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회

by 은빛바다

처음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첫봄이 되었을 때 회사 야유회를 떠났다.

1박 2일, 서해안의 어느 섬이었다.

가장 졸병이라 출발부터 도착까지 정신없이 뒤치다꺼리에 바빴던 것으로 기억한다.

민박에서 직원들은 술에 취해 잠들었고, 역시 술을 마신 나는 혼자 비틀거리며 시골길을 걸어갔다.

섬에 도착할 때부터 거슬린 게 있었다.

승합차를 타고 민박집에 이르기 전에, 언덕 아래에 폐교회가 눈에 띄었다.

붉은 벽돌로 아담하게 지었지만, 현관문이 떨어지고, 주변 잡풀이 무릎까지 올라왔고, 지붕의 십자가조차 어디론가 사라진.




술기운 덕분이었을 것이다.

한밤중에 랜턴만 의지해서 그곳까지 걸어간 배짱이.

교회는 엉망이었다.

아무리 전등 스위치를 눌러도 예배당은 밝아지지 않았다.

장의자나 강대상 같은 집기는 전부 치워진 상태였다.

벽은 칠이 벗겨지고, 아이들이 장난으로 온갖 낙서가 가득했다.

아치형 창문만 예전에 이 건물이 교회였다고 알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대부분 깨져서 휑한 바람이 거침없이 들어왔다.

도저히 하나님이 계실 만한 곳이라고 할 수 없었다.




안타까웠다.

한때 이곳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설교를 외쳤을 것이다.

아멘! 하고 성도들이 호응하는 소리가 하늘까지 울렸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기독교인 비율이 20%…….

1990년대에는 25%였다.

국민의 4분의 1일 기독교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떠들었던 기억이 있다.

점점 신도가 줄고 있다.

이제는 전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28장 19절~20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이 무색할 정도다.

하긴 대한민국에 살면서 복음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다시 나간 자도 많을 것이고.

이제 해외 선교로 눈을 돌리거나 문화적인 방법으로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반면 교회가 힘이 커지니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도 영향을 미친다.

특정 정치 후보를 지지하거나, 교회의 주도로 사회적 캠페인을 벌여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일부 정치인은 대형교회에게 지원받는 경우도 있다, 고 한다.




이렇게 변하는 기독교의 가치관에서 나는 적응할 수 있었을까?




“종교가 정치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제정일치가 되면 큰일 나는 거야.”

학창 시절에 존경하던 교수님의 말씀이다.

하지만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제헌국회 첫 회의에서 “우리가 사람의 힘만으로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발언했으니…….

결국 애초부터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아니었던가 싶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회사 선임에게 호구 조사를 거쳐야 했다.

“무슨 과 나왔어?”

묻는 질문에, 나지막하게 ‘신학…….’ 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확 달라진다.

“목사 되려고 그랬어? 그런데 왜 이곳에 들어왔어?”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왜 신학을 선택했을까?




착하게 살기는 했다.

욕하지도 않고, 싸움하지도 않고, 뒤에서 남을 비방하지도 않고.

중학교 시절에는 청소를 마치면 항상 쓰레기통을 내가 비웠다.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기에, 기독교인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내고 싶어서.

덕분에 아무도 없는 교실로 돌아가 쓸쓸하게 가방을 들고 가장 늦게 나온 적이 많았다.

교실에서 사고가 터지면 담임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범인이 누구인지 솔직하게 말하라고, 너는 기독교인이니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걸 안다. 하나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진실을 요구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눈빛 사이에서 나는 엄청난 갈등을 겪어야 했다.




그 시절부터 ‘저 자식은 목사감’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돌아보면, 그게 착하게 산 것인지.

아니면 의무감과 강박관념에 의해 나온 행동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또한 목사가 되었으면, 지금보다 의미있게 살았으리라 확신도 서지 않는다.




가끔 의혹이 생긴다.

과연 하나님은, 내가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기를 원하셨을까?

나를 통하여 이 세상에서 무언가 이루려고 하신 게 있었을까?

정말로 그렇다면 중간에 방향을 꺾은 나는 잘못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때, 술에 취한 나는 폐교회에서 무릎을 꿇었다.

창밖에서 비추는 둥근 달이 너무 이뻤다.

그곳도 폐교회지만, 교회였으니까.

교회에 가면 늘 하던 행동이 있었으니까.

다만 내가 술을 마신 게 너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마치 폐교회는 하나님의 섭리가 어긋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이렇게 망가지려면 차라리 짓지를 말지.

내 인생의 단면을 만난 것 같아 막막했다.

어쩌면 내가 이 교회의 목사로 부임받을 수 있었다.

일요일마다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어노는.




나는 게으르지 않게 살았고, 교회는 점점 문을 닫고 있다.

정치적인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반면 아이들이 찬송가를 부르는 소리는 서서히 작아지고 있다.




일어설 수 없었다.

교회 현관에서 한참 동안 무릎을 꿇고 고개만 숙였다.

너무 취했나?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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