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근무한 우준은 나보다 세 살 많은 형이었지. 인상이 참 좋았어. 딱 보는 순간 푸근하다고나 할까. 맞아, 곰돌이 푸우. 그런 이미지였지.
첫날부터 친절하게 이것저것 잘 가르쳐주더군. 여기 오기 전에 뭐 했냐고 물으니까 대답을 안 하는 거야. 나처럼 공돌이 출신인 줄 알았지.
그는 인천본부 청경보다 축구팀 총무 이미지가 더 강했어. 보통 회사나 학교 동아리에서 축구팀을 만들려면 공지부터 띄우잖아. ‘축구팀 회원 모집’ 이렇게 게시판에 붙이기도 하고. 하지만 한강은행 축구팀은 만들어진 배경부터 달랐어.
계약직과 용역끼리 술을 마신 적이 있었대.
1호차 운짱 박 기사랑, 관리실 고 주임, 나의 전임 청경, 중앙지점의 청경이랑 기사, 그리고 우준이. 이렇게 6명이서 술을 마시다가 박 기사가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운동하자는 의견을 낸 거야.
하루 종일 운전대를 잡고 있으니 몸이 부실해지는 거지. 더구나 본부장을 모시고 다니려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어.
그때 우준이 토요일마다 인천대공원에서 족구를 하자고 제안했대. 주 6일에서 주 5일 근무로 바뀌던 시기였거든.
총무과 창고에 야유회마다 갖고 가는 족구 네트가 있었어. 고 주임이 그걸 갖고 오기로 하고. 박 기사는 지점의 아는 기사 연락해서 4대 4로 족구 경기를 할 수 있도록 구성이 된 거야. 공 차는 거 싫어하는 남자는 없잖아.
원래 그런 모임이 처음에는 잘 모이다가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아. 전날 술 많이 마시면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말이야.
족구 모임이 계속 유지되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박 기사랑 중앙지점 기사가 토요일 아침마다 돌면서 그 지역의 회원을 데리고 나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총무를 맡은 우준 덕분이었어.
매주 족구 모임을 마치면 참석 인원과 경기 내용이랑 수입과 지출까지 A4 용지에 깔끔하게 정리해서 회원에게 돌린 거야. 마치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나눠주는 주보처럼 말이야. 아마 자기가 총무인데 남의 돈 한푼도 떼어먹지 않는 걸 보여주려고 했나 봐.
우준이랑 같이 지내면서 느낀 건데, 결백증 같은 게 있었어.
절대로 게으르지 않고 의심을 살 만한 행동도 하지 않아. 무슨 일이든 원칙대로 하지 않으면 답답하게 여겨.
우준이 돈 계산을 철저하게 하니 회원에게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었어. 회사에 금전적인 비리가 얼마나 많아. 경리과에 영수증만 갖다 주면 비용으로 처리를 해주잖아.
운동 모임이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잖아. 처음에는 8명이서 모이다가 6명 5명으로 점점 인원이 준 거지. 아침에 일어나기 귀찮고, 나가봐야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서로 감정이 상하는 경우도 생기고.
중앙지점 용역 기사와 청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싹 빠지더래. 그쪽 지점장은 자기 직원이 인천본부랑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거든. 지점에서 일어난 사건을 인천본부에서도 알 수 있잖아.
이제 족구팀이 없어지는가 보다 하는 그 시점에 대머리 주 과장이 등장한 거지. 원래 그 사람이 박 기사랑 형 동생하면서 친했거든.
계약직이나 용역 모임에는 정규직이 어울리지 않아. 아예 접촉하기를 꺼리는 편이지. 같이 놀면 자기 수준이 떨어진다고 여기니까. 그런데 주 과장은 족구 모임에 참석한 뒤 이거 전망이 있다고 판단을 내린 거지. 거기에는 총무를 맡은 우준이 열심히 노력하는 게 눈에 들어왔고.
곧장 대대적인 광고를 한 거야. 정규직끼리 소통하는 사이트 있거든. 거기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아는 선배 후배한테 나오라고 연락을 한 거지.
처음에는 긴가민가 미심쩍어하던 직원이 참석한 뒤에 엄지 손가락을 올리더래. 땀 흘리며 운동하고 인맥 쌓으니까 좋잖아. 그 소문을 듣고 다른 직원이 더 나온 거지.
정규직이 나오면서 지점에서 근무하는 용역까지 데리고 나왔어. 원래 계약직과 용역으로 시작된 족구팀이니까 용역이 나오는 게 부담이 없는 거지. 총무인 우준도 용역이고 말이야.
한강은행 직원은 자기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아. 아마 주 과장도 계산한 것 같아. 이 축구팀을 발전시키면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치리라고 말이야. 충분히 승진에 도움이 되리라 여긴 거지. 박 기사랑 친하니까 1호차 운행 도중에 본부장의 귀에 찔러 넣어줄 수도 있잖아.
인원이 많아지니까 종목을 자연히 족구에서 축구팀으로 바꾸게 되었지. 유니폼이랑 장비를 구비하는 과정도 우준이 축구용품점 돌아다니면서 맡아서 했어. 다른 팀이랑 연락해서 시합을 잡고. 우준이 축구팀의 밑거름이 된 거지. 잘난 정규직이 아니었단 말이야.
인천본부 임원 입장에서는 기특한 거지. 아무 지원도 없었는데, 자기끼리 모여서 정규직 용역 상관하지 않고 축구공을 차면서 화합의 장을 이루니까.
사회인 축구대회가 꽤 있거든. 인천 시청에서 열리는 한마음 축구대회. 또 전국 지역본부 단위로 자체적인 한강은행 축구대회도 있고. 그 외에도 남동배라든지 여러가지 대회가 많아.
예전에는 주최 측에서 참석하라고 인천본부로 통보가 오면 아무 준비가 없었어. 운동신경 좋은 직원 11명을 뽑아서 유니폼도 없이 한강은행 로고가 박힌 조끼만 입히고 출전시키는 거야. 등수는 아예 신경을 쓰지도 않았어. 참석에만 의미를 두는 거지.
주말에 쉬고 싶은 직원이 나가려고 하겠어? 따로 보상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 경기 뛰다가 재수없이 발목이라도 삐면 누구 손해야. 친정 큰아버지 제사라고 빠지려는 직원을 어떻게든 달래야 했지.
경기 결과가 좋겠어?
웃긴 건 골키퍼 장갑도 없었대. 건설 노동자가 끼는 빨간색 코팅 장갑 있잖아. 그걸 끼고 슛을 막았대. 더 웃긴 건 골키퍼 유니폼도 따로 없었대.
같은 모양의 조끼를 입고 골대를 지킨 거지. 골문 혼전 상황에서 골키퍼가 축구공을 잡으니까 상대편 선수가 손을 들고 핸들링이라고 외치더래. 구분이 안 되니까 수비수가 공을 잡은 줄로 착각한 것이지.
급조된 팀이라 손발 맞지 않으니까 결과는 평균 3 대 0, 심하면 7 대 0까지 두들겨 맞았다더라. 개망신이었지. 축구시합이 잡히면 누가 나가려고 했겠어.
축구팀이 자체적으로 창설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니까 인천본부 입장에서는 얼마나 이쁘겠어. 더구나 6개 팀만 출전하는 작은 축구대회이지만 우승한 적도 있어. 그 트로피가 노조사무실에 놓여 있고.
나한테도 축구팀에 가입하라고 했지만 거절했어. 내가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 아니야. 공을 잘 차지도 않고. 만나봐야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인간들도 아니고. 한강은행에서 용역으로 천년만년 다닐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우준은 왜 그렇게 축구팀 총무를 열심히 했을까? 따로 돈이 나오거나 용역 직원이 승진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