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점심식사 시간

by 은빛바다

미화원은 덩치에 맞지 않게 식판이 넘칠 정도로 채운다. 정 여사가 많이 먹어야 힘도 잘 쓴다고 너스레를 떤다.


하얀 가운을 입은 영양사가 잘 꾸며진 웃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반면 그녀를 돕는 식당 아주머니는 미화원이 반찬을 많이 담으면 핀잔을 준다.


용역은 정규직에 비해 식대를 절반만 받는다. 자존심이 상할 수 있지만 미화원이야 밥만 잘 먹을 수 있으면 그런 것쯤 개의치 않는다.


원래 미화원은 식당을 이용하지 않았다. 각자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미화 휴게실에서 먹었는데 반찬 냄새 때문에 문제가 터진다.


예민한 정규직이 지하 주차장에 내려갈 때마다 비린내가 풍긴다는 언급이 총무과의 귀에 들어간다.


용역직원이 밥을 사먹기에 부담스럽다는 사실을 안 인사과장은 영양사와 상의해서 가격을 낮춰 준다. 덕분에 같은 용역인 우준도 점심 식사를 부담없이 할 수 있다.


중앙지점 여직원들은 창가에서 식사하며 무슨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쉬지 않고 조잘거린다. 저렇게 떠들면서 또 밥을 먹는 게 참 대단한 능력이다.


구석 자리를 잡고 식판을 놓자 우준이 눈을 감는다. 식사 기도다. 밥을 먹기 전 식탁에 잠시 숙연한 시간이 고인다. 정 여사가 관심을 갖는다.


“우준이는 교회 다니나 봐? 여기 오기 전에는 뭐했어?”


“그냥 이것저것 했어요.”


3류 배우가 성의없이 각본대로 읽는 대답이다. 더 묻지 말라는 의도다. 우준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 다른 미화원이 묻는다.


“대학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요.”


대학이라는 단어에 고 주임의 입안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숟가락이 멈춘다. 그는 공업 고등학교 출신이다.


“대학교 다니던 놈이 여기에서 경비나 하고 있겠어요? 좋은데 취직해서 돈 많이 벌고 있겠지.”


가당치 않다는 듯 우물거리는 그의 입술이 시큰둥하다. 용역의 학벌이 더 높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우준이 아무 반응도 없자 관심은 수그러든다.


12시가 넘자 직원들이 식당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부서별로 줄 선다. 부장 과장 대리의 순서이고 가장 뒤에는 PT(part time)라고 부르는 여직원이 꼬리를 잡는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20대 초반이다.


부서마다 아침에 일찍 나와 사무실을 정리하거나 커피를 타거나 우체국을 다녀오는 등 자잘한 업무를 처리한다. 근무가 힘들지 않고 퇴근 시간도 정규직에 비해 빠른 편이라 야간 대학에 다니는 경우도 있다. 아직 어린 나이라서 그런지 용역 직원을 대놓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게 큰 혜택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리 용역이 나이가 많다고 해도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고 보니 인사과장님이랑 우준 씨랑 이름이 비슷해. 김우현. 김우준. 혹시 사촌지간 아니야? 족보 한번 맞춰보지 그래?”


배식대에서 주걱을 잡는 인사과장에게 모든 시선이 돌아간다. 정 여사의 의혹에 다른 미화원이 토를 단다.


“가만히 보면 얼굴도 닮았어. 어릴 때 잃어버린 형님 아니야?”


우준이 차분하게 식사하면서 아무 대꾸도 않는다. 계속 농담을 건네도 반응이 없자 곧장 흥미가 수그러든다. 고 주임은 용역 주제에 그런 태도를 고수하는 우준이 고깝다. 계속 눈을 흘기면서 숟가락으로 식판의 밥알을 긁는다.


“어이, 밥 먹냐?”


누군가 우준의 목덜미를 친다. 돌아보니 삼산동지점 주형진 과장이다.


한강은행 축구팀 회장이기도 하다. 정수리가 훤하게 벗겨지고 주변에 잔머리만 다듬어져 있다. 때문에 축구팀에서 가장 나이 든 큰형처럼 보인다.


“어? 인천본부에 어쩐 일이세요?”


주 과장이 일어서려는 우준의 어깨를 눌러 앉힌다.


“괜찮아. 마저 먹어. 지점장이 서울본부에 갔어. 기사가 수행하는 바람에 어음교환을 내가 왔어. 온 김에 인천본부 식당 밥이나 먹고 가려고. 이번 주에 시합 잡혔지?”


“영신증권 축구팀입니다. 남동중학교에서 8시예요. 내일 아침 회원에게 문자를 보낼 겁니다.”


“다들 늦지 않게 빨랑 나오라고 해라. 전처럼 시간 됐는데 인원 모자라서 상대팀 기다리게 하지 말아야지. 만수동 성일이는 꼭 나오도록 하고. 걔가 미드필더 안 잡으면 우리 팀은 축구가 안 돼.”


“알겠습니다.”


주 과장은 미화원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더니 배식대로 가서 줄 선다. 상냥한 태도에 정 여사가 곁눈질로 주 과장을 돌아보며 묻는다.


“대머리네. 누구야?”


“축구팀 회장님이요.”


“아, 우준이가 운영하는 그 축구팀.”


“제가 운영하는 건 아니고요. 거기 총무예요.”


“그래도 우준이 아니면 축구팀이 안 된다고 하던데. 안 그래?”


이번에도 우준은 반응이 없다.


식기를 반납하고 우준의 일행이 식당에서 나간다.


복도 저쪽에서 한윤수 총무과장이 걸어온다. 혼자 업무를 처리하다가 식사 시간에 늦은 것 같다. 총무과장에게는 무조건 잘 보여야 한다. 용역 회사로 전화를 걸어 불만을 드러내면 다음 날 짐을 챙겨서 나갈 수 있다.


한 과장과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우준의 일행은 걸음이 다소곳하다.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가 허리를 접는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깍듯한 인사에도 불구하고 한 과장은 묵뚝뚝하게 아는 척 않고 지나간다. 그가 스친 자리에서 찬바람이 일어나는 것 같다. 다들 늘 겪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면서 돌아보지 않는다.


승강기를 기다리는 도중에 결국 정 여사가 터진다.


“쌍놈의 자식, 하여간 저건 윤수가 아니라 금수야. 쥐새끼처럼 얍삽하게 생겨서 사람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저게 무식해서 그래. 정규직이라 돈 좀 번다고 지 잘난 줄만 알지. 도대체 애비 에비가 어떻게 했기에 저런 인간이 나왔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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