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몰랐던 일이었다.
2025년 9월 23일 혹은 24일. 이렇게 이틀 중에 하나는 휴거가 일어날 예정이었다.
또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휴거일은 반복되고 있다.
세계적인 사건이 일어날 깨마다 불거져 나왔다.
오마바가 재선 되었을 때. 중동에서 가자 지구가 세워졌을 때. 심지어 아베 총리가 암살되었을 때.
솔직히 이 정도면 한번 정도는 제대로 일어나 주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생긴다.
누가 이런 얘기를 해주냐면, 예전에 같이 교회를 다니던 성도다.
용산에서 컴퓨터 수리점 1인 기업 사장이다. 나이가 동갑이라 용산 친구라고 부른다. 내 노트북이 고장 나면 찾아간다.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방문할 때마다 잘 대해 준다.
내가 새로운 노트북을 구입할 때에도, 용산 상가를 같이 돌면서 제법 좋은 중고 노트북을 구입해 주었다.
휴거에 관한 계시는 무슨 희한한 선교회를 통해 인터넷으로 듣는데, 교주가 할머니라고 한다.
자기들의 결속이 있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두어달 간격으로 경기도 어디 펜션에서 모여 집회를 연다. 거기까지만 언급하고 선을 그었다.
어떻게 그런 단체에 넘어갔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휴거를 믿으면 데리고 간다고 했는데, 노트북 수리 비용만 치르고 얼른 나왔다.
문제는 그 휴거가 자꾸 연장이 된다는 점이다.
혹시 돈이라도 맡기지 않았느냐고 슬쩍 물은 적이 있는데, 전혀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금품 요구 같은 건 없는가 보다 안도하고 있다.
1992년 10월 28일.
대한민국에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난다.
다미 선교회의 이장림 목사가 이 날을 휴거일로 지정했다.
기독교인은 자정에 천국으로 가고, 이후에 남은 인간은 7년 대환란을 겪을 거라고 했다.
아직도 생생한 기억은 전철역에서 전도하는 광신도였다.
들고 다니는 피켓에 붉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10월 28일. 예수 재림. 불신 지옥.
그들은 많은 행인 속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다.
“곧 휴거가 일어납니다. 믿는 자는 이 날 천국으로 하고, 불신자는 남아서 환란을 당하다가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당시 나도 기독교인이었지만, 저건 아니다 싶었다.
반면 그런 휴거설을 믿는 신도는 난리가 터졌다.
직장인은 사표를 내고, 학생은 학교에 결석하고, 심지어 휴가를 나간 군인이 복귀하지 않고 다미 선교회로 들어갔다.
재산을 팔아 사회에 환원하고, 입던 옷까지 태웠으면, 심지어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정작 당일에는 휴거가 일어나지 않았다.
다미 선교회에서 흰옷을 입고 광적으로 기도하던 신자들은 맥이 빠졌다.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던 목사를 구타까지 했다.
어이없게도 이장림 목사의 집에서 숨겨 놓은 3억 어음이 나왔다.
만기일은 1993년 5월 22일이었다. 휴거 지난 뒤 8개월 뒤에 받을 수 있었다.
경찰 수사를 통해 그 동안 이장림 목사가 사기 친 금액이 34억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기죄로 구속되었다가 1993년에 출소하고, 이름을 ‘이답게’로 개명한 뒤 무슨 선교회를 통해 다시 종말론을 주장하고 있다.
휴거의 대중화 원인은 어니스트 W. 앵글리라는 미국인 개신교 목사의 <휴거>라는 소설책이다.
어린 시절에 교회에서 고등학생 형이 읽어주는 내용을 들었는데, 아직도 짐승에게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는 구절이 생생하다. 그 시기에 얼마나 두려워하면서 들었는지…….
그것을 이장림 목사의 저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로 뻥튀기가 되고, 1992년 휴거 열풍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휴거에 관련된 성경 구절이 없지는 않다.
대부분 신약 성경의 이 구절을 내미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된다는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17절)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린도전서 15장 51절 ~ 52절)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무슨 징조를 따라 휴거의 날자를 알 수 있다고는 하는데…….
한때 용산 친구는 미국 대통령으로 오바마가 즉위하자 적그리스도의 등장이라고 하면서 곧 휴거가 일어날 거라고 했다.
역시 불발로 끝났지만, 아직도 휴거를 기다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다.
초기 기독교에는 휴거의 개념이 없었다.
위의 성경 구절은 초창기 기독교인을 격려하기 위한 사도 바울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휴거의 개념이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영국 청교도 운동과 19세기 초 미국 밀러주의 운동이다.
청교도 운동은 가톨릭에 반대하여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으로 건너간 윌리엄 밀러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연구해서 1844년 10월 22일에 최초 휴거를 주장했지만, 불발이었다.
이런 사건을 돌아보면서 유추할 수 있는 게,
하나는 유럽이나 아프리카 동남아 남아메리카에는 휴거에 대한 사건이 없었다. 한마디로 미국과 우리나라에만 일어나는 사회 현상이라는 거고.
둘째는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채울 수 없는 희망 고문과 같은 것?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고위직이나 재벌이 아무리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휴거가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을까?
용산 친구는 일종에 ‘로또’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일 지하상가로 출근해야 하는 이 지긋지긋한 현실.
탈출구는 없다.
누군가 그를 살짝 꺼내다가 행복한 세상으로 갖다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의 씁쓸한 과거를 하나 알고 있다.
‘SMK’라고 다단계 회사에 빠졌다.
당시에 꽤 많은 돈을 날린 것으로 알고 있다.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데리고 갔고, 강의를 듣게 했다.
말쑥한 양복을 입은 강사가 나와 칠판에 도표를 그리면서 호기롭게 외쳤다.
한 달에 3명씩 판매원을 만들라고. 피라미드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대로 6개월만 하면 나중에 4천만원을 벌 수 있어요.”
돌아보니 푸릇푸릇한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이 눈빛을 반짝거리며 듣고 있었다.
대한민국 사람들 유독 정에 약하고 거절할 줄 모른다.
그 선의가 약점이 된다.
강의가 끝난 뒤 다들 기숙사로 들어가는데 나는 온갖 이유를 대면서 중간에 빠져나왔다.
당시 나를 끝까지 붙잡으려다가 실망한 표정을 짓던 용산 친구가 짜증 나고 한심하기까지 했다.
딱 보기만 해도, 허황된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도대체 홀라당 넘어가는 이유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