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은 딸을 키우지 않는다. 공주님으로 모신다. 누구든 주아와 상냥하게 대화를 나누거나 뭐라고 나무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주아의 생일 아침에 큰형은 정성껏 미역국을 끓인다. 퇴근하면서 마트에 들려 생일떡도 사온다. 생일상을 차리고 둘이서 후르륵 쩝쩝 먹는다.
그 동안 당신은 맛있는 냄새를 맡으며 방에서 유튜브를 본다. 생일인데 맛 좀 보라는 권유조차 없다.
당신 집인데, 당신 방에서 갖혀 지낸다.
이게 일상이 된다. 큰형은 주방에서 고기를 굽고 전을 부치고 치킨을 뜯으면서 주아와 만찬을 즐기지만, 당신을 부르지 않는다.
당신은 허기를 참다가 늦은 저녁에 혼자 컵라면 물을 올린다.
큰형과 주아는 청소 빨래 쓰레기 분리수거 등 집안일은 하지 않는다.
주아가 아무렇게나 팽개친 쓰레기를 당신이 잘 분리해서 수거장에 버린다. 주아가 빨래통에 담은 세탁물을 당신은 잘 빨아 건조대에 말린다. 잘 마른 팬티를 개어 소파에 올려놓으면 주아는 자기 방으로 갖고 간다.
도대체 집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겠다.
하긴 부모님을 10년 넘게 돌보던 당신이라 이런 일이 익숙하다.
큰형은 장남이니까, 어릴 때부터 허드렛일은 동생이 하는 거라고 인식하면서 컸다. 그게 역시 장남인 아버지의 마인드다.
그런 큰형은 스스로 주아의 머슴이 된다.
운동화를 빨아주고, 방을 청소해주고, 심지어 저녁에 주아가 지하철역에서 전화하면 승용차로 모시러 간다.
고작 세 정거장이다. 버스 타면 5분이다.
“왜? 왜 못 온다는 거야? 지금 뭐하는데?”
이게 부모로서 옳은 방법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박물관에서 욕한 아들을 옹호했던 막돼먹은 엄마처럼, 설마 큰형도 그런 상황이 되면 주아를 옹호할까?
자식을 키우는 방법에 누구에게도 정답은 없지만 말이다.
당신의 집으로 이사한 뒤 셋이 술자리를 갖는다. 돌아보면 처음이자 마지막 술자리다.
치킨을 주문하고, 편의점에서 사 온 술을 식탁에 펼친다.
큰형은 금방 취한다. 주아와 같이 안정된 집에서 거주해서 기분이 좋은 것이지, 아니면 동생의 집에 얹혀 사는 자괴감 때문인지, 큰형은 거실에서 팬티만 입은 채 뻗어버린다.
주아가 방에서 이불을 갖고 와서 덮어준다. 단 둘이 술을 마시면서 주아가 아픈 상처를 털어놓는다.
큰형은 맨날 그 여자와 싸웠다. 그 여자가 항상 터뜨리는 불평이 주아의 뇌리에 깊게 박힌다.
“멍청한 네 아빠가 돈을 많이 못 벌어와서…….”
하루하루가 지긋지긋하다.
드디어 욱! 하는 성격에 큰형은 그 여자를 때린다.
그 여자는 곧장 경찰에 신고한다. 주아 친구의 아버지가 경찰이라 학부모 모임에서 그 여자를 봤다.
학교에 소문이 퍼진다. 주아가 한창 예민한 중학교 시절이다.
그 시기부터 주아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고 바깥으로 돈다. 공부는 될 리가 없다.
큰형은 그 집에서 가출한다. 3개월 동안 소식을 끊는다. 생활비도 보내지 않는다.
이건 당신이 몰랐던 사실이다. 한심하게도 큰형은 그런 식으로 그 여자의 버릇을 고치리라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여자는 이혼 서류를 들고 큰형의 회사로 들이닥친다.
이혼하는 날, 둘이 법원으로 들어가더니 곧장 나온다. 도장을 찍는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승용차에서 기다리던 주아는 큰형을 돌아볼 수 없다. 큰형이 애기 좀 하자고 창문을 두드려도 잠금 장치를 풀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끄윽끄윽 울음을 쏟는다.
그날 창문으로 본 맑은 하늘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다. 역시 큰형이 차창 밖에서 한 말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다.
“이제 네 엄마와 나는 남이야. 따로 살아야 해.”
큰형은 딸에게 평생 상처를 준 것이다. 그후 큰형과 만나면 주아는 제발 전처럼 같이 살자고 사정한다.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다.
아마 큰형은 이런 잘못 때문에 또 그 여자에게 주아를 뺏기기 싫어서 고분고분 대하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주아의 품성에 또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