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다공증이 심해진 어머니는 집 화장실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진다. 다시 입원했고, 밤마다 소리를 지르는 병실 생활이 어려워 집에서 통원 치료를 받는다.
방에서 대소변을 처리하기 때문에 냄새가 지독하다. 아버지가 창문을 열어 둔 채 잔다. 11월은 찬바람이 진해지는 시기다. 폐렴이 재발한다.
어머니는 119 구급차로 병원에 갔고,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며, 이미 의식은 없다.
갑자기 어머니의 맥박이 떨어지면서 급박한 상황이 된다.
“당장 산소호흡기를 차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해요.”
의사가 연명치료 동의서를 내민다.
당신은 이대로 어머니가 죽을 수 있다는 충격에 연명치료를 거절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후 닥칠 어려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1~2초 망설이는 그 순간에 정말 희한하게도 어머니의 맥박이 다시 올라간다. 의사의 얼굴에 얼핏 실망하는 기색이 보인다.
어쩌면 의사와 대화를 들은 어머니가 연명치료를 거부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낸 게 아닌가, 당신은 그렇게 믿는다.
당신은 복도로 나와 놀란 가슴을 추스른다.
돼지처럼 뚱뚱한 간호사가 다가오더니 산소호흡기를 착용하라고 요구한다.
“나중에 어머니가 정신을 차리면 웃으면서 대화도 나눌 수 있어요.”
그녀의 족발 같은 손에는 연명치료 동의서가 들려 있다.
하지만 산소호흡기는 의식을 잃은 환자에게 강제로 호흡만 유지하는 장치이다.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만일 환자에게 산소호흡기를 떼려면 재판까지 받아야 한다. 강제로 생명을 끊는 거니까.
산소호흡기를 찬 채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않으면 욕창이 생긴다. 매 시간마다 몸을 돌리면서 환기를 시켜야 한다.
밥을 못 먹으니 목에 구멍을 뚫어 튜브로 공급한다.
병원비 간병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이것 때문에 자식간에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병원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산소호흡기를 제안한다.
부모를 잃고 싶은 자식은 없다. 이런 간절함을 이용해 먹으면서까지 병원은 돈을 벌려고 한다. 죽음을 앞에 둔 환자를 놓고 흥정하는 것이다.
만일 그 돼지 간호사의 말을 믿고 연명치료 동의서에 사인을 했으면, 아마 지금까지 시체와 다르지 않은 어머니를 돌보느라 당신의 가정은 파산되었을지도 모른다.
형들과 통화하는 사이, 작은형이 확실하게 연명치료 거부를 밝힌다.
“어머니도 그렇게까지 사는 건 원치 않으실 거야. 너도 그 동안 고생했고. 잘 보내드리자고.”
간혹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이 있다.
깨끗한 침대에서 산소호흡기를 차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환자가 누워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이 몇년 동안 애틋하게 기다린다. 간혹 다소곳하게 누운 환자에게 다정다감하게 말을 걸기도 한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절대로 영화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정말 가슴에 한이 맺히는 건 당신의 가족 중에서 아무도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지 않았다.
사람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본다고 하던데, 이제까지 키운 자식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어머니 혼자 쓸쓸하게 운명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당신은 정말 미칠 것 같다.
집에서 피곤한 눈을 붙이던 당신이 병원 간호사의 연락을 받고 달려가자 중환자실 침대에 누운 어머니는 이미 운명하셨다.
입술을 약간 벌린 채 자는 것 같다. 거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과 손을 만졌을 때 그 따듯한 체온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
당신은 울고, 최대한 감정을 추슬러서 억지로 멈춘다. 이제부터 어머니를 잘 보내려면 할 일이 많으니까.
회사와 친구에게 부고를 알린다. 그러는 동안 이상하게 화가 난다. 괜히 직장 후임에게 당신이 없는 동안 일을 잘 하라고 성질을 부린다.
머리가 멍해진다. 그러면서도 계속 판단을 내리면서 움직인다. 슬프기는 하지만 사후 수습은 해야 하니까.
형들이 왔고, 친척이 도착한다. 다들 당신과 비슷한 감정이다.
미리 영정 사진을 찍어 뒀다. 어머니를 모실 추모공원도 예약을 해둬서 장례식은 원활하게 진행된다.
작은형의 준비성 덕분이다. 그는 쉬는 날마다 승용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벽제에 부모님을 같이 모시는 안치단을 예약했다. 상조회에서 나온 직원도 장례절차를 잘 유도해준다.
아버지는 막내가 10년 넘도록 어머니를 보살폈다고 친척 앞에서 칭찬하지만 당신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여전히 그 여자는 오지 않는다. 아직 큰형이 이혼하기 전이니 그 여자도 가족이다.
가족이면 어떤 원수를 졌더라도 마지막으로 얼굴을 내미는 게 도리인데, 이건 사람으로 할 짓이 아니다. 기대도 안 했지만 전화조차 없다.
주아는 온다. 작은 중소기업의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휴대폰으로 통화를 마친 큰형이 씨익 웃으며 주아가 온다고 알려준다. 어머니가 죽기 전에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주아가 이제야 온다.
그런데 이 인간이 웃으면서 그 사실을 알려준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손녀는 문상객 취급을 받는다. 영전에 절하는 주아를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다른 손주는 상복을 입고 손님을 맞이하느라 분주한데, 큰형은 배 고프니 밥을 먹으라고 주아에게 자리를 마련해준다.
밥을 다 먹자 데리고 다니면서 친척에게 자기 딸이라고 소개한다. 아버지가 좋아할 리가 없다. 다들 할 말을 잃는다.
주아는 곧 돌아간다. 아무도 고개 숙이고 신발을 찾는 주아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청소년기를 훌쩍 뛰어넘어 성인이 되는 동안 당신이 만난 적 없는 조카다.
더 기막힌 사건은 주아의 직장 동료들이 문상을 온다.
친할머니의 부고로 휴가를 냈고, 아무리 계약직이라도 조문을 가는 게 도리라고 여긴 그들은 저녁 시간을 내서 장례식장으로 온 것이다.
회사 부장님이 주아를 찾는데, 여기에 없다. 그들은 머쓱하게 밥만 먹고 일어선다.
장례식을 치른 뒤 당신이 박물관으로 출근하자 주위에서 많은 위로를 받는다. 자주 멍해지기는 했지만 덤덤하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중 아침에 눈을 뜨는데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 엄마가 반찬을 만드는 모양이다.’
당신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잠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쇠꼬챙이로 가슴을 뚫어버리는 통증이 지나간다.
‘어? 엄마 죽었잖아……. 설마?’
당신은 방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온다. 물을 마신 아버지가 싱크대에 컵을 내려놓고 있다.
그때 당신은 한참 동안 멍하게 아버지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