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성교회에서 시온의 집과 야유회를 제안한다. 근처 공원에서 중고등학교 학생회와 자연예배를 드리자는 것이다. 점심식사나 이동하는 교통 문제는 전부 교회 쪽에서 맡아서 하겠다고 연락이 온다.
이유는 시온의 집 봉사 활동이라고 하지만, 광성교회 학생이 잠시 정신지체아와 지내면 삶에 대해 뭔가 더 깨닫게 되지 않을까, 이런 의도로 짐작한다.
시온의 집에서는 무료로 야유회를 즐기는 입장이니 거절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준은 화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가 무슨 장애인 체험하는 투어입니까?”
이 목사는 이번 기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바깥 바람을 쐬고 오자며 달랜다. 혹시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되어 지원금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갖는 것 같다.
외출 준비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아이들 씻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힌다. 마을을 벗어날 때는 항상 가슴과 등에 노란색 스티커를 붙인다. 거기에는 매직으로 큰 글씨가 쓰여 있다.
이 아이는 시온의 집 가족입니다.
만일 보호자 없이 혼자 다니면
아래 휴대폰 번호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각자 두 명씩 담당한다. 우준은 오른쪽에 경모를 왼쪽에 광호의 손을 잡는다. 상운과 목사 사모도 양쪽에 아이의 손을 꽉 잡고 있다. 남은 1명은 이 목사 담당이다.
바깥으로 나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시온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자기가 맡은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
광성교회 승합차가 도착한다. 설교를 맡은 이 목사는 평소와 다르게 말쑥한 정장 차림이다. 이 목사 내외와 상운과 우준 그리고 아이들까지 시온의 집 식구가 들 뜬 기분을 추스르며 승합차에 오른다.
야유회에 어울리도록 눈부시게 화창한 햇살이 쏟아진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기다리던 광성교회 학생들이 박수로 맞이한다.
느닷없는 환영에 겁을 먹은 광호가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는다. 다들 비워둔 자리에 앉지만 우준은 불안에 떠는 광호 때문에 합류할 수 없다. 따로 떨어져 기타 반주에 맞춰 찬송가를 부르며 예배에 참석한다.
기도 시간에도 눈은 감지만 광호와 경모를 잡은 손은 놓지 않는다.
광성교회 전도사가 돗자리를 들고 다가오자 경모가 그를 향하여 침을 뱉는다. 낯선 사람에 대한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전도사는 돗자리만 살며시 놓고 돌아간다.
이 목사가 설교하는 도중에는 광호가 자기 머리를 치며 긴 신음을 지른다. 이런 상황이 적응 안 되는 모양이다. 시온의 집이라면 잠시 다른 장소로 데리고 가서 진정시키지만 이곳에서는 등을 다독거리는 수밖에 없다.
소란이 진정되자 광성교회 학생은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는 표정으로 흘금흘금 시온의 집 아이와 눈을 맞춘다.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학생도 있다.
전혀 소통을 할 수 없는, 그들과 다른 세계에서 사는 존재다. 기껏해야 TV 다큐멘터리에서 봤을 뿐이지 정신지체아가 이 정도인 줄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오늘 저녁 일기장에 많은 생각이 담긴 글을 쓸지도 모른다.
작년에 찾아온 대학교 동아리였다. 장애 어린이를 사랑하는 모임. 대표가 졸업반 여학생이었는데 시온의 집을 처음 방문하던 날 자기는 이런 아이가 불쌍해서 견딜 수 없다고 눈물을 흘린다.
이들도 생일축하 받을 권리가 있다고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 가더니 날을 맞춰서 회원과 같이 케이크를 들고 온다.
벽에 알록달록 풍선을 붙이고,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자에게는 고깔모자를 씌우고 해피버스데이투유를 부르며 사진을 찍는다.
반면 시온의 집 아이는 생일이 뭔지도 모른다. 멀뚱하게 생일초만 바라볼 뿐이지 입으로 불어서 끄려는 의지는 전혀 없다. 그건 소위 정상인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오히려 사진기 플래시가 터지자 겁을 먹고 비명을 지른다. 케이크 조각을 나눠줘도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무슨 맛인지도 모를 것이다. 여학생 대표가 스푼으로 케이크를 덜어 자기 입에 넣고 “아, 맛있다.” 해보지만 아이는 반응하지 않는다. 결국 두어번 그런 진행을 한 뒤에 발길을 끊고 만다.
그녀는 진정으로 이 아이들이 뭘 원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타인과 공존하는 첫걸음은 약자의 입장에서 이해를 해보는 것이다. 강자가 자신의 입장으로만 배려하는 행위도 어떻게 보면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광성교회에서 나눠준 김밥은 푸짐하다. 아침부터 준비한 교회 집사님의 정성을 느낄 수 있다. 학생들은 도시락을 들고 시온의 집 아이에게 다가온다.
“안녕. 나는 동규라고 해. 여기 앉아서 같이 밥 먹어도 되지?”
그게 시작으로 나는 누구야 나는 누구야 자기 인사하면서 주위에 앉는다. 의외의 태도에 우준은 눈을 껌벅거린다. 그들은 경모가 뱉는 침을 맞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고 돗자리를 펼친다. 돌아보니 시온의 집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선재는 낯선 상황에 어리둥절하며 입으로 넣어주는 김밥을 우물거린다. 입에서 밥알이 흘러내리지만 광성교회 학생은 아무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다. 한 학생은 직접 떠먹여 주기도 한다.
다운증후군 선재의 입안으로 들어간 나무젓가락으로 다시 김밥을 집어 자기 입으로 넣는 장면을 보자 우준은 장애인 투어라고 비꼰 자신이 무안해진다.
점심 식사를 마치자 학생들은 시온의 집 아이가 먹은 도시락까지 치워준다. 친절하게 물까지 떠서 건네준다. 마치 자기 동생처럼 대하고 있다.
미리 프로그램을 준비한 것 같다. 사회자가 나와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한다. 청년부 회장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제 생각에는요. 어떤 아이든지 뛰어야 합니다. 뛰어야 마음이 풀리고, 뛰어야 서로 친해져고, 뛰어야 화합이 이루어집니다. 먼저 구호를 외치고 시작할게요. 우리는!”
사회자가 검지 손가락을 높이 든다. 학생들이 목청 높이며 사회자를 따라 검지 손가락을 올린다.
“하나다!”
신선한 구호에 목사 사모가 박수를 친다.
“다시 크게 외칩니다. 모두 따라 하세요. 우리는!”
“하나다!”
손가락들이 더 높게 올라간다. 이번에는 웅크리고 앉은 광호까지 어눌한 발음으로 따라 외친다.
“한…… 하 나 야.”
지금까지 광호가 누군가에게 호응한 적은 없다. 놀랄 일이다.
풍선 터트리기, 훌라후드 돌리기, 2인3각 게임에도 시온의 집 아이들은 잘 어울리며 즐거워한다. 비록 정상인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지만 광성교회 학생회에서 유도하고 있다. 하긴 언제 마음 놓고 이렇게 뛰어본 적이 있던가.
“우리가 다같이 시온의 집에서 나온 게 처음이다. 안 그래?”
즐겁기는 상운도 마찬가지다. 그의 시선은 시온의 집 아이에게 떨어지지 않는다. 조금 방심하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네……. 아이들도 좋아하고. 광성교회 목사님이 학생한테 미리 교육하고 준비를 많이 했네.”
깍지를 끼고 즐겁게 2인3각으로 달리는 광성교회 학생과 시온이 집 아이, 우준은 처음 대하는 저 광경이 믿어지지 않는다. 저 둘 사이에 육체적인 차이 말고 무엇이 가로막고 있는지 아직 구분할 수 없다.
“너는 나중에 목사님이 될 거지? 대학 나오면 네가 원하는 일 하면서 살 수 있잖아.”
진한 부러움이 상운의 말투에서 배어 나온다. 엊그제 우현과 통화한 내용이 떠오른다. 너 거기에서 2년이나 지냈어. 그만하면 충분하잖아. 목사님이 그러시더라. 이제 교회로 돌아와서 유년부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해 보래. 너도 이제 네 미래를 바라봐야지. 군대도 갔다 와야 하고.
“결국 그렇게 되겠지.”
“나는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계속 여기에 있을 수도 없고…….”
우준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다. 그게 죄책감처럼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너도 꿈을 가져 봐.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을 거야.”
“꿈? 나한테 꿈을 갖으라는 건…… 너는 나중에 광호 경모 선재 같은 시온의 집 아이들이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 있을 것 같니? 그런 것과 비슷한 거야. 세상은 절대로 나 같은 녀석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꿈을 이룬 사람이 몇명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꿈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심지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애초부터 차별로 시작된 사회다.
“아까부터 경모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상운이 두리번거리며 소리친다. 우준은 자신의 손을 굽어본다. 어? 아까 달리기 할 때 놔주고 다시 잡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