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과 주아, 당신 (4)

by 은빛바다

아버지의 첫 기일을 당신 아파트에서 지낸다.


당신은 그 날에 맞춰 박물관에 휴무를 신청하고 마트에서 장을 본다.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제사상을 차린다.


저녁에 천안에서 작은형이 올라온다. 조카도 왔으면 좋으련만 다음 날 출근해야 하기에 아쉽다.


제사상에 아버지 영정이 자리를 잡는다. 형수가 부쳐온 조기와 전을 놓는다. 미리 끓인 탕국은 데우기만 하면 된다.


냉장고에는 형수가 갖고 온 김치가 가득하다. 한동안 반찬 걱정은 없다.


큰형을 기다린다. 주 6일 근무인데, 3일은 야근이고 토요일은 특근이다. 대신 수당이 세다. 특근수당 야근수당 연차수당을 받으니 12월 월급이 대기업 부장 정도 된다.


악착같이 돈을 모으면서 주아와 같이 살려고 애쓰는 중이다.


월급을 받은 주말에 주아와 고기 뷔페를 먹으러 간다.


마침 당신도 쉬는 날이지만 회사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출근하는 척한다. 하루 종일 사우나에서 잔다.


아버지의 아파트가 팔렸다. 섭섭하고 허전하다.


작은형은 A4 용지에 아파트 매매가와 그 동안 쓴 비용을 세세하게 적어서 내민다. 잔액을 확인한다. 곧 적지 않은 금액이 당신의 통장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목돈 생겼다고 딴생각 하지 마라.”


뜬금없이 작은형이 못을 박는다. 곁에 앉은 형수가 동조의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괜히 헛바람 들어서 사업한다고 일 벌이지 말라고. 형이나 너나 나나 사업 체질이 아니야. 경비원을 하더라도 꼬박꼬박 월급 받고 살아라. 요즘 직장인이 부업으로 무인 커피점 차리고 그런다던데 절대로 하지 마. 옛날에 아버지 사업하다가 집안 기울어서 엄청 힘들었던 거 알지? 맨날 술만 드시고 오셨잖아.”


작은형과 당신은 동시에 영정 사진을 바라본다. 푸근한 웃음을 지은 아버지가 어느 시절의 모습이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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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간 고생한 기억이 새록 떠오른다. 잘 견뎠다고 스스로 다독거린다.


“형한테 아버지가 어땠어?”


“무슨 말이냐?”


“아버지 술 마시고 오면 큰형은 뛰쳐나가고 엄마는 싸우고 집안 분위기 난리도 아니었잖아. 내 기억으로는 작은형만 책상에서 꿋꿋하게 공부했어.”


“짜샤, 학생이 공부해야지. 놀면 되냐?”


시답지 않은 농담에 형수가 작은형의 등을 툭 친다. 여전히 사이가 좋다. 작은형이 말을 잇는다.


“나는 그 시절 기억이 별로 없어. 대신 아버지 보면서 가슴이 꽉 막힌 적이 있어. 돌아가시기 두 달 전 즈음일 거야. 내가 서울로 출장 나왔다가 들렸잖아. 너랑 형은 회사에서 안 돌아왔고. 아버지 혼자 계시기에 뭐 드시고 싶은 거 없냐고 물으니까 고개를 저으시더라. 사우나 가는 길이라고 하시기에 같이 갔어. 등을 밀어드렸는데 정말 야위셨더라. 그걸 못 잊겠어. 어릴 적에는 아버지 덩치가 엄청 크게 보였는데 말이야.”


아마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할 정도로 인상적인 것 같다. 당신이 또 묻는다.


“아버지가 이해 돼?”


“이해는 무슨. 아버지 성격을 이해할 수 있냐? 이해 못 하면 같이 못 살아? 네 형수가 나를 이해해서 사는 것 같냐? 네 조카가 아빠를 이해하는 줄 아냐? 가족 관계는 이해가 아니라 암기야. 암기. 그러면서 사는 거야.”


마치 도를 닦는 것처럼 작은형은 털털하게 고백한다. 이제 대기업 상무라서 그런가 괜히 멋있어 보이는 것 같다.


만일 아버지가 없었으면? 어린 시절의 당신 인생은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당신을 힘들게 한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아버지는 은인이면서. 애증의 대상이다.


“주아랑 잘 지내냐? 아무리 조카라도 다 큰 여자애랑 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오늘은 할아버지 제사인데 걔는 안 오냐?”


아마 작은 아버지 피하려고 늦게 오는 것 같다. 그럭저럭 산다고 대충 얼버무리는데 작은형이 차가운 눈으로 주아의 방을 돌아본다.


“난 걔를 보면 그 여자가 떠올라. 많이 닮았어. 특히 심드렁할 때. 소름이 끼친 적이 많아.”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다.


주아는 몸이 안 좋으면 약으로 해결한다. 피로가 쌓이면 약, 몸살 기운이 도지면 약, 목이 칼칼해지면 약, 출근 전에 박카스를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언젠가 당신이 운동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하니 갑자기 주아의 태도가 싸하게 변한다. 감히 너 정도가 나한테 충고야? 언 듯 그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뭐라고 하면 변기 커버를 세게 내린다든지 방문을 쾅 닫으면서 불만을 드러낸다.


그후 무슨 짓을 하든 당신은 뭐라고 언질 하지 않는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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