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지점 출입문에 하얀 블라인드가 드리워진다. 은행 업무가 마감된 시간이라 인천본부 현관 앞은 한산하다.
1호차가 대기 중이다. 기다리다 지친 박 기사가 안내 데스크에 앉아 신문을 읽는다. 그것도 싫증이 났는지 신문을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은 뒤 돌돌 말아서 몽둥이로 만든다.
“짜증 나네. 일찍 출발하지도 않을 거면서 왜 차를 대기하라고 지랄이야? 나 쉬지도 못하게. 안 그래?”
박 기사가 신문 몽둥이로 옆에 앉은 환구의 뒤통수를 툭 친다. 사람을 때리는 장난은 받아주는 입장에서 즐겁지 않다. 다시 박 기사가 몽둥이를 들자 환구는 로비로 걸어 나가며 피한다.
“거기로 나간 김에 캔커피나 사 와라. 목이 컬컬하네.”
환구가 들은 척하지 않는다. 20년 넘게 1호차를 운전하면서 어떻게든 남 벗겨 먹는 방법만 연구한 것 같다.
아침에 버스가 밀려서 조금만 늦게 도착하면 ‘지각했으니 음료수 사라.’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조퇴를 신청하면 ‘일찍 나가니 샌드위치를 사라.’ 만일 싫은 기색을 드러내면 ‘그깟 게 비싸면 얼마나 비싸길래 돈을 아끼냐. 쪼잔하고 더럽다.’ 하면서 들들 볶는다.
얻어먹지만 말고 박 기사도 한턱 내라고 하면 ‘내가 집에 처자식이 있는데 너희 사 줄 돈이 어디 있냐.’ 오히려 역성을 낸다.
그러면서도 지 아들 공부 잘 하는 건 침이 마르도록 자랑한다. 할 수만 있으면 환구는 박 기사 멱살을 잡고 하늘 저편으로 던져버리고 싶다.
부장급 임원도 박 기사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운전하는 도중에 본부장에게 슬쩍 자신에 대해 안 좋은 정보를 찌르면 그야말로 낭패다. 가끔 박 기사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하면서 잘 보이려고 애쓰는 이유다.
“야, 안 들리냐? 나 야근이야. 불쌍하지도 않아? 지금 목이 엄청나게 컬컬하단 말이야.”
'인천금융연합'이 모이는 날이다.
은행, 증권, 우체국, 보험 등 인천의 금융권 본부장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며 화합을 다진다. 인천시장도 참석하기에 본부장은 안 갈 수가 없다.
술 취한 본부장을 집까지 모셔다 드리면, 박 기사는 10시가 훌쩍 넘어서야 양말을 벗을 수 있다. 짜증이 나기는 할 것이다. 그렇다고 환구에게 몽둥이질로 스트레스를 풀려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
“저는 당직이에요. 회사에서 자요.”
환구의 말투는 가시가 박힌 것처럼 뾰족하다.
“어? 당직이냐? 맞아, 당직비 나오겠네. 그걸로 한턱 쏘면 되겠네.”
환구는 애써 박 기사를 외면하며 입술을 실룩거린다. 우준에게는 이런 식으로 대하지 않는다. 젠장, 얼른 때려 치워야지. 내가 우습게 보이니까 이러지.
퇴근 시간은 지났다.
우준은 기사 대기실에서 사복으로 갈아입는 중이다. 오후 내내 뒤쪽 주차장에서 주차 관리를 했다. 주차장에서 읽었다고 하며 그가 들고 다니는 책을 환구에게 보여줬다.
제목부터 이해하기 힘들다. <까뮈의 이방인>. 표지에는 부조리한 세상에 동화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환구는 혼자 중얼거린다. 맞아, 이 사회는 부조리하고. 인천본부에서 근무하는 용역 청경이 이방인이지.
우준이 주차장에서 책만 읽는 건 아니다. 근무는 확실하게 선다.
예전에 중앙지점에서 통장을 만든 고객의 항의가 들어왔다. 은행 업무를 보면서 뒤편 주차장에 승용차를 주차했는데 누가 범퍼를 긁은 것이다. 우준이 사고가 일어난 시간으로 CCTV 화면을 돌린다.
승용차가 충돌하자 운전석에서 중년 남자가 내려 확인한 후 그냥 주차장에서 나가버리는 장면이 녹화되어 있다. 화질이 흐려서 번호판을 읽을 수 없다.
중앙지점에 온 고객일 것이다. 혹은 이 근처 사무실 직원인데 도둑 주차를 하고 도망친 것이다. 온갖 추측이 나왔지만 범인을 잡을 방법은 없다.
우준이 기지를 발휘한다. 어떻게 조정법을 알았는지 CCTV를 뒤로 돌린다. 중년 남자가 뒷걸음으로 물러서서 승용차에 탄다. 승용차가 후진으로 주차장 끝으로 가자 우준은 2번 카메라를 스톱시키고 3번 카메라를 확대해서 계속 추적한다.
“이거 다루는 방법을 어디에서 배웠어?”
같이 지켜보던 중앙지점의 과장이 의외라는 목소리로 묻는다.
“아니에요. 저도 처음 만져요. 영화 보면 다 이런 기능이 있잖아요.”
뒷걸음으로 인천본부에 들어온 중년 남자는 빈 카트를 끌고 있다. 중앙지점으로 들어가지 않고 승강기를 탄다. 우준은 재생 속도를 16배로 빨리 돌린다.
다시 승강기에서 뒷걸음으로 나온 중년 남자의 카트에는 식료품이 실려 있다. 범인을 잡았다. 식당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업체 직원이다. 영양사에게 확인해보니 고객의 승용차를 긁은 시간과 일치한다.
“죄송합니다. 경우 없는 행동을 했네요.”
영양사가 대신 사과한다. 연락을 받은 식재료 납품 직원은 사장과 곧장 달려온다. 면목이 없다고 피해자와 중앙지점 직원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주차 관리를 하다가 벌어진 기가 막힌 사건이 더 있다.
중앙지점에서 제보가 들어온다. 사무실 창문으로 바라보니 한 여성이 승용차를 주차한 뒤 낮은 담장을 넘어 길 건너편 모텔로 들어가더라는 것이다. 점심시간이라 주차 부스에 아무도 없을 때였다.
우준은 만일 그 여자가 승용차를 찾으러 나오면 곧장 연락을 달라고 부탁한다. 톡톡히 망신을 주겠다고.
안내 데스크에서 근무 서는 도중에 중앙지점 운전기사가 나와 다급하게 말한다,
“지금 모텔에서 나온 여자가 남자랑 승용차에 타고 있대요.”
우준은 주차 부스에서 경찰학개론을 펼친 환구를 부른다. 둘이 어깨에 잔뜩 힘이 넣고 불법 주차한 승용차로 다가간다. 역시 운전석에 짧은 파마머리의 여성이 앉아 있다.
일부러 우준은 운전석 유리창을 거칠게 두들긴다.
“아주머니, 차를 여기에 두고 어디 갔다가 온 겁니까?”
화들짝 놀란 여성이 연신 고개를 꾸벅거린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창문 좀 내려 봐요. 차 두고 어디에 다녀왔냐고요?”
다시 따지면서 뒷좌석을 돌아보는 순간 우준은 그대로 몸이 뻣뻣해지고 만다.
앳된 남자 아이가 우준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황급히 팔로 얼굴을 가리면서 시트에 묻는다. 이미 환구는 그 아이를 확인했는지 멍하게 서 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여기에 차 대지 않을 게요. 죄송합니다.”
여성의 사과는 들리지 않는다. 승용차가 주차장에서 나가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우준이 묻는다.
“환구야, 아까 여자 몇 살로 보이냐?”
“내가 여자 나이는 잘 못 보는데 입가에 주름을 보니 마흔은 넘을 것 같아.”
“남자 아이는?”
“아무리 많이 먹어야 스물? 아니, 열여덟? 고등학생처럼 보였어.”
한동안 서로 아무 말도 꺼낼 수 없다.
“와우~~~, 소름 끼친다. 저런 아내 먹여 살리려고 남편은 지금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겠지.”
승강기가 열리자 양손에 쇼핑백을 든 화연이 내린다. 안내데스크에 올리더니 박 기사를 바라보며 말한다. 절대로 환구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이거 실으래요. 저희 은행 사은품인데 금융연합 본부장님들에게 나눠 줄 거래요.”
“언제 나가신대?”
“곧요.”
박 기사가 은근한 눈짓으로 중앙지점을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는다.
“잘 돼 가? 재미있어?”
뺨이 불긋하게 달아오른 화연이 뭔가 말하려고 입술을 뻐끔거리다가 얼른 승강기에 오른다.
“몰라요. 저 비서실 오래 비우면 안 돼요.”
안내 데스크에서 전화로 목소리만 듣던 화연이다. 이런 식으로 얼굴을 볼 때마다 환구는 힘든 일상에서 새로운 힘을 얻는 것 같다.
박 기사가 바지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 던진다.
“실어.”
엉겁결에 두손으로 받은 환구가 굳어버린다. 자신도 모르게 눈썹에 힘이 들어간다. 내가 당신 꼬붕이야?
“차에 실으라니까. IMF만 터지지 않았으면 내가 여기에서 부장급 대우를 받고 있을 거야.”
어쩔 수 없이 환구는 느릿느릿 쇼핑백을 든다. 1호차 트렁크에 싣고 차키를 안내데스크에 놓는다. 당신 평생 기사 노릇이나 하면서 살아라.
박 기사는 그의 불퉁한 태도가 거슬린다.
“같이 일하는 우준이 절반만 닮아라. 성실하고 싹싹하고. 또 축구팀 총무를 얼마나 잘 하냐. 미화 아주머니한테도 서글서글하잖아. 간부들이 걔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안내데스크에 허리를 기댄 환구는 박 기사에게 등만 보이고 있다. 떨떠름한 침묵이 고인 가운데 전화벨이 울린다.
“본부장님 내려가십니다.”
수화기를 놓은 환구가 시큰둥하게 검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한다.
인사과 김 과장이 수행원으로 본부장과 같이 내려온다. 수행원은 3층에서 본부장이 나갈 즈음에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승강기까지 따라와 버튼을 눌러준다.
본부장이 손가락도 없는 게 아닌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3층에서 내려와 1호차에 탈 때까지 수행이라는 것도 기가 찰 노릇이다. 혹시 인천본부에서 본부장을 몰래 암살하려는 세력이 있기라도 한 걸까.
1호차가 출발하자 환구는 정문 셔터를 내린다. 로비의 전등을 끈다. 출입을 단속하기 위해 뒷문만 열어놓는다.
김 과장이 당직실로 향하는 환구를 불러 세운다.
“자네가 오늘 당직이지. 나랑 같이 서네. 사무실에서 마무리할 일이 있으니까 먼저 당직실 지키고 있어. 서울 본부에서 점검 나올지도 모르니 자리 비우지 말고.”
인천본부에서 가장 학벌이 높고 나이가 어린 과장이다. 더구나 중요한 직책 중 하나인 인사과장이다. 아무리 봐도 우준과 꼭 닮았다.
원래 용역인 우준과 환구는 인천본부 당직을 맡을 필요가 없다. 당직 로테이션이 빨리 돌아온다는 정규직의 불만에 총무과 한 과장이 억지로 근무를 넣은 것이다. 너희에게 당직비 5만 원이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제안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하루 저녁을 공기 탁한 당직실에서 낯선 과장과 불편하게 자고 나면 다음 날 몸이 찌뿌둥해서 견디기 힘들다.
환구는 당직실로 들어가자 벽장에서 이불부터 꺼낸다. 바닥에 넓게 펼쳐서 온기를 가둔다.
당직실은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새벽이 되면 으슬으슬 춥기까지 했다. 총무과에 건의가 올라갔지만 바닥을 뜯고 배관을 새로 깔아야 하는 공사라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나마 이불에서 냄새가 풍긴다는 건의 사항에 일주일마다 꼭 세탁을 해주고 있다.
당직일지, 방재일지, 순찰일지를 책상에 올린다. 당직 과장의 사인을 받아야 하는 곳을 펼친다. 환구는 모든 점검 상태를 이상무로 적는다.
서울 본부에 전화를 걸어 당직자를 보고한다.
“여보세요. 여기 인천본부인데요. 당직자 이름 적어주세요.”
필기구를 찾는지 잠시 뜸을 들인다.
“말씀하세요.”
“오늘 인천본부 당직자는 인사과장 김우현. 청경 정환구입니다.”
“어? 직책이 뭐라고? 청경 본인이야?”
대뜸 반말이다.
“네, 청경 정환구인데요.”
“거, 참, 인천은 청경도 당직을 서나? 웃기네.”
전화가 툭 끊긴다. 보통 ‘수고하세요.’ 인사하고 끊지 않던가. 이렇게 무시당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업무보다 힘들다.
순찰시계 초침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한다. 인천본부 각층 지정 장소마다 열쇠가 걸려 있다. 그 열쇠를 순찰시계에 넣고 돌리면 시간이 찍힌다. 꼭대기로는 으스스한 강당 뒤편과 아래로는 지하 2층 주차장까지 가야 한다. 건물을 구석구석 돌면서 직원이 모두 퇴근했는지 난로나 전등이 켜지지는 않았는지 점검한다.
제복을 벗고 가벼운 운동복으로 갈아입자 할 일이 없다. 환구는 리모컨을 눌러 TV를 켠다. 음악 방송이 나온다. 아이돌 걸그룹이 노래를 부르는데 환구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아까 박 기사와 티격태격한 일이 개운하지 않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용역이라고 해도 그렇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일이다.
“당직 잘 서. 인사과장님한테 저녁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해.”
우준이 당직실 문틈으로 방긋 웃고 있다. 이제까지 기사대기실에 있던 것 같다. 그는 사복까지도 깔끔하다. 항상 잘 다려진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한다.
“아직 퇴근 안 했어? 뭐하고 있었어?”
“기사대기실 컴퓨터로 축구회 소식지 만들었지. 내일 프린트해서 보내려고.”
환구는 갑자기 가슴에서 욱, 용암이 솟구친다.
“형은 아무 보수도 없이 왜 그런 일을 해? 그런다고 해서 한강은행이 형한테 고마워할 줄 알아? 오히려 형이 이용을 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의외의 반응에 우준은 웃음을 거둔다. 문을 열고 당직실 안으로 들어선다.
“무슨 말이야. 밑도 끝도 없이. 나는 이 일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서 하는 거야.”
“솔직히 말해 봐. 여기에서 하는 일이 자랑스러워? 잘 보이고 싶어? 그렇게 일하면 형한테 계약직이라도 주리라고 봐?”
무거운 공기가 둘 사이를 가로막는다.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해진다. 당직실에서 아무런 호응이 없자 아이돌을 소개하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허전하다.
“무슨 일 있냐? 혹시 박 기사님이 또 까칠하게 굴었냐?”
환구는 입술을 꾹 다물고 버틴다.
“자세하게 말해 봐. 성질만 부리지 말고.”
“형은…… 그래…….”
“뭐가?”
“어디 가서 내가 경비라고 부끄럽지 않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형이 아무리 잘 났어도, 몇번이나 뒤집혀도 그런 세상은 절대로 오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