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처럼

by 은빛바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삶, 정말 본받을 만한 일이지.

훌륭한 종교인이 그렇게 살았잖아.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 돌아가실 때 자신의 각막까지 기증하고 가셨지.

그 분의 삶을 돌아보면 절대로 따라 할 수 없어.

밤새 번역 작업으로 번 돈을 성당 학생 등록금 대주고.

쫓겨난 판자촌 사람들 명동 성당으로 받아서 발까지 씻겨 주고.

사창가로 먼저 다가가서 그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나 같은 녀석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일이야.




왜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누구는 이런 말을 하기도 하지.

먹을 거 입은 거 다 대주는 천주교 신부니까 가능하다고.

혹은 추기경이니까 다른 신도들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사는 거라고.

하지만 나에게 그런 위치가 쥐어진다고 해도 절대로 그렇게 못 살아.




학창 시절,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세뇌된 게 있어.

"만일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직도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너의 책임이다."

나의 헌신과, 나의 희생으로 세상은 점점 나아질 거라고 가르쳤지.

그러면서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라고 직책을 맡기지.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맡은 직분만큼 교회에 봉사하라는 거야.

그러면 나의 노력으로 교회는 변화가 일어나고, 그게 세상에 대한 변화인 줄 착각했던 거지.




하여간 그런 영향 때문에 나의 노력으로 세상은 변화가 될 거라고 믿었어.

단지 교회만 아니라 시회에서도 말이야.

일단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지. 갈등이 생겨도 자존심 죽이면서 먼저 고개를 숙이고.

아르바이트나 직장에서도 힘든 힘이 생기면 빼지 않고 내가 먼저 나서서 했어.

욕심부리지 않으려고 했고, 시기하지 않으려고 했지.

장애인 봉사에 참여하면서 그들을 진심으로 도우려고 했고.

그래서 내 주위가 서서히 변화되리라 믿었어.




결론은?

내 착각이었지.

자기만족은 될 수 있어도, 그런 착한 행동으로 세상에 좋은 인상은 줘도, 세상은 변하지 않아.

" 만일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직도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너의 책임이다."

이런 말은 교회가 나에게 의무감을 팍팍 지워서 부려먹기 위한 수작에 지나지 않았던 거야.

나는 소위 착한 행동을 하면서 도덕적 우위를 즐겼던 거지.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구원관에 도취됐고, 그런 문화적인 우위에도 빠졌던 거고.

‘기독인으로 살아가는 나는 일반인과 다르다.’

이 관념에서 벗어나기가 참 힘들었어.




사실 기독교가 성도를 부려 먹기는 참 좋은 구조야.

태어날 때부터 죄인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공짜로 면죄부를 주고, 그에 대한 부담을 지우면서 구원관과 윤리관으로 자신이 특별하다는 인식을 심어줘.

거기에 내세의 삶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고.

살아 열심히 희생하면, 죽어 천국에서 보상을 받는다고 하잖아.

하여간 인간을 참 다루기 쉽게 만든 구조야.




비슷한 경우가 있었어.

내가 스무살 후반이었을 거야.

연립주택으로 이사 갔는데, 앞집 아주머니도 교회를 다니고 있었어.

그녀가 전도하려 왔다가 같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반가웠지.

같은 종교라는 사실만으로 통하게 돼. 반찬도 나눠 먹고. 서로 어려운 일이 생기면 허물없이 도와주고 그래.




어느 날, 놀러 온 아주머니가 심각하게 털어놓는 거야.

그 집 중학생 아들이 한겨울에 외투를 안 입고 집으로 돌아왔대.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물어보니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에 노숙자가 있어서 벗어 줬대.

이걸 칭찬해야 하는지, 야단을 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아빠가 알면 난리가 날 사건이라 말도 못 꺼내고 있었대.

봉사도 좋고 희생도 좋지만 아들이 무능하게 클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더라구.

나도 한동안 고민하게 되더라.

애가 성격이 좀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남이 불편한 것을 못 견디는 성격이었어.

호구되기 딱 좋았지.

주머니 털어서 친구 컵라면 사주고, 자기는 굶고.

학용품 빌려달라고 하면, 서슴없이 내주면서 받지 않으려고 하고.

매주 토요일마다 교회 봉사활동을 따라 독거노인의 집을 방문하는 것도 그렇고.

그래야 자기 마음이 편한 거야.

이러면서 만족을 얻더라구.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

박탈의 희열이라고 할까? 베푸는 자기만족이라고 할까?

혹시 김수환 추기경이 이런 성격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더라구.




옆집 아주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우리집으로 놀러 왔어.

나한테 얘기 좀 해보라는 의도였지.

그래도 내가 신학 공부를 했으니까 기대를 걸었던 거지.

나는 뻔한 이야기로 충고했지. 꼰대처럼.

“아버지가 벌은 월급으로 밥 먹으면서, 그 밥을 불쌍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계속 나눠주면 아빠는 뭐가 되니? 그런 선행은 나중에 네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위치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지금은 그런 위치에 오르기 위해 공부나 열심히 해.”

중학교 아들 녀석은 그냥 넘어가지 않더라고.

“어차피 저는 죽으면 천국으로 가지만, 그들은 지옥으로 떨어지잖아요. 그걸 떠올리면 불쌍해서 견딜 수 없어요.”

“그러다가 너 나중에 어떻게 살려고 그러니?”

“하나님이 책임을 져 주시겠지요.”

가관이더라.

만일 사악한 이단 종교인이라도 만났으면, 이런 성격은 뽑힐 때까지 빨아먹은 다음에 탈탈 털어서 껍데기만 남긴 채 버렸을 거야.

다행히 몇 번의 고비를 거친 뒤 중학생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어.

의외로 대학은 정치외교학과로 입학했어.

나는 사회복지학과 같은 곳으로 지원할 줄 알았는데, 아마 세상을 바꾸는 건 그런 선행이 아니라 (물론 선행도 당연하고 중요하지만) 제도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았나 추측하지.




반면, 이와 전혀 다른 경우도 있었어.

고등학교 시절에 반 친구랑 사소한 토론을 벌이는 경우가 있잖아. 그러면서 세상에 대한 자기 가치관을 서서히 정립하기도 하고.

이기적인 성향이 강했는데, 자기는 절대로 거지에게 돈을 주지 않는대.

“그런 동정심이 그 사람을 도와주는 게 아니야. 계속 손을 벌리게 되잖아.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끌려가는 거야.”

당시에는 공감하지 않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타당성이 있는 주장이기는 했어.

“그러면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야?”

“착각하지 마. 네가 그렇게 잘난 줄 알아?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고작 돈 몇푼 지어주는 게 네 양심을 덜어줄 뿐이지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거라고 여기니? 가난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나서야 해.”

단적으로 앵벌이를 언급하더라.

불쌍하다고 그 아이들에게 돈을 주면 상납으로 바치고, 그것으로 인해 돈을 벌게 되면 나쁜 놈은 계속 앵벌이를 더 만들잖아. 결국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고.




하긴 김수환 추기경님도 비슷한 고민을 하셨겠지.

그러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은 걸 보면 정말 대단한 위인이기는 해.




서울역에 노숙자들 많아.

나 31살 생일에 어떤 이벤트를 할까 고민하다가, 그들과 술을 마시기로 했어.

정말 목회의 길을 갈 것인지, 굉장히 고민하던 시기였거든.

교회에서 행동하는 내 모든 행동이 위선 같더라.

서울역 1호선 플랫폼에 내리자 떡 파는 좌판이 있더라. 일단 세 개 사고.

편의점에서 과자랑 종이컵이랑 소주도 샀어.

지상으로 올라와 그들에게 내밀자 고맙다고 엄지 손가락을 추켜올리더라.

둘러앉아서 소주잔 채워주면서 마셨어.

전부 인상이 괴물 같았어.

덥수룩하고, 냄새도 나고.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은 안 나.

가끔 이런 정신 나간 녀석이 찾아오는지, 노숙자도 자연스럽게 받아주더라.

술을 마시는데 빨리 들이켰어,

행인들이 힐긋거리면서 계단을 올라가는데, 정말 그 자리가 맨 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더라.

술을 다 비우고 일어서자 그들이 손을 흔들면서 빠이빠이 하더라.




왜 그랬을까?

축복을 받아야 하는 내 생일에 왜 그들과 술을 마신 건가.

어울리면서 마음 속에 든 죄책감 같은 걸 덜어버리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지금 돌아보면 그런 추측을 하게 돼.

아직도 이 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어쩌면 영원히…….

"만일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직도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너의 책임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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