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반변성 1.
“엊그제 당뇨약 타러 김석진 내과에 갔어. 의사가 가만히 보더니 내 눈이 좀 이상하대. 빨리 아무 안과에 가보더라고 하더라. 이따가 나 혼자 다녀올게.”
당신이 쉬는 날이다. 아버지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양아치가 껌을 씹는 말투다.
어머니의 파킨슨병을 처음으로 알려준 그 김석진 의사다. 당신이 사는 동네에서 20년 넘게 내과를 운영하고 있다.
대형 병원으로 환자 몰아주려고 노인만 골라서 소견서를 써주는 거 아니냐고, 그때 당신은 병원에서 그 의사에게 거칠게 욕하면서 대들었다. 어머니가 파킨슨병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으니까.
언젠가 아버지가 감기에 걸려 그 병원에 같이 들릴 때 당신은 제대로 사과도 못하고 허리만 깊게 숙인다.
김석진 의사도 당신을 알아본다. 피식 웃으면서 다른 말 없이 아버지와 상담하고 처방전만 내준다. 당신은 진료실에서 나오며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이제 또 시작이구나, 잘 견뎌야 한다.’
당신은 이런 다짐을 한다. 괜히 김진석 의사가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제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머니를 10년 동안 간호했던 것처럼, 아버지 역시 그런 시기가 왔다. 아버지도 그 말을 듣고 이틀 동안 혼자 고민하면서 당신이 쉬는 날을 기다렸다가 알린 것이다.
“나 혼자 병원에 다녀오도록 할 게. 혼자 갈 수 있어.”
체면을 차리려는 아버지의 허세에 당신은 맥이 풀린다.
쉬는 날 자식을 데리고 가야 하기에 미안한 기분은 잘 알지만, 요 앞 동네 마트도 혼자 제대로 못 가는 양반이 무슨 망언인가 싶다.
당신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는다. 김석진 의사가 그렇게 말했으면 사소한 병은 아니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 아버지는 일을 벌여 놓았으면서도 미적거린다.
“뭐하러 옷을 입나? 나 혼자 다녀와도 된다니까.”
“밑에 차 댈 테니까 당장 나오세요.”
당신이 목소리가 곱게 나올 리가 없다.
아버지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니 오른쪽 눈에 하얀 습자지를 덮은 것처럼 희미하다. 이제까지 저걸 왜 몰랐을까?
“혹시 오른쪽 눈은 잘 보여요?”
아버지가 손바닥을 들어 왼쪽 눈을 가린다.
“이러면 이상하게 흐릿하게 꺾여서 보이고.”
손바닥을 왼쪽 눈에서 뗀다.
“이러면 잘 보이고 그래.”
이제까지 왼쪽 눈으로만 바라보면서 지냈던 것이다.
동네 안과로 승용차를 몰고 간다. 아버지의 눈을 검사한 의사는 소견서를 써준다.
“빨리 대학병원에서 진찰을 받으세요.”
무조건 대형병원으로 간다고 해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예약을 잡아야 한다.
당신은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근 10년 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서 안다. 사기를 치는 병원은 골라낸다.
어느 병원은 환자에게 없는 병을 만들어서 진료하고, 어느 병원은 다음 날이 토요일이라 회진도 없는데 무조건 입원을 하라고 요구하고, 어느 병원은 제약회사에서 납품한 약을 처분하기 위해 억지로 환자에게 많은 양을 투여한다.
생명 존중? 돈 앞에서는 개소리로 여기는 병원이 많다.
대형병원의 안과에 예약한다. 그날에 맞춰 박물관에 휴무를 신청한다. 박물관은 토, 일요일에 출근하는 대신 평일 휴무는 자유로운 편이다.
그 동안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서 손바닥으로 왼쪽 눈을 가렸다가 떼기를 반복한다.
카톡으로 형들에게 아버지의 상태를 올린다. 작은형은 고생이 많다, 미안하다는 답신이 온다.
저녁에 집으로 온 큰형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주아의 냉장고에 넣을 계란 조림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