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생각하는 서열의 의미는 틀렸다
개는 서열이 있을까 없을까? 예부터 정말 많은 논쟁이 있었고 여전히 논쟁은 이어지고 있다. 한쪽에선 개는 늑대의 후손이고 늑대도 서열이 있으니 개도 서열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개와 늑대의 조상은 같지만 개와 늑대는 다른 동물이다. 때문에 서열은 없다고 주장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개는 서열이 있다. 개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은 서열이 있다. 서열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렇다면 서열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이 맞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바로 서열이라는 단어의 '의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서열은 군대처럼 위아래 위계질서를 확실하게 잡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지시를 내리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또 서열이 높은 사람에게 가치가 있는 자원을 먼저 갖거나 누릴 기회가 먼저 주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서열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서열이 이 것을 의미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서열의 의미는 잘 못 되었다.
이미 수많은 동물행동학자들은 늑대와 개를 다양한 환경에서 관찰하고, 개와 개들과의 관계, 개와 사람과의 관계를 관찰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서열의 의미가 잘 못 되었음을 수차례 강조해 왔다. 잘 못 형성된 서열론은
1970년 데이비드 미치 박사의 주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늑대 무리에서는 '알파'라고 불리는 우두머리가 존재하며 서열 싸움을 통해서 지위가 정해진다고 얘기했다. 그로 인해 알파독, 알파 울프라는 용어와 함께 서열론이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 그러나 1999년 이후 미치 박사는 본인의 연구가 잘 못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본인으로 인해 고통받은 개들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애초에 미치 박사가 연구를 했던 늑대무리는 야생에서의 늑대를 관찰한 것이 아닌 켄넬 안에 가두고 한정된 자원을 제공하여 서로 싸울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의 연구였다. 실제로 야생에서의 늑대는 매번 싸움을 통해 본인의 지위를 과시하고 무력으로 서열을 지키는 것이 아닌 '부모'의 역할일 뿐이었다. 서열이 높다고 해서 매번 가치 있는 자원(예를 들면 먹이)을 먼저 차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 개체들에게 먼저 나눠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벌써 3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왜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선 잘 못 된 서열론이 자리를 잡고 바뀌지 않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활동해 오던 훈련사들이 서열론을 주장하며 훈련을 해오고 제자들을 육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생각하는 개들의 문제행동은 '서열'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정말 편리하게 설명이 된다. 개가 보호자보다 앞으로 나가 걸어도 개가 서열이 더 높아서 그런다. 소파 위에 올라와도 개가 서열이 더 높아서 그런다. 배변실수를 해도 개가 서열이 더 높아서 그런다 등 대부분 훈련사를 찾는 문제행동들에 서열이라는 딱지를 붙이면 다른 설명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이보다 편리한 장치가 어디 있을까. 그리곤 그 서열을 잡아야 한다며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힘들게 개의 행동과 심리를 관찰할 필요도 없고 방법을 연구할 필요도 없다. 개가 앞으로 나가면 리쉬를 낚아채 고통을 주고 앞으로 못 가게 하면 된다. 소파 위에 올라오면 동전을 넣은 페트병으로 때리며 내려가게 하면 된다. 그러다 만약 보호자나 훈련사에게 공격성을 보이면 더 강한 초크체인이나 프롱 칼라를 이용하여 다신 대들지 못하게 고통을 주면 된다.
사람에겐 개만큼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치악력도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
그 마저도 안된다면 전기충격이 가해지는 목줄을 채워 반항할 때마다 전기충격을 가하면 된다.
머리 쓸 필요도, 시간을 들여 인내심을 가지고 교육할 필요도 없고 즉각적으로 행동이 교정되어 보여서 보호자들도 좋아하는데 이 좋은 걸 포기할 수 있을까??
잘 못 된 서열론을 주장하며 강압적인 방식을 사용하던 훈련사들은 이미 오랜 기간 활동하며 지위와 명성을 쌓아왔다. 대학교의 교수로, 단체의 장으로, 시험을 평가하는 평가원으로... 그들의 영향력은 이미 너무나 크다. 때문에 그 업계에선 그 사람들의 말이 틀렸다고 주장했다가는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사람의 제자가 같은 방식으로 또 제자를 길러내고 그 제자가 또 제자를 길러내고...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려야 끊어질 수 없다.
우리나라에 X 쪽이 상담소라는 유튜버는 개를 발로 차고 학대 수준의 방법을 사용하며 훈련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유튜브 영상에 올린다. 그 영상에 보면 "역시 개는 패야 말을 듣지", "개를 저렇게 훈련시켜야 사람한테 안 대들지"."저게 학대라고 하는 놈들은 개한테 물려봐야 정신 차리지" 등 그를 옹호하는 댓글들이 엄청나게 많다. 몇몇 훈련사들은 그를 욕하면서도 뒤에선 같은 방식으로 개를 때리고 목줄을 낚아채고 전기충격을 주며 훈련하고 있다. 도대체 개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모두 개를 키울 자격도, 개를 키워서도 안 되는 사람들이다.
이젠 비강압적인 방법으로 과학적으로 검증된 교육방법들이 많다. 시중에 나와있는 책들을 조금만 찾아봐도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 수준의 교육은 강압적인 방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심지어 개와의 유대관계도 훨씬 돈독하게 만들며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이 널리고 널렸다. 특히 '소피아 잉', '카렌 프라이어', '패트리샤 맥코넬' 등이 쓴 책들을 한 권이라도 본다면 강압적인 훈련법이 얼마나 잘 못 되었으며 전혀 효과도 없고 오히려 초보자가 잘 못 따라 했다가 더 큰 문제를 만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훈련사들이 그걸 모를까?? 아니다 그들이 취득하는 자격증의 필기시험에도 그들이 하는 행위는 모두 학대라고 명시되어 있고 그 내용으로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른다. 절대 모를 수가 없다. 그럼에도 왜 계속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할까??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인정하는 순간 본인이 과거에 했던 훈련들이 학대 행위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또 앞서 말한 대로 강압적인 방법은 보호자에게 설명하기도, 개를 훈련시키기도 편하고 빠르다. 즉각적으로 고쳐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경력이 오래된 훈련사들은 본인의 경력을 너무 믿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더 이상의 공부도, 배움도 받지 않는다. 경력이 10년이 되었다고 해서 10년 치의 능력이 쌓이는 게 아니다. 1년 치의 경험과 지식을 10번 반복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다.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을 10년 동안 한 번도 업데이트하지 않는 것과 똑같다. 본인이 늘 다니던 길은 내비게이션을 보지 않아도 쉽게 다니겠지만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갈 땐 이미 없어진 길, 바뀐 길로 안내해 줄 것이다. 그리곤 다른 지역에서 놀러 온 친구가 길을 물어보면 잘 못 된 길을 알려줄 것이다. 왜냐면 본인의 머릿속엔 아직 그 길이 있다고 믿고 있으니까.
개들은 서열이 있다. 개와 사람과의 관계에도 서열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서열의 의미가 아니다. 서열이란 부모의 역할이다. 사람은 반려견의 부모다. 반려견들은 애초에 사람이 데리고 와 가둬놓은 집이라는 공간에서 사람이라는 부모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산다. 심지어 그 먹이의 선택권도 개들에겐 없다.
사람이 무지하게 잘 못 된 방식으로 서열을 잡으려고만 하지 않으면 개들은 보호자를 부모로 생각하고 본인이 더 높은 서열로 올라가고자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개들은 왜 보호자에게 공격성을 나타낼까?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뤄보겠다. 나는 맹견이라고 불리는 핏불테리어 '오싱'이를 12년 넘게 키우고 얼마 전 강아지별로 보내줬다. 오싱이는 단 한 번도 강압적으로 훈련한 적도 없으며 서열을 잡겠다고 시도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12년 동안 단 한 번도 나에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적이 없다. 심지어 길에서 발견하여 입에 문 뼈다귀를 억지로 입에서 빼내려고 해도 으르렁 한 번 한 적이 없다. 잘 못 된 서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오싱이는 버릇이 나빠져야 되고, 보호자인 나를 밑으로 보고 본인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땐 나를 공격했어야 했다.
그러나 오싱이는 항상 나에게 애교쟁이 딸이었으며, 한 번도 본인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성질을 내본 적도 없다. 맹견사육허가제 평가에서는 "이렇게까지 교육하셨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라는 말까지 들었다.
개는 보호자 하기 나름이라고? 맞다 보호자 하기 나름이다. 공격적인 개는 본인의 서열을 높이고자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다. 잘 못 된 서열을 잡으려 하는 보호자, 훈련사로 인해 공격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다음 글을 읽어보면 왜 그 개는 공격적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개를 키우고 싶다면 이상한 유튜브를 보고 어설프게 따라 하거나, 강압적인 훈련사에게 맡기지 말고 제발 제대로 된 책 한 권이라도 읽어보고 키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