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 데스크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현관 앞에서 한강은행 인천본부로 들어오는 차량을 유도하던 우준이 빠른 걸음으로 로비를 가로지른다. 허리에 찬 가스총이 덜렁거리지 않도록 단단히 누른다.
우준이 수화기를 귀에 대자마자 앳된 여성의 목소리가 짧게 말하고 끊는다. 이쪽 대답을 들을 여유는 없다.
“본부장님. 내려가십니다.”
비서실 조화연이다. 안내 데스크에서 이런 식으로 가장 많이 통화하는 직원이지만 정작 얼굴을 볼 기회는 적다.
우준이 승강기를 돌아보자 3층에서 화살표가 내려오고 있다. 시간이 없다. 수화기를 놓으며 로비가 울릴 정도로 또박또박 말한다.
“본부장님. 내려오십니다.”
이 한마디에 승강기를 기다리던 중앙지점 여직원들이 다시 들어간다. 지하 관리실에서 계단으로 올라오던 고영길 주임이 “본부장 내려오냐? 오줌이나 싸야 겠다.” 하면서 화장실로 숨는다. 로비에는 개미 한마리 지나가지 않는다.
우준만 침착하게 본부장을 맞이한다.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검은 세단이 대기하고 있다. 본부장을 태우고 다니는 1호차다.
운전석 창문을 바라보며 검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킨다. 본부장이 내려오는 신호다. 반대로 본부장이 올라가는 신호는 엄지 손가락을 위로 올린다.
차렸 자세로 선 우준은 제복 매무새를 다듬는다. 두툼한 덩치 덕분인지 1층을 지키는 든든한 수문장이라는 평을 듣는다. 똑바로 승강기를 응시한다. 그러면서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량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현관 앞은 주차선이 그어지지 않았다.
간혹 한강은행 고객이라고 하면서 무턱대고 주차하는 승용차가 있다. 잠깐 ATM 기계만 사용하고 나올 거라며 1호차를 막은 채 은행으로 들어간다. 본부장이 나가는데 고객의 차가 막고 있으니 같이 내려온 수행원은 미칠 노릇이다. 1호차가 주차장에서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우준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1호차에 시동이 걸린다. 운전석에서 박정만 기사가 내린다. 넥타이를 다듬고 역시 승강기를 응시한다. 인천본부에서 20년 넘게 1호차 핸들을 잡은 베테랑이다.
“강화도에 새로운 지점을 개설하는데 참석하는 거야. 점심은 거기서 먹고. 다른 곳에 들리지 않으면 3시 정도에 올 거야. 현관 앞 비워 놔.”
승강기가 열리자 본부장이 걸어 나온다. 뒤따라 내리는 수행원은 인천의 금융을 총괄하는 신용사업부 부장이다. 우준은 그를 향하여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다. 존경심으로 우러나오는 행동이 아니다.
조직 사회가 이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를 보여줘야 정규직 사이에서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만일 뒷말이 나오면 총무팀으로 들어갈 것이고 우준은 직장 생활은 피곤해진다.
우준이 공손하게 뒷좌석 문을 두손으로 열어준다. 본부장이 앉자 문을 닫는다. 그는 가죽 가면을 쓴 것처럼 표정 변화가 없다.
신용사업부 부장은 잰걸음으로 차를 돌아서 옆자리로 간다. 박 기사가 빨리 앉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다.
“어, 형. 고마워.”
서로 신입사원 때부터 얼굴을 본 사이다. 나이는 박 기사가 많지만 직책은 더 높다.
곧장 1호차가 출발한다. 본부장은 기다리는 시간을 싫어한다. 그만큼 주위 보좌관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한다. 우준은 다시 트렁크를 향해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다. 그 즈음에 중앙지점 여직원들이 승강기 앞으로 모이고, 고 주임이 손에 물기를 털면서 화장실에서 나온다.
주차장에서 1호차가 빠져나가자 우준은 현관문을 닫는다.
3시 즈음 본부장이 도착할 시간에 다른 차량이 주차하지 않도록 현관 앞을 비워놔야 한다. 1호차가 도착하면 대기하던 우준은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 뒤 뒷좌석 문을 연다. 본부장이 내리는 동안, 같이 온 신용사업부 부장은 먼저 로비를 가로질러 승강기 버튼을 누른다. 우준은 승강기가 1층에 도착할 때까지 본부장 뒤에서 대기한다. 본부장이 승강기에 타면 우준은 또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고, 문이 닫히면 비서실 조화연이 맞이할 수 있도록 인터폰을 건다.
“본부장님. 올라가십니다.”
본부장이 외출 다녀올 때마다 로비에서 치르는 과정이다.
높은 분은 다 이런 대우를 받기 원하는 걸까? 인천 50여 개 지점을 대표하는 한강은행 본부장을 이 정도로 대하는데, 은행장이나 장관, 시장은 과연 어떤 대우를 받을까.
한강은행 인천본부 건물 1층은 중앙지점이 운영하고 있다. 인천본부와 업무는 별개이고 탈의실도 따로 쓴다. 여직원 유니폼 디자인만 같을 뿐이다. 로비를 담당하는 우준에게는 아침 인사를 나누고 명절에 선물을 챙겨주는 정도에서 지내고 있다.
인천본부 각층마다 금융을 담당하는 신용사업부, 채권추심단, 어음교환반,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전산실, 노조사무실 등이 있다. 3층에는 본부장실과 회의실 그리고 우준을 채용한 총무팀이 자리 잡았다. 가장 위층은 대강당, 그 아래가 식당이다.
식사 동료가 안내 데스크로 모인다. 관리실에서 근무하는 고 주임과 1호차를 운전하는 박 기사는 계약직이다. 전에는 정규직이었는데 IMF의 찬바람을 맞고 강등되었다. 박 기사의 하소연에 의하면 운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갑자기 총무부장이 회의실에서 면담을 제안했다. 명예퇴직금을 줄 테니 사표를 쓰라고 강요했다. 지금 사표를 쓰지 않으면 명예퇴직금조차 받을 수 없을 거라는 협박까지 들었다.
나도 집안의 가장인데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대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퇴직 후 다시 한강은행에 계약직으로 입사, 월급은 정규직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받았다.
지하에서 뽀글이 파마 아주머니 다섯 명이 올라온다. 그 중에서 별명이 정 여사인 미화원은 우준을 보자마자 양손을 높게 들고 반짝거린다. 작은 키에 작은 팔을 뻗어야 우준의 눈썹에 닿을까 말까, 항상 입술 화장이 진하다. 시원한 성격과 거침없는 입담으로 자리를 압도한다.
언젠가 정 여사가 청소하던 도중에 황급히 우준을 부르더니 자기 휴대폰을 건네줬다. “네가 뭐라고 해 줘. 나 따라다니는 유부남이야.” 우준이 휴대폰을 귀에 붙이고 “여보세요? 누구세요?” 하자마자 통화가 뚝, 끊긴다. 이유를 들어보니 산악회에서 연락처를 주고받은 중년인데 따로 만나자고 전화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산악회에서 어떻게 노는지 의구심이 일어난다.
정 여사는 하사관과 결혼했는데 신혼 여행이라야 대대장 지프차 타고 부대 주변을 돈 게 전부다. 전역한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 중동 노무자로 떠났다가 돌아왔다. 그 기간 동안 정 여사가 어떻게 놀았는지 자기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며 킥킥거렸다. 지금이야 자식들 다 키우고 용돈벌이로 청소를 나오는 거라고 둘러대는데, 모든 미화 아주머니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공통된 변명 같은 것이었다.
“우리 신참 어디 갔어? 환구라고 했나? 이름도 희한해. 발음을 조금 둥글게 하면 황구잖아. 누런개. 왜 사람 이름을 개처럼 지었어? 아직 저쪽 주차장에 있나? 같이 밥 먹으러 가야 하는데.”
정 여사가 우준과 같은 청경인 환구를 찾는다. 그는 건물 뒤편 주차장에서 근무 중이다. 주차장은 예산 문제 때문에 전산시스템이 구비되지 않은 상태다. 총무과에서는 조만간 바꿀 예정이라는 말만 반복한다. 그전까지 청경이 불법 주차만 단속하라는 지시만 내린다.
승용차를 주차한 뒤 은행에 들르지 않고 주변 사무실로 가는 얌체가 꽤 있다. 청경이 오전과 오후 교대로 주차 단속을 하지만 쉬운 문제는 아니다. 승용차를 주차하고 은행으로 들어갔다가 눈치를 봐서 자기 사무실로 향하는 지능범을 일일이 쫓아다닐 수는 없다.
총무과장은 청경이 뒤편 주차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독서를 허용해 준다. 냉난방이 안 되는 주차 부스에 앉아 고생하니 그 정도 혜택은 봐주는 편이다. 덕분에 환구는 경찰 시험을 준비하고, 우준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청경과 미화원은 ‘신진’ 용역회사의 직원이다. 인천본부에서 하청업체에 외주를 줘서 관리하도록 한다. 복장이나 근무 지침, 심지어는 청소 장비까지 용역회사에서 책임진다. 만일 청소 장비가 떨어지면 총무과에 요청하는 게 아니라 용역회사에 전화해서 택배로 받는다. 아무래도 같은 건물에 다른 회사 직원끼리 어울리기는 쉽지 않다.
“같은 용역회사 직원이라 챙기나?”
고 주임이 실실 웃으면서 빈정거린다. 계약직이기는 해도 자기는 한강은행 직원이라는 거드름이다. 월급명세서에 한강은행 상호가 적힌다. 그러면서 정규직과 어울리지 못하고 용역과 점심을 먹는다.
“그럼, 우리 회사 직원이니까 당연히 내가 챙겨야지.”
정 여사는 꿀리지 않는다.
뒷문으로 향하는 통로에서 나타난 환구가 안내 데스크로 걸어온다. 그의 손에는 항상 필기구와 경찰학개론을 들고 있다. 하지만 책 테두리가 새하얗다.
“우리 밥 먹으러 가야지.”
정 여사가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환구의 팔짱을 낀다. 고 주임을 의식한 행동이다.
환구가 팔을 빼면서 안내 데스크 서랍을 연다. 책을 넣으며 정 여사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용역 직원끼리 그것도 청소나 하는 미화원의 살가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자기도 용역 경비면서……. 용역이 용역을 부끄럽게 여긴다.
“먼저 먹고 오세요. 나는 안내 데스크 지키다가 2차로 갈게요.”
“그래? 그러면 우리끼리 가자.”
고 주임이 곧장 승강기 버튼을 누른다. 중앙 냉난방을 관리하는 고 주임이나 미화직원 휴게실, 청경 탈의실로 같이 쓰는 기사 대기실까지 전부 지하에 거주하는 직원이다. 점심식사 동료이기도 하다.
아직 12시 전이다. 교대를 해줘야 하는 중앙지점 직원이나 청경은 식사 시간보다 일찍 올라간다. 정규직과 섞이지 않고 용역끼리 식당 구석에 자리를 잡는 게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