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덜머리
쉬는 날에 안방을 청소한다. 이불을 베란다에 널고 진공청소기를 돌리다 보면 전기장판에 누런 게 묻어 있다.
처음에는 커피 자국으로 여겼는데 흐린 모양새가 그게 아니다. 누런 자국을 선풍기 버튼에도 화장대에서도 발견한다. 아버지는 자다가 자신도 모르게 설사를 하는 것 같다.
혹시 변을 지렸냐고 묻자 아버지는 아니라고 완강하게 부인한다.
결국 팬티로 돌돌 말은 덩어리를 쓰레기통에서 찾아낸다.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모르니 무조건 쓰레기통에 버리고 시침을 뚝 떼는 것이다.
이불을 걷어 세세하게 살핀다. 역시 누런 자국이 있다. 욕조에 물을 담아 세제를 뿌리고 발로 밟아서 이불을 세탁한다. 탈수해서 말린다.
아버지는 이 과정을 우울하게 외면한다. 부끄러운 것이다. 여름철 이불이라 마르는 시간이 빠르다. 저녁에는 덮고 잘 수 있다.
다음 날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니 구린내가 심하다. 이불을 들추니 또 지렸다.
팬티는 쓰레기통에 보이지 않는다. 당신이 뭔가 묻기 전에 아버지는 무조건 아니라고 한다. 혹시 증거를 없애기 위해 팬티를 창밖으로 던졌는지도 모른다.
화단에 떨어졌으면 다행이다. 아파트 주민 얼굴이라도 맞았으면 개망신은 나중이다. 보상을 해줘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제 세탁한 이불을 다시 욕조에 담근다. 다시 세제를 뿌리고 다시 발로 밟는다. 그러면서 당신과 아버지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다.
아버지는 식사 도중에 국을 남으면 그대로 냄비에 넣는다. 더운 여름에 냄비 안에 있던 국도 같이 쉰다. 냄비를 끓여 놓으라고 해도 부탁해도 아버지는 듣지 않는다.
도무지 이유를 모른다. 당신 말을 듣기 싫은 건지, 아니면 까먹는 건지, 아니면 안 끓여 놔도 된다는 건지, 그렇게 냄비 통째로 상해서 버린 국이 한강물은 될 것이다.
비가 내리는데 아버지는 시원한 바람을 맞고 싶다며 창문을 열어놓는다. 빗줄기가 들이쳐 베란다에 놓은 재활용품 박스가 젖어버린다. 당신은 한참 지난 뒤에야 그것을 발견한다.
전부 들어내고 바닥부터 닦는다. 걸레를 짜면서 계속 닦은 다음에 마른걸레로 마무리한다. 뭉개진 박스를 새것으로 바꾸고 재활용품도 옮겨 담는다.
바닥에 빗물이 고여 있다. 아래층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결국 당신은 참다참다 아버지에게 화를 낸다.
"아무리 더워도 비오는데 창문을 왜 열어 놨어요?"
“바람이 부는 반대편 창문을 열어 비가 안 들어오는 줄 았았지.”
아버지의 변명은 귀에 닿지도 않는다. 시원한 바람 맞으려고 창문을 열었다면서, 그러면 바람 타고 비가 들어오는 줄 몰랐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당신이 베란다는 정리하는 동안 미안한 척하던 아버지는 이제 나 몰라라 동물의 왕국 할 시간이라며 TV만 바라보고 있다.
손끝 까딱하지 않고, 하긴 도와준다고 나서봐야 오히려 방해만 된다. 제발 하루라도 사고 좀 안 쳤으면 한다.
큰형은 허구한 날 아버지와 다툰다. 대화를 해봐야 듣지 않을 걸 알면서 다툰다. 그리고 자신은 안 참고 곧장 대거리를 한다고 아버지와 투닥거리는 싸움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다.
박물관 평일 휴무와 안과 진료가 맞지 않은 날이다. 당신은 어쩔 수 없이 큰형에게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라고 부탁한다.
안과는 진료 시간이 길다. 오전 내내 병원에서 아버지와 지낸 큰형은 다시는 같이 가지 않는다.
“다음부터 네가 가라. 의사가 하는 말을 하나도 모르겠어. 그 동안 아버지를 모셨으니 나보다 잘 알 거 아니냐.”
그렇게 당신의 짐을 덜어주지 않는다.
백내장 수술을 하려면 일주일 전 눈의 상태를 봐서 날짜를 잡는다.
수술 하루 전 검사하고, 수술 당일은 당연히 병원으로 가야 하고, 수술 다음 날 검사하고, 일주일 뒤에 다시 검사한다.
그러니까 수술을 잘 마치려면 한 달에 5번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가야 한다.
반나절 동안 안과에서 대기하면서, 아버지의 성질을 다 맞춰주면서, 당신은 혼자 묵묵하게 그걸 해낸다. 형들에게는 아무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 진료일을 맞추기 위해 당신은 박물관 직원에게 낮은 자세로 대해야 한다. 다른 직원의 조퇴나 지각에도 지적을 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입지가 좁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