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죽음 (2)

by 은빛바다

근무 시간에 당신은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받는다.


낯선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박근호 씨 휴대폰 맞죠?”


이상한 낌새에 당신은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사무실에서 나온다.


“네, 맞는데요. 누구시죠?”


“할머니가 길바닥에 쓰러졌어요. 많이 다쳤어요. 하도 바들바들 떨기에 지나가던 학생들이 옷을 덮어줬어요. 할머니가 막내 아들한테 전화를 걸라고 번호를 알려줬어요. 지금 119 구급차 타고 병원으로 가요.”


어느 병원인지 안 순간 당신은 승용차를 몰고 달려간다.


운전하는 동안에 계속 자신에게 다독거린다. 만일 흥분하면서 운전하다가 당신까지 다치면 사태는 더 커진다.


'별일 아닐 거야. 사고 나지 않게 침착하게 안전운전, 안전운전, 안전운전…….'


속도를 늦추며 양보까지 해준다.


응급실 침대에 누운 어머니는 눈으로만 당신을 알아본다. 정신이 나간 사람 같다.


부은 입술이 터져서 피가 흘러내린다. 몸살이 도진 것처럼 오들오들 떤다.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도 모르고 있다.


제대로 나오지 않는 발음으로 식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넘어졌다는 말만 반복한다.


당신은 몸 안의 모든 장기가 꼬여버리는 것 같다.


검사 결과, 어머니는 고꾸라지면서 왼손으로 바닥을 짚는 바람에 팔목이 골절되고, 앞니가 세 개나 부러졌다.


입원 수속을 마친 뒤 당신은 휴대폰으로 형들에게 연락한다. 급한 상황은 지났다고 안심을 시킨다.


큰형은 곧장 병원으로 달려오고, 작은형은 다음 날 월차를 내서 올라올 예정이다. 집에서 혼자 TV를 보던 아버지도 병원으로 온다. 한바탕 근심의 파도가 지나간다.


당신은 병원에서 자고, 다음 날 오전에 부른 간병인에게 인수인계를 한다.


1762925205701.png


집안일을 맡고, 병실로 속옷과 슬리퍼 휴지 같은 생필품을 갖다 놓으면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매일 들린다.


잠이 부족해서 점심시간에 회사 휴게실 의자에서 몰래 눈을 붙인다.


어머니의 팔은 심지를 박아 뼈의 위치를 교정한다. 그 상태로 뼈가 제자리를 찾기까지 기다린다.


깁스를 푼 어머니의 팔목은 쭈글쭈글해졌다. 그 후 팔을 움직이는 재활 과정도 꽤 오래 걸린다.


팔 치료를 마친 후 새로운 이빨로 교정한다. 어머니가 웃으면 이제 이빨 사이에 벌어진 틈이 보이지 않는다.


힘든 기간이지만 상처는 잘 아문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을 겪는 거니까.


이제 어머니는 식당 일을 접는다. 그동안 그 여자는 문병을 오지도 않는다. 안부 전화도 없다.


그때까지도 어머니가 길바닥에서 넘어진 이유를 모른다. 어머니의 주장에 의하면 그냥 정신없이 고꾸라졌다고 한다. 뭔가에 걸려 넘어진 것이겠지 안일하게 여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놀라운 전화를 받는다. 회사에서 퇴근을 준비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어머니다.


“오늘 너희 아빠랑 같이 김석진 내과에 다녀왔는데…….”


매달 동네 병원에서 아버지의 혈압약과 당뇨약을 타는데 산책 삼아 동행한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상태를 설명하자…….


“의사 말이 내가 파킨슨 같다고 하더라.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진료의뢰서를 써줬어.”


정말 하늘이 노랗게 변하더라는 의미를 그때 느낀다.


잠을 자다가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나는 것, 그게 파킨슨의 초기 증상이다.


알고 보니 어머니의 걸음도 파킨슨 증상이다. 드디어 어머니의 팔과 이빨을 부러지게 한 원인을 찾는다.


가끔 같이 산책하던 아버지의 주장을 되돌아본다.


“갑자기 중심을 잃고 앞으로 허우적거리며 뛰쳐나가는 거야. 꼬꾸라질 뻔한 것을 몇 번이나 잡았어.”


도무지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그 의사가 대형 병원과 짜고 환자를 보내기 위해 진료의뢰서를 써 준 거라고 화를 낸다.


다음 날 어머니와 김석진 내과로 가서 싸운다.


“당신이 파킨슨병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 만일 파킨슨병이 아니면 어떻게 책임을 질 거야?”


평소에 험한 소리를 하지 않는 당신이 욕설까지 하면서 의사에게 대든다.


당황한 의사가 거친 기세 때문에 방사선실로 피하고, 당신은 남아있는 간호사에게 온갖 성질을 부리며 만일 파킨슨병이 아니라면 이 병원 다 부숴버린다고 협박까지 한다.


당신은 다른 병원에서 어머니의 파킨슨병 검사를 받는다.


병원마다 진단이 다르다. 파킨슨병은 인지 능력이 떨어질 뿐이지 몸에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에 확실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의사가 볼펜을 쥐고 환자에게 잡아보라고 한다. 잘 잡으면 인지능력이 괜찮은 것이고. 만일 잘 잡을 수 없어도 이게 노화 현상 때문인지 파킨슨병 때문인지 결론이 어렵다.


만일 이쪽 병원에서 파킨슨병이 맞다는 진단을 받으면, 당신은 다른 병원으로 가서 재진단을 받는다. 어머니가 파킨슨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당신은 어떻게든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작은형의 도움으로 서울대학병원을 예약해서 진찰을 받기로 한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여긴다.


그곳에서…… 의사는 어머니에게 파킨슨병 확정을 내린다. 이제 어쩔 수 없다.


뒷좌석에 어머니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 당신은 참 이쁜 노을을 바라보며 신을 원망한다.


그날 잠든 어머니를 확인한 뒤 당신은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다. 아파트 화단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군대 시절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며 으흐흐 운다.


엄마가, 우리 엄마가, 이제까지 자식 키우느라 평생 고생만 하고 살아온 우리 엄마가…….

월, 수, 금 연재
이전 09화어머니의 죽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