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녕하신지요 2

by 은빛바다

하나님.




엊그제 서울역에 갔어요.

그냥요.

토요일이었고요.

날씨가 조금 추웠어요.




광장에 아주 긴 행렬이 있었어요.

4열로 100m 트랙 같은 노숙자의 줄이었지요.

바로 무료 금식하는 날이었어요.

큰 텐트가 올라가고, 간이 식탁과 의자가 놓였지요.




노숙자들은 밥 한끼 얻어먹기 위해서 한참 동안 기다리고요.




천주교에서 주관하는 행사인 것 같았어요.

곳곳에 수녀들이 서 있더라고요.

한겨울 추위에 참 고생하신다고 싶으면서도,

저렇게 희생할 수 없는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지요.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번 돈 갖고 갈 수 없잖아요.

(뭐, 내 목숨보다 귀한 자식한테 나눠주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씁쓸하게 발걸음으로 옮기는데,

서울역 개찰구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희한한 할아버지가 앉아 있더라고요.

모자, 목도리, 파카, 장갑으로 추위를 대비해서 온몸을 무장하고요.

어깨에 두른 노란색 띠에는 이런 글씨가 쓰여 있었지요.

“예수천국 불신지옥”

앞에 세운 삼각형 안내판에도 붉은색 파란색으로 자극적인 글이 쓰여 있었어요.

“인간 바코드 666시대. 오른손과 이마에 받으면 영혼 불지옥.”

카세트에서는 쉬지 않고 찬송가가 흘러나왔어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아서 날마다 기도 합니다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있게 하소서

그 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 옵니다




그런 식으로 전도하는 것 같았는데,

천국을 향한 강한 염원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왠지 노숙자에게 무료 급식하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그런 모습을 대하니 기분이 야릇하더라고요.




어쩌면 대한민국에 기독교가 정착하면서 밑도 끝도 없이 천국만 너무 강조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고요.

그 결과 희한하게도 천국에도 없을 대형교회가 곳곳에 자리를 잡았지요.




계단을 올라 개찰구에 이르자 또 희한한 광경이 있더라고요.

코레일 직원들이 시위를 벌이는 중이었어요.

탁자를 이어 사각형 공간을 만들고 플래카드를 붙였어요.

“노동자의 삶을 가로막는 구조적 폭력 ‘총 인건비 지침’ 지금 당장 폐기하라.”

“서울역 철야 농성. D+00일.”

그 안에서 이불을 깔고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더라고요.




희한한 광경에 아이들은 눈길을 주었지만,

대부분 시민은 관심을 주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갔지요.

오히려 열차 타는데 방해가 된다는 식으로 눈살을 찌푸렸어요.




저들은 집도 못 가고 저렇게 투쟁하는구나.

사실 예전에는 그들이 시위를 하면 공감이 많이 일어나서 응원을 했는데,

요즘은 지들 월급 더 받으려고 애쓰는구나 이런 생각이 먼저 들어요.




추운 겨울, 서울역 풍경이 이러네요.

제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혹은 더 중요하다 판단을 내릴 수 없지요.

자신의 삶에서 원하는 일을 하는데, 제가 나서서 말릴 수 없는 문제잖아요.

다만 하나님은 어느 쪽을 만족하실 것인가 묻고 싶더라고요.




정답도 모르면서, 기독교인은 함부로 하나님의 뜻이 이러이러하시다 하면서 ‘자기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잘 넘겨짚는 것처럼 말하더라고요.

하지만 삶에서는 그 안에 각자 어떤 문제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바라기는 이번 겨울이 지나는 동안,

얼어 죽는 노숙자가 적게 나오기를 바라고요.

희한한 할아버지의 전도도 만족스럽기를 바라고요.

시위를 벌이는 노동자도 원하는 성과를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래서 기도를 하는지도 모르고요.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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