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시간에 전화한 큰형은 밑도 끝도 없이 300만 원만 꿔 달라고 부탁한다.
“주아가 사고 쳤어. 자세한 내용은 집에서 알려 줄게.”
당신은 인터넷 뱅킹으로 송금한 뒤 저녁에 만난 큰형에게 농담을 건다.
“주아가 마음에 안 드는 남자라도 팼어? 합의금 필요한 거야?”
큰형은 휴대폰 꺼내 사진을 보여준다. 도표가 그려져 있다.
무슨 캐피털 600만 원. 무슨 신용대출 700만 원. 무슨무슨론 850만 원…….
대충 훑어봐도 대출금 총액은 5천만 원이 넘는다. 하단에 주아의 이름이 적혀 있다.
당신은 그 도표를 아무리 바라봐도 납득할 수 없다. 혹시 이게 그 동안 주아가 진 빚이란 말인가?
“얘가 지 엄마 닮아서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못 참아. 어떻게든 사야 해. 친구한테도 잘 쏘고. 몇년 동안 조금씩 빼 쓰다가 액수가 커지니까 자기도 겁이 나서 이제야 나한테 털어놓은 거지.”
그게 5천만 원이 넘는다고? 승용차를 산 것도 아닌데?
당신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언젠가 당신이 주아에게 노트북을 사줬다. 그게 200만 원이다.
주아는 새것을 샀다고 하면 엄마한테 뺏긴다고 했다. 주문계약서를 당신 앞으로 돌렸다.
당시 주아가 수천만 원 대출을 받고 있던 거 아닌가.
그런데 나한테 노트북을 사달라고?
도대체 얘 뭐야?
당신은 소름이 끼쳐 연신 팔을 문지른다. 그때 주아와 지금의 주아가 같은 사람인지 의혹이 일어난다.
“주아 어디 있어? 퇴근했을 거 아냐.”
당신은 주아의 어깨를 흔들면서 추궁이라도 하고 싶다.
매일 집으로 택배가 온다. 무엇을 사는지 모르지만 주아의 서랍장은 가득 찼다. 불안하다. 이러다가 이 집에 사채업자라도 들어오는 건 아닌가.
“지 엄마한테 갔어. 내일 토요일이라 오늘 저녁에 안 들어온대.”
딱 봐도 도망친 거구만.
주아는 큰형과 그 여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지 모른다.
그 여자는 반지하 월세방에서 살고 있다. 학교 청소부로 입에 풀칠하고, 간이 많이 안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주아는 지 엄마가 보고 싶으면 하루 자고 온다.
매달 생활비로 70만 원씩 꼬박 바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여자가 찾아오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고 한다. 이제 이 말도 신뢰할 수 없다.
70만 원씩 다른 곳으로 빼돌리고 있는지 어떻게 아는가.
“주아, 걔 정신이 있는 얘야?
당신은 어떤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분노해야 하는지. 헛웃음을 터뜨려야 하는지.
“놔 눠. 더 건드리면 엇나갈 수 있어. 지가 책임을 진다고 하니까 두고 봐야지.”
“그게 말이 돼?”
“하여간 지금은 그냥 둬. 뭐라고 했다가 삐딱하게 나가면 더 힘들어.”
이혼할 때 가방만 들고 나왔다는 큰형은 어디에서 돈이 나왔는지 이 빚을 다 청산한다. 주아가 매달 조금씩 갚기로 합의를 봤다.
당신은 주아와 서서히 거리를 두게 된다.
다른 계기가 더 있는데, 삼촌과 조카가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면 큰형은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비친다. 질투심이 일어나는 건지.
주아가 밥을 먹으면 당신은 방 안에서 유튜브를 보고, 주아가 설거지를 마치면 그제야 식탁에 앉는다.
하긴 아침에 일어나 서로 출근하기에 바쁘고, 야근에 출장까지, 특히 당신은 박물관에서 근무하느라 주말에 출근하기에 집에서 마주칠 시간이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