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서쪽 산등성이를 완전히 넘어가자 창밖은 어두워진다. TV도 없는 곳이라 아이들은 일찍 잠든다.
예배당 바닥에 널브러진 아이에게 상운은 일일이 이불을 덮어준다. 다운증후군 선재와 같은 베개에 머리를 대고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한다. 이곳의 하루는 이렇게 마감된다.
상운은 육아원 출신이다. 그곳은 주민등록증이 나오면 정부에서 주는 약간의 보조금을 받고 떠나야 한다.
사회로 나와 열심히 살아보려는 그에게 육아원 선배가 접근한다. 좋은 전셋집이 있으니 같이 살자는 제안에 속아 보조금을 날려버린다.
신앙생활을 했던 상운은 교회를 통해 시온의 집을 알고 이 목사에게 부탁해서 한동안 같이 지내기로 한다.
침실이 된 예배당의 전등을 끄고 우준은 자원봉사실 숙소로 간다. 리포트를 작성하고 조별 발표회도 준비해야 한다. 내일 수업은 9시에 시작이니 일찍 나가야 한다.
한참 공부를 하다가 고개를 드니 창밖으로 대문을 비추는 가로등이 외롭다.
아직도 경모가 돌아오지 않았다. 우준은 랜턴을 들고 현관으로 나선다. 버스정류장 슈퍼에 공중전화가 있다. 그곳까지 마중을 나가기로 한다.
“어디 가?”
화장실에 다녀오던 이 목사가 우준과 마주친다.
“집에 전화 걸려고요.”
“내 휴대폰 빌려줄까? 방에 있는데.”
“아니에요. 경모도 안 왔어요. 마중 나가면서 전화하려고요.”
이 목사는 이렇게 장애인을 돌보는 일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으로 여긴다.
대형교회를 짓고 수천 명의 성도를 거느리는 것보다 이들의 인생을 끝까지 돌보는 게 훨씬 가치있는 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남편을 따라 이런 일을 자청한 목사 사모도 대단한 각오를 한 것이다.
우준의 옷차림이 지저분하다. 언제 떨어졌는지 사타구니 근처에 김치 국물이 묻어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뒤 옷을 갈아입지 않은 채 아이들을 돌봤다. 너무 피곤해서 이 옷을 입은 채 잠들었다가 곧장 등교한 적도 있다. 신고 다니는 운동화도 언제 빨았는지 냄새가 지독하다.
신학교 동기는 시온의 집에서 봉사하는 우준을 대단하게 여겼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면서 피해 다닌다. 자연히 우준은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시간이 늘어난다.
교회에 갇힌 하나님. 칠판에만 박힌 신학.
2학년 개강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준이 신학교 중앙로비 벽에 크레파스로 쓴 글이다.
한동안 선배에게 불러 다니며 호통을 듣는다. 교수 회의까지 소집될 뻔했지만, 평소에 행실이 올바르고 그럴 수 있는 나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가벼운 징계로 넘어간다.
두손 모으고 하나님에게 무엇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에 아픈 자를 찾아가서 휠체어를 밀어주는 게 우준의 신앙이다.
하나님은 평등하다. 하나님이 만든 세상은 차별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별을 당하는 자를 도와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을 기울여서 옆 사람과 나누면 된다.
세상은 그렇게 바꿔야 한다. 설령 지금 나아지지 않더라도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
슈퍼 아주머니는 어둠 속에서 나타난 우준을 외면한다. 이 동네에 저런 병신 수용소가 있는 게 불만이다.
공중전화 수화기를 든 우준은 집 번호를 누른다. 곧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들, 아픈 데 없이 잘 지내지?”
“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교회 수석 권사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니까 네가 하는 일에 확신 갖고 최선을 다 해라. 나중에 하나님이 너를 크게 쓸 거야.”
“형은 잘 있어요?”
“우현이는 이번에 한강은행 대리로 승진했어. 동기 중에서 가장 먼저래. 전부 하나님의 은혜지. 네가 그런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니까 우리집에 복을 주시는 거야.”
우준은 이런 어머니의 신앙에 반발이 일어난다. 복을 받기 위해 장애인을 돌보는 게 아니다. 신앙의 가치관으로 어머니와 대립각을 세울 마음은 없다. 아, 예, 잘 됐네요. 대충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채 얼버무린다.
“언제 집에 오니?”
“봐서요. 여기도 바빠요. 계절 바뀌면 옷 가지러 갈 게요.”
“빨래는 잘하니?”
“여기도 세탁기는 있어요. 큰 거 기증 받았어요.”
“그런 과정이 네가 나중에 훌륭한 목사로 성장하는 거름이야. 알고 있니? 내가 매일 저녁마다 너를 위해서
기도한다. 우리 우준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소명을 끝까지 이룰 수 있도록 말이야.”
“아, 예, 알았어요.”
전화를 끊은 우준은 슈퍼 앞 평상에 앉는다. 이름도 모르는 벌레들이 가로등에 엉겨 붙는다.
우준은 손을 등 뒤로 뻗어 평상에 대고 하늘을 바라본다. 촘촘하게 박힌 별이 우준을 굽어본다. 저 멀리 시온의 집 불빛이 우주보다 더 아득하다. 아직도 이 목사는 영한사전을 들춰가며 자기 책상에서 번역하고 있을까.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폐암으로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는 우준의 기억에 별로 없다. 사업에 대한 스트레스로 담배를 많이 피웠다고 들었다. 형과 같이 장례식장에 우두커니 서서 영정을 바라본 게 아버지에 대한 전부다.
어머니는 두 형제를 힘들게 키운다. 교회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우현은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공부를 잘한다. 어머니의 자랑이고 늘 관심은 형이 먼저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향인지 우현은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가정을 원한다. 큰 욕심 없이 금융권에 취직하고 참한 여자와 결혼해서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다.
반면 어머니는 우준을 하나님께 성직자로 바친다. 이제까지 교회에서 받은 도움에 대한 보답일 수도 있다.
이런 의지를 교회에 밝히자 성도들은 “할렐루야!” 외치면서 박수를 치고, 우준의 신학대학원까지 장학금을 보장한다.
우준은 목사의 삶이 그리 나쁘지는 않으리라 여긴다. 어머니를 실망시키기도 싫다. 무엇보다 형처럼 장학금을 받으면서 대학에 다닐 자신이 없다. 유학까지 보장해 준다는 장로님의 지원에 우준은 고등학교 졸업 후 진로를 신학으로 선택한다.
시골이라 전력 공급이 일정하지 않은 것 같다. 가로등이 깜빡거리며 흐려졌다가 다시 밝아진다.
우준은 이 자리에 앉아있는 이유를 스스로 물어본다. 어쩌면 저 시온의 집은 나에게 도피처가 아닐까.
이미 정해진 미래에 대한 일탈로, 이제 돌이킬 수 없기에 잠시 여기에 머물며 망설이는 건 아닌가. 혹은 가족에게 받을 수 없던 정을 저 아이들을 통해 보상받는 건 아닐까.
슈퍼 아주머니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와 탁탁 치면서 먼지를 날린다. 우준에게 빨리 꺼지라는 신호다. 어딘가에서 개 짖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린다.
우준이 무릎을 짚고 일어서는데 어둠 저편에서 친숙한 발소리가 들린다. 반갑게 랜턴을 비추니 경모가 걸어오고 있다.
만일 학교를 다녔으면 초등학교 3학년이다. 자폐아인 경모는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고 어디론가 가야 한다.
조현병인 광호와 반대다. 아침에 밥을 먹으면 휙 나갔다가 저녁나절에 들어온다. 멀리는 가지 않는다. 주로 논두렁에 앉아 지나가는 경운기를 관찰하거나 근처 산언저리에서 하늘만 바라본다.
마을의 입장에서는 거슬리는 아이다. 버스가 지나가는데 아무리 경적을 울려도 비키지 않는다. 남의 집 대문에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양동이로 찬물 세례를 받는다.
그럴 때마다 경모는 침을 뱉는다. 자폐아의 방어기제다. 도망치면서도 침을 뱉는다. 더 화가 난 주민은 경모에게 욕하고 때리기까지 한다. 연락을 받고 우준이 데리러 나간다. 주민들은 집에서 나오지 않도록 병신 단속 좀 잘하라고 고함을 지른다.
경모를 데리고 돌아오는 우준에게 목사 사모가 ‘경모 아빠’라는 별명을 붙인다. 아마 경모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책임을 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인 것 같다.
랜턴이 눈부신 듯 경모는 손바닥을 펼쳐 얼굴을 가린다. 어디를 다녔는지 무릎 아래가 흙투성이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우준을 지나쳐 곧장 시온의 집으로 향한다. 원래 자폐아의 특징이 주위 사람과 어울리지 않으려고 한다.
우준은 경모의 어깨를 잡는다. 길이 고르지 않아 랜턴을 비추지 않으면 넘어질 수 있다.
“다녀 왔어? 어디에 있다가 왔어?”
경모는 대답이 없다. 항상 그렇듯 눈가가 침울하다.
“가자. 얼른 씻고 자야지.”
우준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끌어당긴다. 순순히 따라온다. 잠시 잠잠해졌던 개 짖는 소리가 다시 요란해진다.
시온의 집을 향해 걷는 우준의 발걸음은 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