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죽음 (3)

by 은빛바다

서서히 어머니의 기억이 흐려진다.


주방에서 조미료가 어디 있는지 몰라 서랍을 다 뒤진다. 당신이 선반에 놓인 조미료통을 꺼내 보여주면 이게 맞는가 눈만 껌뻑거린다.


당신은 퇴근하면 곧장 마트에서 장을 본다. 집으로 돌아와 반찬을 만드는데 과일, 채소, 통곡류 위주로 식단을 바꾼다.


매달 어머니랑 병원에서 파킨슨의 상태를 진단받는다. 꾸준하게 약을 복용한다.


출근하기 전 아침 점심 저녁으로 어머니가 먹을 약을 구분해서 작은 상자에 나누어 담는다. 산책하는 경우에는 어머니를 꼭 따라나선다.


쉬는 날이면 농장을 검색해서 부모님을 모시고 시외로 나가 점심을 먹는다. 맑은 공기를 쐬려는 노력이다. 어떻게는 파킨슨병의 진행을 막아야 한다.


당신의 생활이 바뀐다. 체육관에서 운동할 시간이 없다. 고민하다가 밤중에 아파트 계단을 걷기로 한다.


1층부터 가장 꼭대기인 15층까지 오른다. 승강기를 타고 내려와 다시 15층까지 오른다. 그렇게 7번 반복해서 100층을 채운다.


예민한 아파트 주민은 발자국 소리를 듣고 현관문을 열어 누군지 확인한다. 7층에는 강아지를 키우는데 당신이 5층 무렵에 이르면 낌새를 알고 요란하게 짖는다.


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계단 오르기를 멈춘다.


여름휴가에 당신은 배낭여행으로 혼자 거제도를 찾는다. 정말 오랜만에 자유다.


첫날 저녁에 바닷가에서 회를 먹고, 다음 날부터 관광지를 둘러보려고 하는데, 아침에 집으로 전화를 거니 아버지가 받는다. 급박한 소식을 알려준다.


어제 어머니가 산책하다가 쓰러졌다. 당신은 놀란 가슴을 누르며 황급히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온다. 다행스럽게 어머니는 산책 도중에 잠시 주저앉았을 뿐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보다가 당신을 반긴다. 아버지의 과한 표현이었다. 그래도 당신은 곧장 올라온 게 잘했다고 여긴다.


그런 식으로 10년을 넘게 보낸다.


증상은 서서히 심해진다.


가끔 어머니는 집에서 어린 아이를 만난다. 문득 식탁을 돌아보다가 당신에게 묻는다. 치매 진단까지 받은 시기다.


“어? 걔가 어디로 갔지? 분명히 여기 앉아 있었는데?”


어린 아이가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고 한다. 당신은 묻는다.


“그 얘가 어디에서 왔는데요?”


“옆집에서 왔겠지.”


옆집은 신혼부부가 살뿐 아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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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막힌 일은 8층 할머니가 자꾸 문밖에서 어머니를 부른다고 한다.


전혀 일면식이 없는 분이다. 동대표를 만났을 때 물어보니 8층 할머니는 지난 달에 돌아가셨다. 이런 증상을 도무지 막을 방법이 없다.


당신의 어머니는 폐가 약하다. 젊은 시절에 아버지가 피우던 담배로 인한 간접흡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것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다.


밤이 되면 어머니는 병실의 환경을 불안하게 여기며 섬망증세를 보인다. 집에 가자고 떼를 쓴다. 그게 안 되자 억지로 침대에 내려오려고 해서 링거 바늘이 뽑힌다.


잠을 자기 위해 병실을 소등하자 섬망증세가 더욱 심해진다.


급기야 자기가 납치되었다고 여긴다. 아무리 진정을 시키려고 해도 듣지 않는다. 급기야 외삼촌과 이모의 이름을 외친다. 나 여기에 있으니 구해달라고.


8인실 병동, 어둠 저편에서 잠을 못 자는 환자와 보호자의 불만이 들린다.


당신은 휠체어에 어머니를 태워 병실에서 나온다. 갈 곳이 없다. 담요를 덮여주고 1층 로비로 내려간다. 그 동안에도 어머니는 계속 집에 가자고 칭얼거린다.


불 꺼진 접수대에는 아무도 없다. 당신은 의자에 앉아 어머니를 마주 보면서 묻는다. 간혹 무전기를 든 보안 요원이 지나간다.


“엄마, 여기가 어디야?”


제발 어머니가 제대로 인식하기를 바란다.


“여기 묵동.”


놀랍게도 어머니는 시골에서 올라와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서울 변두리의 동네를 끄집어 올린다.


그러면서 당시에 돈을 꾸고 안 갚은 지인이라든가 자신에게 상처를 준 동네 주민에 대해서 욕을 한다. 아직도 잊지 않은 아픔을 이런 계기로 드러나는 것 같다.


정말 기괴하게 어머니는 쉬지 않고 떠든다.


밤새도록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어머니의 내면에 깊고도 깊은 상처가 묵혀 있던 것이다.


당신은 다시 묻는다.


“그런 거 말고. 엄마가 가장 즐거웠던 때가 언제야?”


어린아이의 해맑은 얼굴이 떠오를 정도로 갑자기 어머니가 웃는다.


“너희가 뛸 때.”


“응……?”

“너희가 골목에서 즐겁게 폴짝폴짝 뛰면서 놀 때.”


어머니는 아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중이다. 아무도 없는 병원 1층 로비에서 4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당신 형제는 어머니의 가장 귀중한 보물이다. 영원히.


어머니가 병원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그 여자는 오지 않는다. 작은형은 먼 거리를 무릅쓰고 손주들을 데리고 와서 어머니에게 위안을 드린 반면 주아는 할머니를 만나러 오지 않는다.


결국 어머니는 주아를 만나고 싶다며 밤새도록 징징거린다. 치매가 심해지면서 옆침대 보호자가 주아의 사촌이라는 말까지 한다. 밑도 끝도 없이 그들에게 묻는다.


“할머니가 아픈데 왜 주아는 안 온대요?”


집으로 돌아와 휠체어를 타고 산책할 때도 동대표나 얼굴을 아는 이웃을 만나면 주아 얘기만 한다.


“못된 며느리가 주아를 잡고 놔주지 않고 있어.”


그렇게라도 떠들면 혹시 주아가 할머니를 만나러 올까 막연하게 기대하는 것이다.


당신은 따로 큰형에게 연락한다.


“어머니가 맨날 주아를 찾어. 좀 데리고 와.”


큰형은 알겠다고 반복할 뿐 주아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부부 사이가 가장 안 좋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또 휴대폰에 카메라가 부착되면서 사진관은 입지를 잃는다. 벙글벙글 사진관도 문을 닫는다.


큰형은 집안의 가장으로 다른 일자리를 찾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 그 여자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일자리를 얻으면 3개월을 넘기지 못 한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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