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를 지도하다 보면 블루벨트도 받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80%가 넘는다. 물론 주짓수가 다른 무술에 비해 승급의 속도가 느린 것은 사실이다. 화이트벨트에서 다음 벨트인 블루벨트가 되는데 최소 1년 6개월에서 평균 2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이다. 한 가지 운동을 꾸준히 2년 동안 한다는 것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금전적인 문제도 발생될 것이고, 이사나 이직 등으로 지역을 옮기는 경우도 생기고,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이 주짓수를 그만두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주짓수를 그만두는 이유가 뭘까?? 대부분은 본인이 끈기가 부족해서라고 얘기할 것이다. 정말 끈기가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끈기라는 것도 학습의 영역이다. 끈기도 연습과 훈련을 통해 충분히 기를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한 실험에서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을 했다고 한다. A 그룹은 시험을 치른 후 결과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고, B 그룹은 시험을 치른 후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 대해 칭찬을 해줬다고 한다. A 그룹의 학생들은 결과에 대한 칭찬을 들었기에 다음 시험을 더 잘 보기 위해 부담과 스트레스를 느꼈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크게 낙담하고 시험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한국 학생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지 않을까) 나도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결과에 대한 칭찬을 주로 받았었다. 만들기 어려운 레고를 몇 시간에 걸쳐 완성하였는데 몇 시간 동안 끈질기게 집중하여 노력하는 모습에 대한 칭찬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림을 그렸을 때도 그림의 완성도만을 보고 칭찬을 해주셨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선수를 목표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인천에서 강남 역삼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운동을 다녔었다. 그 당시에 종합격투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인천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밤 10시가 넘은 후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은 정말 지옥철이다. 퇴근 후 거하게 회식을 하고 귀가하는 직장인들이 사방에서 술 냄새를 풍기고 여름엔 팔을 들어 땀을 닦을 수도 없을 만큼 사람들에게 끼여 탔었다. 하루하루 지치고 힘들었지만 운동을 하는 순간만큼은 정말로 행복했다. 하지만 부모님, 선생님 등 주변에 모든 사람들은 내가 운동하는 것을 반대했다. 바로 돈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나를 위해서 한 얘기겠지만 한 번도 그 길을 걸어보지도 않고 막연하게 이럴 것이다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이미 만들어놓고 무책임하게 꿈을 짓밟아버리는 어른들이었다. 이 또한 내가 노력하는 과정은 보지 않고 다가오지도 않은 결과에만 집착하여 생긴 일이다. 그렇게 나는 1년 6개월 동안의 노력을 하나도 인정받지 못하고 운동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동안 못 한 공부를 하기 위해 고2 여름 방학 내내 독서실에서 살았다. 운동을 한 체력 덕분인지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있어도 지치지 않았다. 덕분에 2학기 처음으로 본 중간고사에서 반 33등이 16등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으로 본 기말고사에서는 반 7등으로 성적이 올랐다. 집과 학교에서는 당연히 결과에 대해서만 칭찬을 해줬다.
단면 B 그룹의 학생들은 노력하여 문제를 푸는 과정에 대해 칭찬을 받았다. 때문에 다른 시험을 치를 때도 결과가 아닌 지금 당장의 문제를 푸는 과정에 집중했다. 그 후에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와도 A 그룹의 학생들에 비해 결과에 대한 미련을 쉽게 털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과정 자체를 즐기게 되니 지속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성적이 올랐다고 한다. 이렇게 어떤 환경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끈기가 학습될 수도 포기와 낙담이 학습될 수도 있다.
이제 성인이 되었다면 더 이상 외부에서 누군가 나를 바꿔주기를 기대할 수 없다. 스스로 바꿔 나가야 한다. 이때 첫 번째로 해야 할 것이 '내면소통'이다. 김주환 교수가 올린 유튜브 영상들을 참고하면 도움이 정말 많이 될 것이다. 먼저 나와의 대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여러분이 새로운 무언가를 배운다고 했을 때 처음엔 엄청 설레고 신날 것이다. 그것을 검색하고, 알아보고, 찾아가는 과정이 모두 설레고 재밌다. 마치 쇼핑을 할 때처럼 신난다. 하지만 처음 배우는 것이기에 어려움도 함께 존재한다. 즉 처음에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도할 땐 '흥미'와 '어려움'이 함께 높아져있다. 이 시기엔 도파민이 마구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보통 흥미가 어려움을 이긴다. 그래서 어렵지만 너무 재밌고 신난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배우고 나면 슬슬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배웠던 것을 또 배우기도 하고, 이미 알고 있는 동작을 매일 반복하기도 한다.(사실 이때 아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이지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처음 느꼈던 설렘과 흥분은 줄어든다. 더 이상 처음처럼 시작했을 때처럼 재밌지가 않다. 그렇게 서서히 출석하는 날이 줄어든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다른 재미를 찾아 떠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도파민의 노예 또는 도파민 사냥꾼이라고 부른다. 이런 도파민 사냥꾼들이 놓치는 것이 있다. 처음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분명 '흥미'와 '어려움'이 함께 높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 흥미가 낮아졌다. 대부분 이 흥미라는 감정에만 집중한다. 그러니 지속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연습을 거듭하면 어려움도 함께 낮아진다. 그리고 처음엔 잘 되지 않았던 동작들이나 기술들이 본인도 모르게 편해져 있고 하나하나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우린 이것을 '숙달'이라고 부른다. 우리말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처음 입문했을 때 모든 것이 어렵고 헤맸던 본인의 모습은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때와 시간이 흐른 뒤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데도 본인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흥미라는 감정에만 집중되어 있다.
앞에 학생들을 예시로 들었던 것처럼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고 그 과정을 칭찬해 주자. 오늘 친구의 유혹을 이겨내고 술자리가 아닌 체육관에 온 본인을 칭찬해 주고, 퇴근 후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이겨내고 체육관에 나온 본인을 칭찬해 주자. 그리고 그런 본인에게 운동 후 작은 보상을 주자. 이런 작은 과정들이 모여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모든 분야에 블랙벨트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잘하는 사람이 블랙벨트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내가 16년 넘게 운동을 하며 만났던 미친 운동능력자들은 다 어디 갔는가. 주짓수엔 이런 말이 있다.
"블랙벨트는 포기하지 않은 화이트벨트다"
당장의 결과, 당장의 성적, 당장의 레벨업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마음은 저 높은 곳에 있는데 몸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할 때 마음과 몸 사이의 갭만큼 좌절감이 찾아온다.
사다리도 적당히 간격이 넓어야 오르기 쉽다. 다음 발판까지의 거리가 3M가 넘는다면 오를 수 있겠는가.
한 계단 한 계단 과정에 집중하며 올라가는 연습을 해보자. 주짓수는 '그라우'라는 벨트 승급을 통해 그 계단을 눈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다른 운동에 비해 객관적으로 본인의 단계를 확인하며 성장해 나갈 수가 있다.
이렇게 주짓수라는 도구를 통해 결과가 아닌 과정을 즐기고 끈기를 훈련한다면 일상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나는 최근에 카페 알바를 시작했는데 처음 해보는 일에 새롭고 재밌지만 실수도 많이 하고 어려움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직 화이트벨트야. 더 적극적으로 배우고 연습하자. 시간이 지나서 카페 알바도 블루벨트 정도가 되면 능숙해져 있을 것이란 것을 무조건 확신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본인이 끈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면 이 글을 읽고 점검해 보자. 정말 끈기가 부족했던 것인지 아니면 흥미와 재미라는 감정에 끌려다녔던 것은 아닌지. 요즘 숏폼이 유행하면서 도파민 중독자들이 정말 많이 생기고 있다. 숏폼을 통해 도파민이라는 보상을 쉽게 얻으니 조금만 어려워도 쉽게 그만두려고 한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숏폼을 통해 끈기부족을 훈련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지금 이런 상태라면 주말 하루 정도는 핸드폰을 끄고 생활해 보자. 나도 요즘 매주 시도하는데 집중력과 효율이 말도 안 되게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