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흠 Oct 31. 2024

끓는 물을 원샷하시겠습니까?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원치 않게 화가 나는 상황이 발생된다. 아무리 마인드 컨트롤을 해보려 해도 쉽지 않다. 애써 다른 생각을 해려고 해 보지만 어느새 스멀스멀 화가 났던 상황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생각만 하면 그 당시 느꼈던 화나는 감정이 그대로 다시 끓어오른다. 

나는 이것을 끓는 물에 비유한다. 만약 내가 여러분에게 펄펄 끓는 물이 담긴 컵을 주며 한 번에 원샷하라고 하면 마시겠는가? 아마 미쳤다고 할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화나는 상황을 제공할 때 즉각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 이와 같다. 남이 주는 펄펄 끓는 물을 원샷하는 것이다. 우리가 끓는 물을 원샷하는 이유는 그 원인과 나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끓는 물이 담긴 컵을 받으면 그저 내려놓고 물이 식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렇게 식은 물을 다시 가져가 끓여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만나는 사람에게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다시 물을 끓이는 사람이다. "아까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아!?" 라며 식은 물을 다시 펄펄 끓인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착각하지만 오히려 반대다. 진정이 된 감정을 다시 끄집어내는 행동일 뿐이다. 이와 관련된 재미난 일화가 있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저서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 나오는 일화이다.

두 수도승이 길을 걷고 있었다. 진흙이 가득한 길은 걷기도 힘들고 옷을 더럽혔다. 길을 다 건널 때쯤 맞은편에서 옷을 곱게 입은 한 여인이 걸어왔다. 한 수도승은 그 여인을 등에 업고 반대편으로 건너주었다. 그리고 다시 길을 계속 걸어갔다. 도착지에 도착할 때쯤 다른 한 수도승이 여인을 업어준 수도승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자네! 아까 그 여인을 왜 업어준 것인가.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가?!"

그러자 여인을 업어준 수도승이 대답했다.

"나는 진작에 그 여인을 내려줬는데 자네는 아직 그 여인을 업고 있구먼"


이 일화는 사람들이 지난 과거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괴로워하는 것에 정말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난 일을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이미 지난 일은 되돌릴 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을 떨쳐내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다. 이때 과거의 생각을 끊임없이 꺼내놓는 것이 우리의 잠재의식인데 이 잠재의식에 끌려다니면 항상 스트레스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하루동안 하는 생각 중 80% 이상이 잠재의식에서 자동적으로 발생되는 생각이라고 한다. 이미 여러분도 알겠지만 이렇게 잠재의식에서 자동적으로 발생되는 생각은 대부분 쓸모없는 것들이 많고 우리의 감정을 불필요하게 흔들어놓는 것들이 많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매 순간 현재의식으로 의식을 가져와 생각을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생각을 잠재의식이 아닌 현재의식으로 가져오기 위한 하나의 기준이 있으면 쉬워진다. 나는 그것을 끓는 물, 수도승 일화, 호흡으로 기준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잠재의식의 생각들이 휘몰아쳐 나를 괴롭게 할 때 이러한 생각을 알아차리고 '내가 또 여인을 무겁게 업고 다녔구나 여인을 내려놓자'라고 생각하며 호흡에 의식을 가져가는 연습을 한다.

누군가 나를 화나게 할 땐 '나에게 끓는 물을 주고 있네 이걸 받아서 마신다면 나만 화를 입을 거야. 만약 이 물을 저 사람에게 뿌린다면 더 큰 화를 불러오겠지'라고 생각하며 컵을 내려놓고 바라보는 상상을 한다. 이 처럼 알아차림을 할 수 있는 본인만의 도구가 있다면 일상을 살아갈 때 큰 도움이 된다.

주짓수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특히 이런 상황을 많이 경험한다. 스파링을 할 때 상대에게 기술이 걸리거나 불리한 포지션을 뺏겨 종일 깔려있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낙담하거나, 좌절하거나, 실망하거나, 화가 나거나 하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그리고 분한 마음을 집까지 업고 가 잠자리에 들 때도 본인 옆에 눕혀 놓는다. 그리곤 잠이 오지 않는다고 괴로워한다. 매일 스파링을 경험하며 이러한 감정들을 겪게 되는데 대부분 주짓수를 그만두는 사람들은 주짓수가 어려워서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이러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내려놓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이런 사람이 다른 운동을 한다고 달라질까?? 마음을 흔들어놓는 도구가 달라질 뿐이지 결국 되풀이된다. 어떠한 도구를 사용하든 그 도구를 통해 알아차림을 연습하고 잠재의식에 끌려다니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럼 어떤 운동, 직업, 연애 등의 상황에서도 현재의식 속에 현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낙타, 사자, 어린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