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가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다.
이름이 토리였다.
장례를 치러주고 싶어 했다.
동행을 부탁받았다.
반려동물 장례식장이라?
생소했다.
사회생활 초년 시절이다.
회사 주차장에 귀여운 강아지를 떠돌아다녔다.
컵라면 그릇을 비워 물을 담아주고 빵 조각을 던져주자 잘 따라왔다.
불쌍하게 여긴 여직원이 사흘 동안 사무실에 키웠다.
아침에 출근하자 박스 안에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밤새 앓다가 운명을 마친 것이었다.
원래 병을 진단받은 강아지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주인이 몰래 주차장에 버린 것이고.
귀엽다는 이유로 무조건 데리고 갖고 온 여직원이 어리석었다.
그녀는 강아지 사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렀다.
부장님은 그 임무를 나에게 맡겼다.
나는 수건에 잘 싸서 화단으로 내려왔다.
삽 들고 귀퉁이를 판 다음에 강아지 사체를 눕히고 흙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그만이었다.
번거로운 일 하나를 해결했을 뿐이다.
영혼이 없으면 일반 사물과 마찬가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소시오패스는 아닌가? 의문까지 들었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도중에 여자친구는 펑펑 울었다.
운전하는 나는 불만이었다.
동물 병원에 맡기면 사체 처리를 해주는데 굳이…….
하긴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키웠던 입장에서는 그냥 보낼 수 없었겠지.
수의사가 사체 처리를 잘 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전에 사무실에서 지내던 과장님의 증언에 의하면,
키우던 강아지가 갑자기 움직이지 않았다.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사망 선고를 내렸다. 심장마비였던가?
사체 처리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 막내딸이 난리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봐야 한다고.
어쩔 수 없이 늦은 밤에 동물 병원을 다시 찾았다.
수의사에게 강아지 사체를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난처한 수의사가 팔을 뻗어서 강아지 사체를 꺼낸 곳은,
쓰레기통이었다.
수의사는 이렇게 처리해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변명을 덧붙였다.
죽은 반려동물은 일반 사물과 똑같은 취급을 받았다.
문밖에서 안을 살피던 막내딸은 충격을 먹었다.
가장 사랑하는 강아지가 혓바닥을 내민 채 쓰레기통에서 올라오고 있으니.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외외였다.
반려동물 장례식장은 깔끔했다.
직원들은 친절하고 근엄했다.
봉안당이 있고, 수목장이 있었다.
찬송가가 흘러나오고,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외우는 소리도 났다.
사람이 죽어도 이렇게 대우를 못 받겠다,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화장이 끝나자 작은 병에 유골을 담아주었다.
한동안 여자친구의 방에 두었다가 이곳으로 돌아와 수목장을 할 예정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여자친구는 그 작은 병을 가슴에 꼭 품고 있었다.
슬쩍 돌아보면서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토리는 반드시 천국에 갔을 거라고.
짐승은 영혼이 없다.
그런데 인간과 어울리고 장례까지 치르는 광경을 보니, 있을 것 같기도 하는 생각이 든다.
만일 반려동물에게 영혼이 있으면, 하수구를 드나드는 쥐새끼도 영혼이 있다는 말이 된다.
같은 짐승이니까.
더 나아가 한여름에 내 피를 빨아먹는 모기도 영혼이 있다는 말이 된다.
손바닥으로 쳐서 함부로 잡을 수 없다.
더 나아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도 영혼이 있다는 말이 되는가?
너무 억지인가?
1800년대 후반, 동물원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먼 타국으로 나가지 않아도 그 나라의 짐승을 볼 수 있는 전시장이 매력적이었다.
동물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의 칼 하겐베크는 동물원과 서커스에 짐승을 공급했다.
그가 성공적으로 전시한 동물이 있는데, 바로 사람이었다.
인디언, 에스키모, 아프리카 등 원주민을 데려다가 동물원 구석에 숙소를 만들어줬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관람객은 열광했다.
근대에 이르러 인간 동물원(Human Zoo)은 유럽에서 꽤 있었다.
백인 우월주의를 드러내며 야만에 대한 경멸을 담고 있었다.
한마디로 이방인을 짐승 취급을 한 것이다.
어쩌면 내가 예전에 화단에 묻어버린 강아지처럼 대한 건 아닐까.
이들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으면 이런 취급을 할 수 있을까?
사람처럼 대우해 주는 동물, 동물처럼 취급당하는 사람.
죽은 고양이를 위해 흘렸던 눈물을 가진 자가,
어찌 같은 인간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단 말인가.
아직도 나는 반려동물보다 더 무시 당하고 비참하게 당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
기아로 허덕이는 자들.
전쟁터에서 소리없는 죽는.
만일 그들이 죽은 뒤 고귀한 영혼이 남는 걸 믿으면 그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