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시합 후 뒤풀이

by 은빛바다

뼈다귀 해장국집으로 우르르 몰려온 한강은행 축구팀이 자리를 잡는다.


물수건으로 손과 얼굴을 닦자 검게 변한다. 지쳤지만 뿌듯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시합 도중에 어떤 활약을 벌였는지 멋쩍은 실수까지도 무용담으로 늘어놓는다.


황 부장은 아직까지도 흥분한 상태다.


“축구공이 내 앞으로 오는 게 예상외로 빠르더라고. 인사이드로 차려고 했는데 발 끝에 걸린 거야. 각도가 바뀌잖아. 순간 아차, 싶었지. 공이 원래 방향으로 안 가고 스르르 휘어지더라. 야, 그게 그렇게 들어갈 줄 몰랐어.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보였어. 천천히 올라가서 골대 귀퉁이로 쏙 들어가는데 그물이 출렁거리는 거야. 누가 뒤에서 골인이다! 그러는데, 그 기분은 말로 못 해.”


근무지인 구월동 지점에서 일주일 내내 자랑할 것이다. 특히 여직원 앞에서.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경기장까지 도착하는 동안 우준은 편의점에 들러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는다. 허기지면 금방 지치고 배가 부르면 움직이기 힘들다.


경기를 마치고 회원과 같이 늦은 아침 식사를 한다. 시합을 이긴 날에는 유독 밥맛이 꿀이다.


황 부장이 소주를 주문한다. 운전해야 하니 반주로 딱 한잔씩만 마시기로 한다. 아마 직책상 황 부장은 축구팀 고문을 맡을 것 같다.


소주병을 든 황 부장이 식탁을 돌면서 회원의 잔을 채운다. 대리급은 눈을 마주치지도 못한 채 두손으로 공손하게 받는다. 인사 이동이 이루어지면 어느 지점에서 만날지 모르는 직장 상사이기에 더욱 깍듯하다.


“총무, 고생이 많아.”


우준의 어깨를 두드린 황 부장이 소주가 넘칠 정도로 그득하게 잔을 채워준다. 건배사가 이어진다.


“한강은행 축구팀의 영원한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정규직 용역 구분 없이 사방에서 소주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남자는 공만 주면 밤새도록 갖고 노는 족속이다. 또한 서로 흘린 땀냄새를 맡으면서 친밀해진다. 목을 넘어가는 소주가 달콤할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행복이지!”


누군가 중얼거리듯 던진 말이 가볍게만 들리지 않다.


은행에서 상사와 고객에게 치이고, 집에서는 마누라와 자식에게 들볶이고, 어디 편하게 몸을 둘 곳이 없는데 토요일마다 공을 차면서 스트레스를 풀면 살맛 난다. 더구나 각 지점으로 퍼진 인맥을 형성하는데 이만한 모임은 없다. 다들 이런 뒷배경이 있다는 사실을 든든하게 여기고 있다.


휴대폰 발신자를 확인한 주 과장의 눈동자가 모인다. 황급히 귀에 걸고 뭐라고 뭐라고 대화를 나누더니 탁, 자신있게 폴더를 덮는다.


“노조위원장이 온다는데. 남동중학교에서 시합 있는 거 알았대. 식당 위치 알려줬어.”


축구팀 총원은 오늘 가입한 황 부장까지 포함하면 43명이다. 월 회비만 내고 안 나오는 회원도 있다. 일단 축구팀에 한쪽 발만 걸치는 것이다. 노조위원장도 다음 선거를 고려하면 이 모임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신영철 노조위원장은 검은 피부에 단단한 인상이다. 특전사 대원을 연상시키지만 정작 본인은 방위 출신이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축구팀과 구색을 갖추려고 했는지 트레이닝 복장이다. 한 회원이 얼른 일어서서 황 부장 옆자리를 내준다.


“어이쿠, 부장님도 여기 나오세요?”


악수를 나누는 신 위원장이 손이 격하게 흔들린다.


“처음 나왔어. 내가 한 골 넣었어.”


“대단하시네. 이겼어요?”


“당연히 이겼지.”


“잘했어요. 같은 금융권에서 증권사한테 밀리면 안 돼.”


신 위원장의 등장으로 새로운 소주가 식탁에 놓인다. 안주를 더 주문한다. 점점 얼굴 붉어지는 회원이 늘어난다. 하지만 직장 상사를 놔두고 먼저 일어설 수 없다.


카드를 꺼낸 신 위원장이 우준에게 건네준다. 노조사무실은 인천본부 5층이라 자주 만나는 사이다.


신 위원장의 목적은 이거다. 축구팀에 식사를 대접하고 호감을 얻으려는 것. 매주 우준이 보내는 소식지에 노조위원장이 밥을 사줬다는 글이 실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니야. 내가 오늘 처음이고. 원래 골을 넣은 사람이 한턱 쏘는 거야.”


황 부장이 카드를 빼앗아 돌려준다. 자신의 카드를 우준에게 내민다. 축구팀에 하루 참석했을 뿐인데 우준을 무척 신뢰하는 인상을 준다.


원래 의도를 잃은 신 위원장이 잠시 고민하다가 다른 제안을 한다.


“축구 더하지 않을래? 나도 여기까지 왔으니 땀 좀 빼고 가고 싶은데. 어차피 술 깰 때까지는 운전할 수 없잖아.”


근처 담방마을 아파트에 풋살장으로 향한다.


신 위원장은 다시 우준에게 카드를 건네주며 인원수만큼 치킨을 주문한다. 집에 돌아가면서 가족 갖다 주라는 것이다. 더불어 영수증은 꼭 챙겨 오라고 당부한다. 성일이 신나게 아내한테 전화 건다.


풋살장에서 한강은행 축구팀은 근무하는 지점을 따라 동인천과 서인천으로 편을 나눈다. 팀을 구분할 수 있게 우준이 가방에서 조끼를 꺼낸다. 이번에는 인원수를 맞추기 위해 우준도 동인천 편으로 참가한다.


경기 방식은 치킨이 올 때까지 점수가 앞선 팀이 이기는 것으로 한다. 배 부르고 술까지 마셔서 제대로 공을 찰 수 있을까 걱정도 잠깐이다.


축구공이 구르자 먹이를 발견한 멧돼지처럼 달려든다. 서로의 플레이에 대한 지적도 만만치 않다. 특히 주 과장의 입담이면 국가대표 감독도 충분히 맡을 것 같다.


아내의 전화를 받은 성일이 자신의 승용차로 치킨을 받으러 간다. 그 동안 우준은 풋살장에서 벗어나 편의점을 찾는다. 또 양손 가득히 1.5리터 생수를 들고 돌아온다.


땀을 흘리자 기분이 좋아진 건지 신 위원장이 다른 제안을 한다.


햇살이 좋으니 자기가 아는 원두막에서 고스톱을 치자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단단히 친목을 다지려는 의도가 보인다. 아마 밤이 되도록 놀다가 노래방까지 갈지도 모른다.


치킨을 든 용역 직원은 슬그머니 빠진다. 신 위원장을 따라가는 정규직은 얼마를 잃어줘야 하는지 고민할 것이다. 역시 어떻게든 잘 보여서 인맥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성일이 근처 정류장까지 태워준다며 우준을 끌어당긴다. 승용차 뒷좌석에 우준의 치킨과 운동가방을 싣는다. 조수석에 앉자 몸이 녹는 것처럼 긴장이 풀린다.


금요일 저녁만 되면 하늘을 바라보며 걱정했다. 일기예보가 맞지 않는 날도 있다. 날씨가 흐려서 비가 올지 안 올지 애매한 날에는 축구 모임을 진행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문자를 보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게 벌써 2년이나 지났다.


“오늘도 고생했다.”


성일이 시동을 걸면서 격려한다.


“축구팀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는 건 항상 뒤치다꺼리 하는 네 공로가 커.”


“다들 잘 협력을 해주니까 그런 거지.”


“솔직히 지들 이익이 되니까 여기 나오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나오겠어?”


코웃음을 친 성일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잇는다.


“그런데…….”


횡단보도에서 빨간불에 걸리자 성일이 다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다. 창밖을 바라보던 우준이 출렁거린다.


“언제 시작할 거냐? 이제 한강은행에서 얻은 네 신임도 상당한 것 같은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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