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킨 가족 (5)

황반변성 2.

by 은빛바다

병원은 안과 환자가 가장 많다. 시력검사 안압검사 등 반나절 이상 검사를 받으며 대기해야 한다. 대기실에 앉을 자리가 없어서 보호자는 벽에 기대거나 환자 옆에 선 채 순서를 기다린다.


아버지는 오른쪽 눈이 황반변성이다. 사물이 일그러지고 어둡게 보이는데, 양쪽 눈을 사용하니 이제까지 왼쪽 눈만 의지해서 봤기에 의식을 못한 것이다.


실명은 아니지만 오른쪽 눈으로는 일상 생활을 할 수 없다. 회복 가능성도 없다. 더불어 의사는 양쪽 눈 번갈아가며 백내장 수술을 제안한다. 수술 날자를 잡는다.


황반변성 진단을 받은 오른쪽 눈부터 더 나빠지지 않도록 백내장 수술을 받는다. 안대를 차고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아버지는 왼쪽 눈으로만 바라보며 다닌다.


그런데 왼쪽 눈에 수술 받고 안대를 차자 아버지는 장님이 된다.


수술이 끝났는데 앞이 보이지 없으니 아버지는 무조건 아들을 불러 달라고 소리친다.


간호사가 황급히 나와 당신을 잡아당긴다. 또 시작이구나, 그 성질이 어디로 갈까, 잘 견뎌야 한다. 당신은 회복실로 들어가면서 또 이런 다짐을 한다.


침대에 누운 아버지를 진정시키며 일으킨다. 아버지는 오른쪽 눈을 껌뻑거리지만 사물은 어둡고 흐릿하게만 보일 것이다.


신발을 신기고, 발을 내려 바닥에 딛도록 한다. 당신이 아버지의 양팔을 잡고 뒷걸음질하며 천천히 당긴다. 아버지는 엉거주춤 발을 끌면서 걷는다.


회복실에서 나와 아버지를 의자에 앉힌다. 뒤 따라 나온 간호사가 절대로 2시간 동안 안대를 풀지 말라고 당부한다.


집까지 어떻게 가는지 문제다. 아버지가 의자에 앉아서 2시간 동안 기다리는 건 무리다. 허리가 아파서 견딜 수 없다. 휠체어를 빌려와 아버지를 태운다.


“여기에 팔걸이가 있으니 잡고 허리를 돌려 앉으세요.”


사소한 요청에도 예민해진 아버지는 신경질을 낸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내 팔에서 네 손 놔. 그걸 놔야 내가 움직이지.”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 주차 타워로 간다.


승용차 뒷좌석으로 옮겨 앉는 동안에서 아버지는 여전히 짜증을 낸다.


휠체어를 돌려주고 오는 동안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역시 짜증을 낸다.


아버지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움직이려니 초조하고 불안한 것이다.


1763908013049.png


아파트에 도착해서 11층 집까지 가는 동안 당신은 아버지의 양팔을 잡고 뒷걸음질 치면서 인도한다.


“앞에 얕은 계단 있어요. 한칸. 걸리면 안 돼요. 이제 구르마 끌고 가는 오르막이에요. 천천히 올라오세요. 현관 안으로 들어가요. 승강기 앞이에요. 승강기 문 열렸어요. 들어갑니다. 11층에 도착했어요. 잠깐만요, 현관문 열게요. 다 왔어요. 신발 벗으시고요. 난간 있는 거 아시죠? 조금씩 들어오세요. 오른쪽으로 팔 내려보세요. 소파 잡히죠? 앉을 수 있죠?”


당신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행여 아버지가 발 잘못 디뎌서 넘어지면 어떻게 할까 바싹 긴장한다.


물을 나눠 마시고, 당신은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서 앉는다. 가방을 풀고 약국에서 받은 아버지 약을 정리한다.


아버지는 소파에서 한숨 주무실 것이다. 당신도 책상에서 깜빡 졸은 것 같다. 백내장 수술은 아침 일찍 시작한다. 그만큼 안과 환자가 많다. 때문에 당신은 제대로 잠을 못 잤다.


거실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당신은 정신을 차린다. TV 채널이 바뀌고 있다. 아버지는 눈 수술 때문에 TV를 볼 수 없을 텐데……?


당신은 방에서 나와 경악한다.


아버지가 안대를 젖힌 채 동물의 왕국을 시청하고 있다. 집에 도착한 지 불과 10분도 안 돼서.


“지금 뭐 하세요?”


당신의 등장에 아버지가 황급히 안대를 닫는다. TV도 끈다.


“방금 틀었어. 얼마 보지도 않았어.”


“간호사가 백내장 수술하고 2시간 있다가 안대 풀라고 했잖아요.”


“얼마 보지도 않았다니까.”


맙소사, 그 개고생을 하면서 아버지의 짜증을 다 받아주면 집까지 왔는데.


당신은 이마를 방문에 부딪친다.


쾅! 한번 더, 쾅!


당신이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집 대문을 정수리로 받았다. 빗물에 젖은 피가 흘렀다.


더 세게 쾅! 쾅!


“아이고야, 너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니?”


더 열 받는다. 쾅! 쾅! 쾅! 이제 죽든 말든 난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당신의 속이 뒤집어진 날이 한두 번 아니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17화엉킨 가족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