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관리실 고주임

by 은빛바다

한강은행에서 청경으로 지내는 동안 계약직이 더 지랄을 떨었어. 박 기사랑 고 주임이 말이야. 용역에게 꿀리지 않으려고 어깨를 세운 거지.


원래 IMF 맞으면서 이 인간들 보직도 용역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그 동안 지낸 정이 있어서 그런지 인천본부에서 계약직으로 남겨둔 거야. 용역보다 월급은 좀 많이 받지만, 위치가 어중간해. 용역과 정규직의 중간이지.


한강은행을 떠나지 않은 이유가 나중에 정규직으로 복직할 기대가 남아서 그래.


유독 고 주임이 용역을 만만하게 봤지.


그 인간이 하는 일이 뭐냐면, 냉난방이 주 업무이고 건물 망가진 시설을 보수했어.


관재부에서 엄청 유세를 떨었지. 인천본부 건물의 전기선은 어떻게 설치되었는지 혹은 배관은 어디로 지나가는지 자기만 알고 있거든. 오래 근무를 했으니까.


마치 군대 주임상사 같은 인물이었어. 장교는 부대에서 근무하다가 전출받으면 새로운 곳으로 가잖아. 하지만 하사관은 계속 그 부대에 남아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잖아. 고 주임이 비슷한 경우였지.


더구나 그런 내용을 자기만 알고 다른 직원에는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았어. 때문에 관재과장도 함부로 고 주임을 대할 수 없었지.


신용사업부에 엄도현 과장이라고 있었어. 한국은행으로 현금 수송을 같이 가면서 친해진 과장인데, 인천의 금융 교육과 지원을 담당하는 보직이었어.


하루는 새로운 상품이 나와서 카드계 교육이 있었어. 한강은행 카드 담당 직원이 전부 인천본부로 모였지.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였는데 강당이 썰렁한 거야.


엄 과장이 추우니까 난방을 가동하라고 지시했어. 고 주임이 아직 냉방에서 난방으로 전환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더라. 평소 고 주임을 좋지 않게 보던 엄 과장은 그런 거 모르니까 관리실로 가서 당장 기계를 가동하라고 성질을 부린 거야.


네, 알겠습니다. 하고 고 주임이 내려가더니 곧장 강당에 찬바람이 들어오는 거야. 강당이 추운데 에어컨까지 돌리니 교육받다가 얼어 죽이려고 하느냐고 난리가 났지.


엄 과장이 당장 기계를 가동하라고 해서 그렇게 한 것뿐이라고, 나중에 고 주임이 실실 쪼개면서 말하더래.


한번은 관재과장한테서 연락이 왔어. 관리실 지하 하수구가 막혔대. 고 주임이 그것을 고치기 위해 배관업체를 불러야 한대.


일하기 싫은 거지. 그냥 막대기로 쑤셔서 뚫으면 될 것 같은데 혼자 못 한다고 버팅기는 거야. 양복을 입은 관재과장이 그 짓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청경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지. 말이 도와 달라는 거지, 가서 지저분한 일하라고 명령하는 거랑 같지. 용역이 무슨 선택권이 있나?


관리실 바닥 절반 정도가 물이 들어왔어. 보일러랑 냉난방을 조절하는 패널은 받침대 위에 올려져 있기에 감전사고가 날 위험은 없었어. 지하에서 물을 퍼올리는 펌프도 제대로 작동하더라. 아마 전부터 하수구가 막혀 조금씩 물이 차올랐는데 방치한 것 같더군.


나는 가스총 내려놓고, 제복 벗고, 고 주임이 준 반바지로 갈아입고, 고무장갑 끼고, 장화 신고, 관리실 구석으로 가서 구정물 안으로 손을 넣어 하수구 덮개를 꺼냈어. 머리카락과 종이 조각 같은 이상한 찌꺼기가 엉겨 붙었더라. 구역질이 날 것 같더군.


다음으로 두꺼운 스프링의 끝을 하수구로 밀어 넣는 거야. 반대쪽에는 모터가 달려 있더라. 하수구로 더 이상 스프링이 들어가지 않자 고 주임이 모터 스위치를 눌렀어.


스프링이 돌아가면서 구정물이 사방으로 튀더라. 그렇게 하수구를 뚫는 기계였어. 내 얼굴에도 구정물이 튀어서 침을 퉤퉤 뱉었지.


물이 빠지지 않으니까 하수구 안의 스프링을 빼내서 엉킨 오물을 제거하고, 다시 하수구 안으로 밀어 넣고, 모터를 돌려서 물이 빠지지 않으면 다시 스프링을 꺼내서 오물을 제거하고, 계속 이 과정을 반복한 거야. 언제까지? 하수구가 뚫릴 때까지. 사방으로 튀는 구정물을 맞아가면서.


고된 노동 끝에 수면이 조금씩 낮아지는 걸 확인하자 나와 고 주임은 서로 격려했지.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된다. 기운을 내자. 사람이 그래. 무엇이든 힘들게 같은 일을 하잖아. 마음이 맞게 된다. 축구 경기도 그렇잖아.


더욱 작업에 집중했지. 나는 스프링 넣었다가 빼면서 오물을 제거하고 고 주임은 모터 돌렸다가 끄고.


그러다가 쉬이이익---- 소리가 나면서 하수구 안으로 물결이 소용돌이 치자 나와 고 주임은 저절로 하이 파이브를 했어. 내 업무도 아니지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더라.


관리실 청소까지 도와주고, 숙직실에서 샤워를 마치자 퇴근 시간이었어. 고 주임이 기다리고 있더라. 고생했으니 같이 저녁밥 먹으러 가재. 자기가 사준다고. 내가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한다고 하자 의외로 성질을 부리더라.


왜 자기 말을 안 듣냐고, 따지는 거야. 열 살 정도 많은 형님이기도 해서 일단 나는 순순히 따라갔지. 그게 자기를 도와준 것에 대한 순수한 호의인 줄 알았는데, 참 나 기가 막히대.


도움을 준 나에게 밥이라도 먹여야 하는 거 아니냐며 관재과장에게 법인카드를 받은 거야. 그걸로 순대국밥을 먹더니, 내가 밥 샀으니 네가 2차를 쏘라고 하면서 노래방으로 가재.


분명히 계산할 때 내가 법인카드를 내미는 거 봤거든. 그런데 노래방?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법인카드로 저녁밥 산 거 아니냐고 물으니까, 그래도 내가 카드를 갖고 오지 않았으면 너는 공짜로 밥 못 먹었을 거 아니냐며 꼭 노래방에 가재.


진짜 나이만 많지 않으면 주먹으로 후려갈기고 싶더라. 뒤에서 뭐라고 지껄이든 말든 버스 타고 집으로 와버렸어.


그게 고 주임과 틀어지는 결정적인 계기였지.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같이 지내기 싫었어. 관리실 바닥을 청소할 때 책상 밑에서 빈 소주병이 숱하게 굴러 나오더라. 그곳에서 혼자 지내니까 낮술을 마시는 거야.


언젠가 기사대기실에 책상 서랍이 깨져서 피스를 박을 일이 생겼어. 전동 드라이버 빌리러 관리실에 갔더니 문이 잠겨 있는 거야.


계속 두드리니까 고 주임이 열어줬는데 술냄새가 확 덮치는 거야. 오후 2시였어. 나한테 손가락으로 캐비닛을 가리키더니 거기서 전동 드라이버를 꺼내 가래. 그러고는 의자에 웅크려서 자더라고. 검열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싶더라.


나는 그런 고 주임을 피했지. 점심도 같이 안 먹고.


내가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틱틱거리니까 나중에 관리실로 불러서 바인더를 꺼내는 거야. 거기에는 고 주임이 딴 자격증이 있었어.


전기 기사, 시설 기사 등 5개 정도 되더라. 자신이 이렇게 잘났다는 걸 보여주려는 거야. 고작 자격증으로. 아마 자기가 계약직이라 만만하게 본다고 여긴 모양이야. 평소 지 행실은 고려하지도 않으면서.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래.


- 내가 너랑 같은 줄 아니? 나는 IMF 터지기 전에 여기 정직원이었어.


정말 뭐라고 해 줄 말이 없더라고.


원래 박 기사나 고 주임이 축구팀 창립 멤버잖아. 정규직이 들어오니까 나중에 안 나오더라고. 자기는 계약직으로 계속 그 위치인데 정규직은 대리 과장 부장으로 승진하잖아. 자기보다 나이도 어린데 월급은 많이 받고. 친하지 않은 정규직이면 같이 어울리기 싫었겠지.


결국 고 주임은 잘렸지. 나 한강은행 그만 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쫓겨났는데 퇴직할 때 술독이 오른 얼굴이 반쪽이었대.


아무리 예전에 직장 동료라고 해도 회사 입장에서 그런 직원을 채용하고 싶겠어? 거기가 얼마나 뒷말이 많은 곳인데.


나중에 소식을 들었는데, 알코올 치료 재활센터? 뭐 그런 곳에 들어갔대. 피부도 시커멓게 변했고.


아직도 그 말이 잊히지 않아. 내가 너랑 같은 줄 아냐고. 지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기가 막혀서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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