는 시기이다. 검객이 날을 날카롭게 갈고닦듯 본인의 주특기를 날카롭게 갈고닦는 시기이다. 그리고 그렇게 갈고닦은 주특기로 스파링, 시합에서 승부를 가린다. 

주관이 뚜렷해지는 만큼 부작용도 발생한다. 그동안 따르던 지도자와의 갈등이다. 지도자의 지도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기술의 스타일이 본인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지 않을 때 체육관을 옮기는 일이 생긴다. 물론 이 선택이 결과적으로 봤을 때 부작용이 아닌 긍정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선수를 목표로 한다면 선수육성에 열정이 없는 지도자 밑에 있기보다 팀을 옮기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때가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끝 마무리를 잘 짓는 것이 중요하다. 팀을 옮긴 제자를 배신자라며 욕하고 다니는 지도자가 많다. 팀을 옮긴 제자는 그동안 스승님이 알려준 기술과 마인드를 마치 본인이 혼자 습득한 것처럼 감사함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양쪽 모두 끝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감정이 상하고 에고가 쌓여서 발생된 일이다. 지도자는 제자를 죽을 때까지 책임져줄 수 없다. 제자를 '내 것'이라는 마음으로 대하는 순간 에고가 된다. 제자 또한 감사함을 모르면 그 어떤 곳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다. 잠깐 리스펙 하는 척을 할 순 있겠지만 결국 같은 이유로 팀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 똑같은 제자를 만나면 그제야 그때 스승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블루, 퍼플벨트 단계에선 실력도 실력이지만 스승과 제자의 관계, 함께 훈련하는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잘 살피길 바란다. 주짓수는 혼자 할 수 없는 운동이다. 항상 함께 땀 흘리는 매트 위의 동료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말자.

마지막은 어린아이 단계이다. 주짓수에서는 브라운, 블랙벨트 단계이다. 이때는 보통 선수와 지도자의 길로 나뉜다. 선수라면 블루, 퍼플 때 찾은 주특기를 더 날카롭게 만들어야 하는 단계이다. 하지만 지도자라면 몇 가지의 기술을 날카롭게 만들기보단 넓게 기술을 공부해야 한다. 선수는 하나의 검으로 진검 승부를 가리는 것이라면 지도자는 칼, 도끼, 총, 수리검 등 다양한 무기의 사용법을 익혀야 하는 것과 같다. 그래야 제자들에게 다양한 무기의 사용법을 알려줄 수 있고 그것을 배운 제자가 자신에게 맞는 무기를 고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칼보다는 창을 사용하기에 더 유리한 신체조건을 가진 제자에게 칼만 사용하도록 지도한다면 그 제자는 본인의 장점을 살리기 어려울 것이다. 

브라운, 블랙이 되어 선수로써의 욕심을 내려놓고 지도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조금 더 유연한 마음으로 즐기는 단계가 된다. 그전엔 스파링에서도 절대로 지지 않으려고 했다면 그러한 욕심도 많이 내려놓는 단계이다. 

한창 시합을 뛰는 선수들에 비해서 기량이 많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것을 이빨 빠진 사자로 보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극강의 UFC 챔피언도 새로운 도전자에게 패배하며 왕관을 물려준다. 영원한 강자는 없다. 그렇다고 끝인가?? 모든 기준을 시합으로만 생각하는 편협한 시야를 가진 사람들에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짓수도, 인생도 시합과 시험이 다가 아니다. 시합을 뛰지 않아도 열심히 수련하며 주짓수를 즐기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남들 다 하는 수능, 자격증 시험, 고시공부 같은 거 하지 않아도 잘 사는 사람들 많다. 주짓수와 인생을 어떻게 즐길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니체는 어린아이의 특징을 망각이라고 얘기했다. 아이들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짜증 내고 울다가도 금세 돌아서면 다시 즐거워한다. 이것을 보고 누군가는 바보 같고 어리석어 보인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봐라. 그렇게 잊지 못하고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 중 과연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주짓수가 어렵다면, 삶이 힘들다면 잊는 법을 배워라. 이 망각에 대해서는 잠시 후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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