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시합 전 몸풀기

by 은빛바다

아직 새벽 여운이 남은 시간이다. 운동장 저편에서 바람이 불어와 유니폼 차림으로 교문을 들어서는 우준을 쓰다듬는다. 남동중학교에는 아무도 없다. 항상 우준은 경기 1시간 전에 도착한다.


출구 골대에 운동 가방을 내려놓는다. 축구화, 축구공, 휴대용 주입기, 편을 나눌 때 입는 조끼, 심판용 휘슬, 골키퍼 유니폼과 장갑 등 축구용품이 들어 있다. 때문에 우준은 일반 회원에 비해 2배 정도 큰 가방을 들고 다닌다.


아직 우준에게는 승용차를 몰고 다닐 경제력이 없다. 어깨에 축구용품이 든 가방을 걸고 버스를 번갈아 타며 경기장까지 오는 길은 편하지 않다.


천천히 몸을 풀고 운동장을 달린다. 양팔을 번갈아가면서 힘껏 올리며 뭉친 어깨에 자극을 준다. 숨이 차오를 무렵에 교문에서 이성일이 나타난다.


우진은 손을 흔들어 보이고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성일도 골대 근처에서 몸을 풀기 시작한다. 토요일 축구 모임에서 항상 우준이 먼저 도착하고 2착은 성일이다.


우준이 골대를 지나칠 때 성일은 휴대폰을 열고 아침에 온 문자 메시지를 보여준다. 모닝콜이다.


<오늘 영신증권과 금융권의 자존심을 걸고 한판 붙습니다. 한강은행 축구 전사들 얼른 나오세요. 남동중학교. 8시.>


닭살 돋는 문장이지만 의외로 호응은 좋다. 우진은 토요일 아침마다 회원에게 출석을 유도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만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축구를 떠올리면 그대는 진정한 한강은행 축구 선수입니다. 지금 그라운드를 지배하러 나오세요. 용현초등학교. 8시.>


<우리는 모두 축구의 별입니다. 운동장에서 빛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드디어 바로 그날입니다. 동암중학교. 8시 30분.>


매주 이런 글을 보내니, 회원은 오늘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서 자다가 눈을 떠 모닝콜 내용을 확인한다고 했다.


“어제 저녁에 마신 술이 깨지 않았어도 아침에 이런 걸 읽으면 축구하러 안 나올 수 없을 거야.”


성일이 휴대폰을 흔들며 칭찬한다. 쑥스러운지 우준은 말없이 하이 파이브를 한다. 짝! 허공에서 난 소리가 빈 운동장 끝까지 퍼진다.


만수동 지점 청경인 성일은 180cm가 넘는 키에 호리한 몸매를 가졌다. 경기 중에 공을 잡으면 상대편 수비수가 접근할 수 없게 양팔을 벌리는데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치는 것 같은 형상이다. 중앙 미드필더로 공격수에게 찔러주는 패스가 일품이다.


그의 아내는 테이블이 4개만 놓인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다. 배달 위주로 장사하는데 축구팀 회원이 자주 들리는 아지트 같은 곳이 되었다. 덕분에 토요일이면 매상이 수직으로 올라 남편의 축구 활동을 밀어주고 있다.


기업가가 어음을 지급받으려면 한강은행 각 지점으로 온다. 지점은 그것을 매일 인천본부 어음교환실로 갖고 오고, 어음교환실은 통합 정리해서 금융결제원으로 올린다. 그런 과정에서 지점은 인천본부 사무실에 서류를 전달하기도 한다. 반대로 인천본부에서는 어음교환실을 통해 지점마다 업무에 필요한 물건을 보낸다.


어음교환실 앞 복도를 따라 우편함이 놓여 있다. 조그만 사각의 통마다 각 지점의 명찰이 붙었다. 이것을 통해 인천본부는 지점 직원에게 개인적인 물품까지 전달한다.


우준은 이 우편함을 이용한다. 축구 모임을 마치면 그날 참석 인원과 경기 결과, 재미있는 에피소드까지 세세하게 적어 보낸다. 토요일 축구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도 그것을 읽으면 이번 주에 어떤 식으로 진행했는지 알 수 있다. 우준은 그것을 2년 동안 한주도 쉬지 않았다.


만수동 지점은 어음교환 업무를 성일에게 맡긴다. 객장에서 고객을 안내하다가 시간이 되면 어음을 받아 인천본부로 향한다. 그는 소형 승용차를 운전하면서 출퇴근을 하고, 인천본부에 다녀오는 연료비는 만수동 지점 총무과에서 빠듯하게 지원해준다.


자연히 현관 앞에서 차량을 유도하던 우준과 인사를 나눴다. 서로 동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자 금방 친구 먹으면서 말을 텄다.


성일이 중학교 시절까지 축구 선수였던 점은 큰 매력이다. 축구를 접은 뒤 농업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거름 냄새가 싫어 도시로 나왔다. 우준은 적극적으로 성일을 축구 회원으로 영입한다.


작전동, 산곡동, 부개동, 계산동, 송도동 등 지점에 흩어진 한강은행 축구팀 회원이 남동중학교 교문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결같이 유니폼 차림에 운동 가방을 어깨에 걸고 있다. 누군가는 슬리퍼를 신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온다.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가 터지면서 서로 안부를 묻는다. 축구화를 신고 정강이 보호대를 차다가 주 과장이 등장하자 얼른 일어나 악수를 나누는 모습은 훈훈하다. 주 과장의 머리카락이 얼마나 빠졌는지 정수리를 확인하며 장난치는 직원도 정겹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지점 운전기사와 청경은 한쪽에 모여 출전을 준비한다.


어느 지점에서 벌어진 특이한 사건은 동기나 친한 직원의 휴대폰을 타고 당일 인천 전체에 퍼진다. 특히 연애담은 관심의 1등이다. 토요일마다 축구팀에서 그 지점의 직원을 직접 만나 사건을 확인하는 수다도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 식으로 사회 생활에서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


시합이 시작되기 전에 선수들이 골대 주위로 모여 패스와 슈팅 연습을 한다. 경기장에서는 정규직 계약직 용역을 나누지 않는다. 우준의 의도대로 축구공으로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장소이다.


영신증권 축구팀이 11명 인원을 맞추자 회장이 먼저 인사하러 온다. 한강은행 출석 선수는 16명으로 여유가 있다.


전반 후반 45분씩. 휴식 15분. 전반전은 한강은행에서 후반전은 영신증권에서 심판. 토요일에 일찍 나온 대가로 골맛을 봐야 하니 업사이드는 심하게 잡지 않고 무엇보다 부상을 조심하면서 경기하기로 합의한다.


부상에 관해서 의외의 사건이 있다. 언젠가 쌍룡자동차 축구팀과 시합을 뛰었다.


전날 비가 많이 내려서 지면이 고르지 않았다. 땅을 패면서 지나간 물줄기가 운동장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조심하면서 경기를 뛰는데 승부에 집착하면 어쩔 수 없이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센터링이 골문으로 올라가자 서로 공을 차지하기 위해 팔꿈치로 밀면서 헤딩을 뛰는데, 상대편 수비수가 허공에서 중심을 잃는다.


바닥을 짚으면서 그만 손목이 부러지고 만다. 경기는 중단된다. 회사 동료에 의해 응급실로 옮겨진다. 팔에 심지를 박는 큰 부상이다.


불미스럽지만 경기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이때 우준이 병문안을 제안한다. 우리 회사 직원도 아니고 꼭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고 주 과장이 만류한다.


하지만 우준은 쌍룡자동차 총무과로 전화 걸어 병실을 확인한 뒤 과일 바구니를 들고 혼자 찾는다. 환자에게 같이 경기를 뛴 한강은행 축구팀 총무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환자와 그의 아내는 이런 배려를 무척 고마워한다. 병원 현관까지 따라 나와서 배웅을 해준다.


이 소문이 돌자 우준은 높게 평가된다. 전단지 수천 장을 돌리는 것보다 한강은행의 이미지를 돋보이게 만드는 홍보라고 했다.


반면 고 주임은 이 사건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우준이 근무하는 안내 데스크로 와서 시비를 걸 듯 내뱉는다.


“네가 뭔데 한강은행 이름을 팔고 다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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