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과 주아, 당신 (5) - 완결

by 은빛바다

당신은 라이터를 찾아 제사상 촛불을 붙이고 향을 꽂는다. 미리 아버지의 영혼이 왔을지도 모르는데 향이라도 피워야 될 것 같다. 혹시나 하는 조바심에 현관도 살짝 열어놓는다.


그렇게 속을 썩이던 분이 저승에서 어머니를 만나 잘 지낼지, 징글징글했지만 살아 계실 때 조금이라도 잘해 드릴 것을, 왠지 거실에 퍼지는 향냄새가 씁쓸하다.


“그 여자가 새벽에 이혼한다고 우리 엄마한테 전화한 거 아냐?”


작은형도 형수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그 여자라고 부른다. 우리 집안이 좀 착하다. 다른 집안이면 그년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언제? 아무리 그래도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이혼한다는 며느리가 어딨어? 그것도 새벽에.”


“주아 낳기 전이었지.”


“애초부터 사이가 안 좋았네. 두 사람은 어떻게 결혼한 거야? 큰형 결혼식 때 나 군대에서 청원 휴가로 나왔잖아. 휴가 내내 벙글벙글 사진관에서 일했어. 당시에 집안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겠더라.”


작은형이 뭔가 말할 듯하다가 멈춘다. 형수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번에는 벽에 걸린 어머니 영정 사진을 돌아본다.


“거의 사기였지.”


당신이 군대에 있는 동안 집안에서 벌어진 사연을 이제야 듣는다.


큰형은 친구의 소개로 그 여자를 만난다. 푹 빠진다. 놓치기 싫다. 얼른 결혼식을 올리려고 한다.


어머니가 반대한다. 돈을 좀 모으고 나서 결혼하자고 설득한다. 당신을 빼고 가족마다 돈을 버는 시기라 집 통장이 차오르고 있다.


큰형은 듣지 않는다. 고집을 부린다.


“내 결혼을 내가 하겠다고 하는데 왜 반대야.”


장남이다. 할 수 없이 사진관 2층 집을 내주고 부모님은 전세방 2칸으로 물러난다. 당신이 제대하고 작은형과 같이 지낸 곳이다.


기가 막히게도 큰형은 어머니가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라는 거짓말로 그 여자에게 자존심을 세운다.


자신의 학벌도 속인다. 월수입도 속인다. 사진관이 월세인데 전세라고 속인다. 그 월세는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도 한동안 어머니가 내준다.


결혼하고 전부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여자가 우리 집안을 어떻게 바라봤을지 짐작이 간다.


서로 속고 속이면서 결혼하는 거라고 하지 않던가, 어쨌거나 둘이 잘 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진관이 하향으로 접어들면서 수익이 줄어들자 더 어그러진다.


그 여자는 자기 정도의 외모면 더 좋은 남자를 만나 편하게 살았으리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혹시 그 여자에게 큰형의 학벌 보고 혹은 재산 보고 결혼을 했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을 했을지 의문이다.


원래 좋지 않던 둘 사이는 주아가 생기면서 좀 나아지다가 결국 파국에 이른 것이다.


당신은 허탈해진다. 아무리 끼리끼리 만난다고 하지만 애초부터 이루어지면 안 되는 결혼이었다.


현관에서 발소리가 난다. 문을 열어 뒀기에 도어록 번호를 누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큰형이다.


“재호 왔구나. 제수씨 안녕하세요. 벌써 제사상 준비 다 했네. 얼른 옷만 갈아입고 나올게.”


“근호가 고생이지. 어머니 아버지 끝까지 모시고 이제 형이랑 조카까지 데리고 살잖아.”


작은형의 인사에는 가시가 있다.


아마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면 큰형에게 무리를 해서라도 분가하라고 요구할 것 같다.


당신이 작은형에게 밝히지 않은 게 있다.


어머니가 파킨슨병에 걸렸을 때 그 증상으로 한밤중에 비명을 지르며 깼다. 때문에 건넌방에서 자던 당신이 매번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달려갔다.


지금 그런 증상에 큰형에게 일어난다. 어머니와 똑같이 한밤중에 자다가 비명을 지르며 깬다. 주아는 어쩔 줄 모르고, 나는 식은땀에 젖은 큰형을 다독거린다.


파킨슨은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지속되면 치매로 번진다.


장남이니까 어머니의 유전자를 더 많이 물려받았을 것이다.


큰형은 매일 저녁 반주로 막걸리 1병을 꼭 비운다. 그것도 파킨슨병이 번지는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주아가 직장 생활을 하며 자기 아빠를 잘 돌볼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당신은 큰형의 병시중까지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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