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형은 대기업에 입사한 뒤 결혼해서 분가한다. 큰형은 딸을 낳고, 작은형도 연년생으로 아들 딸을 낳는다. 박성탁. 박하윤.
교수님의 추천으로 당신은 졸업 후 박물관에 입사한다. 관장님이 교수님의 친한 친구다.
먹고사는 일에 바쁘고 새로 생긴 가족을 챙기느라 3형제는 서로 돌아볼 겨를이 없다. 그러면서 집안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3형제 중 막내인 당신은 어머니를 잘 따른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같이 시장에 다니고, 어머니의 친구 모임에도 참석해서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주방 일도 잘 거들어서 요리 솜씨도 제법이다.
아버지는 자기 고집대로 산 반면, 어머니는 가족에 희생적이다.
평생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한 적도 없다. 오직 자식들 잘 되기만 바란다.
자신을 태워 온기를 주는 장작이고, 자신이 썩어 나무를 울창하게 만드는 거름이다.
그런 어머니가 파킨슨병에 걸린다.
***
어머니는 가끔 자다가 비명을 지른다.
당신이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달려가면 아버지가 흔들어 깨우고 있다. 어슴푸레 눈을 뜬 어머니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앉는다.
“안 좋은 꿈 꿨어요?”
어머니는 마른 입술에 침을 묻히면서 대답한다.
“절벽으로 오빠가 걸어가는 거야. 더 가지 말라고 해야 하는데 가슴이 막혀서 말이 안 나와……. 오빠야, 오빠야, 부르는데 계속 말은 나오지 않고, 오빠는 나를 안 돌아보고 계속 걸어가는 거야. 오빠야! 크게 부르다가 깼어…….”
어머니가 말하는 오빠, 외삼촌은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다. 외가 식구는 그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주방으로 들어간 어머니는 물을 들이켜고 한참 동안 쌕쌕거린다.
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벌써 코를 골고 있다. 요즘 MBTI로 분류하면 공감 능력이 아주 부족한 ‘T'다.
악몽의 종류도 다양하다. 하얀 옷을 입은 누가 쫓아온다거나, 거대한 개가 달려든다거나, 어느 날에는 아무 꿈도 꾸지 않았는데 비명을 지른다.
당시에는 어머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몸이 허해져 그런 줄 알았다.
자식들이 전부 취직했는데 어머니는 식당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몸이 성할 때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보약을 지어드리고 자주 고기를 사드리면서 영양 보충을 해드린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가족 모임에서 그런 어머니의 상태를 이야기한다. 명절, 제삿날, 부모님 생일 등 집안의 대소사에는 3형제가 빠지지 않고 모이는 편이다.
다들 걱정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 미혼인 당신에게 부모님을 잘 모시기 부탁할 뿐이다.
사실 취침 도중에 가위눌려서 깨는 경우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몸이 허해서 그럴 뿐이라고 여긴다.
“자식이 속을 썩여서 그렇죠, 뭐.”
차례를 지낸 뒤 밥상을 정리하는데 뜬금없는 소리가 툭 튀어나온다. 그 여자다. 큰형의 마누라.
늦은 나이에 결혼을 못 한 나를 비꼬고 있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니면 우리 집안을 만만하게 보는 건지.
집안 대소사로 모이는 경우 가장 늦게 도착했다가 가장 먼저 일어선다.
식사를 마치면 슬슬 눈치를 보다가 차가 막히기 전에 얼른 가자고 큰형을 부추긴다.
큰형은 거기에 맞장구를 치며 뻔한 거짓말로 둘러대고는 현관을 나선다.
“집에 손님이 오시기로 해서 먼저 나갈 게요.”
부모님은 서운하지만 잡을 수 없다.
장남인데 서서히 우리 가족에서 멀어지고 있다. 때문에 집안의 대소사는 작은형이 전부 맡아서 진행한다.
아직도 당신은 그 여자의 성격을 이해할 수 없다.
자기 주위의 모든 사람을 무릎 아래로 굽어본다. 심지어 대통령을 만나도 만만하게 볼 것 같은 여자다. 그러니 손아래 도련님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도무지 그 오만함의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학벌이 높지도 않고 재산이 많지도 않고 별다른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고 내세울 게 하나도 없는 여자인데 말이다.
다만 하나는 인정할 수 있다. 큰형이 넘어간 바로 그것, 그 여자의 외모다.
주아 초등학교 시절, 학부모 모임에 그 여자가 참석했다. 제대로 차려입고 나갔더니 학부모들이 휘둥그레 눈동자를 굴리면서 입을 모았다고 한다.
“도대체 저 여자 누구 어머니야?”
덕분에 어깨가 으쓱 올라간 주아는 다음 모임에도 꼭 엄마가 나오라고 아주 간곡하게 부탁하더라고, 큰형이 자랑처럼 떠든 적이 있다.
이건 정말 어이가 없는 경우인데, 친척 결혼식에서 사촌 동생을 만난다.
사춘기를 지나는 그 녀석은 목소리가 굵어지고 인사도 퉁명스럽다. 형들에게 다가오지도 않고 바깥으로 돈다. 거쳐야 하는 과정이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당신이 용돈이라도 쥐어줘야 하나 마음을 먹던 중에 그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큰형에게 소곤거리지만 주변 사람은 다 듣는다.
“쟤, 나 때문에 당황해서 저러는 거야.”
공주병 말기다. 반면 그만큼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점점 더 큰형은 당신의 가족에서 멀어진다. 섭섭하지만 어떻게 방법이 없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벙글벙글 사진관으로 찾아간다. 당신은 큰형의 전화를 받는다.
“얼른 와서 아버지 좀 모시고 가라.”
서둘러 달려간다. 예상대로 아버지가 그 여자에게 주사를 부리고 있다.
“가족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왔으면 먼저 일어서지 마라. 둘째 애랑 같이 나가야지.”
그 여자는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억지웃음만 지을 뿐이다.
“네, 네, 알았으니까 아버지 얼른 집으로 가세요. 도련님 왔어요.”
당신은 사진관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팔을 잡아당긴다.
이제 기력이 예전 같지 않다. 순순히 끌려 나온다. 젊은 날의 혈기왕성한 아버지는 이제 뒷방 신세다.
사진관에서 나오는 순간, 당신을 노려보는 그 여자의 눈매가 날카롭다. 아마 잠들기 전에 큰형한테 한바탕 쏟아부을 것이다.
큰형은 그만큼 우리 가족에게서 더 멀어지고.
그 사건 이후 명절에 아예 그 여자가 오지 않는다.
전에는 11시에 와서 대충 음식을 만드는 척만 하다가 점심 먹고 3시에 돌아갔는데, 이제는 큰형만 당일에 와서 차례를 지낸다.
변명은 늘 똑같다.
“주아 엄마가 몸이 좀 안 좋아서 다음에 온대요.”
나중에는 그런 변명조차도 하지 않는다. 하긴 그런 변명이 없어도 왜 그러는지 다 안다.
때문에 음식을 장만하는 작은 형수만 더 고생이다.
어머니는 태도도 단호하다.
“어디 언제까지 안 오는지 보자. 나중에 나 죽으면 문상하러 오지 않겠냐.”
그 즈음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파트를 분양받는다.
가족이 큰 낭비 없이 꾸준하게 돈을 모은 결과다. 모자란 금액은 작은형이 회사에서 대출을 받아준다.
신축 아파트는 깔끔하다. 이사하는 날 어머니의 입술 끝이 귀에 걸린다. 그때도 그 여자는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