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봉사활동을 나간다.
친목 카페에서 누군가 공지를 올렸다.
00월 00일 (토) 09:00~13:00. 노인 무료 급식 자원봉사. 장소 : 어디어디
마지막에 덧붙였다.
‘나누는 사랑은 우리의 행복입니다.’
당일, 앞치마를 두른 채 반나절 동안 시달린다.
배식이야 식판에 밥이랑 반찬 담아주는 거니까 어려움이 없다.
간혹 공짜밥을 얻어먹는 게 자존심이 상한 듯 거칠게 대하는 할아버지가 있다.
왜 밥을 빨리 안 주냐는 짜증에,
나 밥 먹는데 먼저 먹은 노인 식기 치우지 말라는 불평에,
심지어는 바닥을 끌고 다니는 내 발소리가 거슬린다고 시비까지 건다.
그래도 설거지에 청소에 골목에서 담배꽁초까지 줍고, 회비 10,000원을 내고, 자원봉사자들과 가벼운 뒤풀이를 마친 뒤 돌아오는 길이 뿌듯하다.
2003년.
미국 미시간 대학 연구팀은 423쌍의 장수 부부를 관찰했다.
5년 동안 이 부부들이 오래 사는 이유를 연구했는데, 그 결과 봉사 활동으로 나타났다.
이것을 테레사 효과라고 하는데, 남을 돕는 행동을 하거나 혹은 그런 행동을 보기만 해도 자신의 면역 물질(lg A)이 향상된다.
기독교인의 봉사는 의무감이 강하다.
지금 어울리는 자원봉사 모임 회원 중 60%가 기독교인이다. (주관적인 조사일 뿐이다.)
가장 큰 계명이, 마태복음 22장 37절~39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으니까.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착하게 살면, 잘 사는 거 아니다.
오히려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 내에서 저 인간은 나를 호구로 보는데, 나는 인내하면서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그러니까.
그게 이 세상에서 겪어야 하는 시련이고, 나중에 그에 대한 보상을 받으리라 믿는다.
설령 보상이 없더라도 상관없다.
복 받으려고 베푸는 선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가가 없어도 이 세상에 작은 도움이 되면 희생은 할 수 있다.
양심의 울림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내 선한 행동으로 스스로 만족한다.
반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트라시마코프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법은 권력자가 만드는 것이고,
권력자는 도덕이나 규율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든다.
결국 시민이 착하게 사는 건 자신이 아니라 권력자에게 이득을 주는 일이다.
이에 목동의 비유로 설명한다.
목동이 양을 돌보는 이유는, 양이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양털을 얻기 위해서다.
그래서 양이 착하게 사는 건 목동이 관리하기에 좋은 성품이다.
덧붙이면, 양도 갈 곳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권력자에게 붙어 있는 것이다.
함부로 무리에서 이탈했다가 늑대를 만나거나 다른 무리에 적용하기 힘드니까.
양도 그것을 안다.
다르게 말하면, 양은 도덕으로 위장한 노예다.
이건 교회에도 적용된다.
성도가 갈등이 많은 교회를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삿날 만난 누나에게 봉사 활동에 대한 얘기를 했더니, 대번 얼굴이 굳어버린다.
“왜 그런 일을 하니? 네 시간과 돈까지 쓰면서? 노인한테 구박까지 받으면서?”
누나는 결혼하기 전까지는 YWCA에서 활동한 경력도 있는데, 조카들을 키우면서 많이 삭막해졌다.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야.”
“그게 좋기는 해도……. 그게 무조건 옳은 건 아니야…….”
누나는 말끝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내가 힘들게 번 돈으로 왜 모르는 그런 사람들을 도와줘?”
괜한 말다툼을 벌이기는 싫었다. 나는 아주 간단한 논리를 댔다.
“사람은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하는 거 아냐?”
“휴우~~~~. 그게 참 옳으면서 쉬운 말이야. 하지만 인간이 전쟁을 왜 하는 거 같니? 왜 지배와 피지배로 나뉘는 것 같아? 도우면서 살면 이런 게 없어질 것 같아?”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지.”
“아니야, 받는 쪽은 더 입만 벌려. 요즘 실업급여 받는 인간 늘어나는 것 봐. 어떻게든 해결해 주겠지 하면서 방구석에 누워 있잖아.”
“나름대로 그들도 노력하겠지.”
“순진한 생각만 하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더 이상 논쟁을 벌이기 싫어서 나이 어리고 덕망이 있는 내가 참았다.
하지만 누나는 돌아가는 순간까지도 그런 모임에 참석하는 점에 불만을 드러냈다.
“착하게 살지 말어. 너만 바보 된다. 착하게 살지 않는 게 삐딱하게 산다는 의미가 아니야.”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이기적으로 산다고 해서, 사회생활에 제재를 받는 건 없다.
사회 구성원이 전부 이기적으로 산다고 해서, 그 사회가 망하지 않는다.
어쩌면 더 합리적으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착한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나는 봉사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막연한 의무감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나가는 것이니까.
바보라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없다.
이렇게 생겨 먹은 것을.
또 이렇게 생겨 먹은 사람끼리 모여 기쁨을 나누는 것을.
‘나누는 사랑은 우리의 행복입니다.’ 이라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